우리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뉴스에서 해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보고, 파업 현장에서 사측과 싸우는 노동자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입장을 지지할 수는 있다. 부당한 해고에 분노하고, 거리에서 싸우는 사람들에게 응원을 보낼 수도 있다. 나 역시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으니 그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직장을 잃은 뒤 집으로 돌아온 사람의 마음을 우리는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편이 갈리고, 어제까지 형제라고 부르던 사람이 등을 돌리고, 자신의 존재 가치가 없다고 느끼는 마음을 말이다. 우리는 그들의 투쟁을 이해한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그 사람의 삶 전체가 아니라 우리가 이해하고 싶은 일부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영화 <가능한 사랑>을 보고 나서 다양한 질문들이 오래 남았다. 해고 노동자 호석(설경구)과 그의 아내 미옥(전도연), 그리고 그들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와 남편 상우(조인성). 영화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두 부부를 한자리에 불러온다. 그리고 그들이 서로에게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그들 사이에 놓인 거대한 거리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이창동 감독은 노동과 자본이라는 거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결국 네 사람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 얼굴에는 자유롭고 싶은 마음도 있고,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못한 아픔도 있으며, 타인을 이해하고 싶다는 욕심과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있다. 영화가 묻는 것은 어쩌면 단순하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도 사랑은 정말 가능할까.
[첫 번째 감정] 미옥의 자유
▲영화 <가능한 사랑> 장면
넷플릭스
미옥은 오랫동안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로 살아온 사람이다. 남편 호석이 해고된 뒤에는 가족의 삶을 지탱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선택하며 살아왔다기보다 눈앞에 놓인 현실을 하나씩 받아들이며 여기까지 온 사람처럼 보인다. 술도 원래 즐기지 않았지만 남편을 따라 마시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술에 취한 미옥은 평소보다 조금 더 자유로워 보인다. 웃고 떠들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그 짧은 순간만큼은 자신을 짓누르는 현실에서 조금 벗어난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예지가 다큐멘터리 인터뷰를 제안했을 때 미옥은 비교적 쉽게 마음을 연다. 예지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자신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주려는 사람이고, 상담조차 거부하는 호석에게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회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미옥은 예지와 가까워지고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나둘 꺼내놓는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있으면 자꾸 질문하게 된다.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정말 자유로워지는 과정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원하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일까.
미옥이 호석과 함께 달을 바라보던 기억은 그래서 아름답다. 젊은 시절 두 사람이 바라봤던 둥근 달에는 거창한 의미가 없다. 서로 좋아했고, 함께 있었고, 같은 곳을 바라봤다. 그들에게 달은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한 상징도, 작품을 위한 소재도 아니다. 그냥 서로의 마음이었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았던 두 사람이 함께 바라볼 수 있었던 것. 어쩌면 미옥이 그리워했던 자유도 그런 것이었을지 모른다.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 영화 후반부 장면은 미옥이 그동안 꿈꿨던 자유처럼 보였지만 또 그게 전부가 아닌 듯도 하다.
[두 번째 감정] 호석의 아픔
▲영화 <가능한 사랑> 장면
넷플릭스
호석은 처음 보면 의외로 멀쩡해 보인다.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는 것도 아니고, 매 순간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도 아니다. 그냥 조금 무뚝뚝하고 어딘가 비어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데 영화를 따라갈수록 그 빈자리가 무엇인지 조금씩 보인다. 그는 직장만 잃은 것이 아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해주던 삶의 한 부분을 통째로 잃어버렸다.
호석은 대량해고에 맞선 파업에 참여했고 강제 진압 과정에서 크게 다쳤다. 더 잔인한 것은 그 과정에서 자신이 형제라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버림받았다는 기억이다. 동료를 구하기 위해 다가갔던 그는 정작 자신이 쓰러졌을 때 홀로 남는다. 누군가는 회사에 남은 '산 자'가 되고, 누군가는 해고된 '죽은 자'가 된다. 어제까지 같은 작업장에서 땀 흘리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서로 다른 편에 서게 된다. 자본의 논리는 사람의 직장만 빼앗는 것이 아니라 관계까지 갈라놓는다.
그래서 호석의 아픔은 쉽게 치료되지 않는다. 심리치료를 받는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고 과거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슬픈 것은 호석이 그 상처를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아무도 없는 숲으로 들어가 혼자 울부짖는다.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정작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호석의 아픔은 노동자의 상처를 설명하기보다, 오히려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세 번째 감정] 예지의 욕심
▲영화 <가능한 사랑> 장면
넷플릭스
예지는 해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싶어 한다. 처음부터 나쁜 의도로 접근하는 사람은 아니다. 노동자의 삶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하고, 그들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것을 막고 싶어 한다. 인터뷰를 할 때도 최대한 예의를 지키고, 미옥에게 다가가는 방식에도 나름의 진심이 있다. 그래서 예지를 단순히 위선적인 사람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그런데 예지와 미옥이 가까워질수록 묘한 불편함이 생긴다. 예지는 노동자의 삶을 이해하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은 감독이다. 호석이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상처를 고백하는 순간은 한 인간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기억이지만 예지에게는 강력한 장면이 될 수도 있다. 그 순간부터 질문이 생긴다. 타인의 고통을 카메라에 담는다는 것은 어디까지 이해이고 어디부터 욕심일까.
더 불편한 질문까지 가게 된다. 혹시 예지는 미옥과 호석 역시 자신의 작품을 위한 도구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그렇다고 예지의 욕심을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도 없다. 누군가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지 않는다면 노동자들의 상처는 더 빨리 잊힐지도 모른다.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과 누군가의 아픔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는 마음은 한 사람 안에 동시에 존재할 수도 있다.
그래서 예지는 이 영화에서 가장 불편하면서도 흥미로운 인물이다. 좋은 의도와 개인적인 욕망은 정말 분리될 수 있을까. 누군가의 아픔을 세상에 알리는 사람은 그 아픔으로 자신의 작품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영화를 보고 리뷰를 쓰고 있는 나 역시 그 질문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다.
[네 번째 감정] 상우의 자신감
▲영화 <가능한 사랑> 장면넷플릭스
상우는 처음부터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처럼 보인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도 거리낌이 없다. 아내 예지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무엇을 하든 크게 실패할 것 같지 않은 사람 특유의 자신감이 있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자신의 선택지 안에 있다고 믿는 사람처럼 보인다.
상우는 미옥과 호석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까. 자신과 다른 삶을 사는 흥미로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별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예지는 그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려고 하지만 상우는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려고 하는 자신의 아내를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칭찬에는 자신과 그들을 자연스럽게 구분하는 경계가 숨어 있다.
그래서 상우의 자신감은 결국 돈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선택이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 어디에 가든 환영받을 것이라는 감각, 세상의 많은 것들이 자신의 선택지 안에 있다고 믿는 태도. 노동자에게 해고는 삶 전체를 무너뜨리는 사건이지만 상우에게 노동과 자본은 어쩌면 숫자와 투자의 문제일 수 있다.
같은 사회에 살지만 두 사람이 바라보는 세계는 그렇게 다르다. 같은 달을 바라봐도 다른 것처럼,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사람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을 바라본다.
우리는 타인의 아픔을 정말 이해할 수 있을까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의 이야기이면서 두 부부의 이야기이고, 계급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이창동 감독은 노동자와 자본가를 단순히 선과 악으로 나누지 않는다. 대신 네 사람을 한 공간에 밀어 넣고 서로를 바라보게 한다. 가까워지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마다 그들 사이의 거리가 드러나고,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순간마다 또 다른 오해가 생긴다. 영화는 바로 그 불편한 틈을 집요하게 바라본다.
특히 해고 노동자들의 상담 장면은 오래 마음에 남는다. 썩을 대로 썩었지만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상처를 사람들이 하나씩 꺼내놓는다. 어떤 사람은 울고, 어떤 사람은 웃는다. 그런데 그 웃음이 정말 웃음이었을까. 카메라 앞에서는 자신의 상처를 이야기하면서도 가족에게는 그 칼자국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울어야 하는 사람들.
영화는 그들을 거창한 투사로 만들지 않고 그냥 상처받은 인간으로 바라본다. 그 안에는 서로 싸우고, 배신하고, 사랑하고, 가족에게 미안해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개인이 있다. <가능한 사랑>은 그 복잡한 얼굴을 지워버리지 않는다.
이창동 감독의 연출은 그래서 더욱 강력하다. <버닝>이 모호함과 상징을 통해 관객을 끊임없이 미궁으로 밀어 넣었던 작품이라면, <가능한 사랑>은 상대적으로 더 직설적으로 인물과 사회를 바라본다. 하지만 쉽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영화가 끝난 뒤 이야기할 것이 훨씬 많다. 노동과 자본, 계급,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의 윤리, 부부의 사랑과 욕망, 그리고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의 가능성까지. 긴 러닝타임 동안 영화는 수많은 질문을 던져놓는다.
배우들의 연기는 그 질문을 사람의 얼굴로 바꿔놓는다. 전도연은 미옥의 밝음과 슬픔, 자유를 향한 욕망을 한 얼굴 안에서 놀랍도록 자연스럽게 오간다. 설경구는 더 강렬하다. 호석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조차 마음속에 무언가가 가득 차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것이 마침내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순간, 우리가 앞에서 봤던 무표정한 얼굴들이 전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조여정은 선의와 욕망의 경계를 끊임없이 오가는 예지를, 조인성은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기에 자신감조차 자연스러운 상우를 설득력 있게 표현한다. 네 배우가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네 사람이 같은 공간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묘한 긴장이 생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영화를 만든 곳이 넷플릭스라는 사실도 재미있다. 자본의 힘과 노동의 소외를 이야기하는 영화가 거대한 글로벌 플랫폼의 자본을 통해 만들어져 전 세계에 공개된다. 어쩌면 <가능한 사랑>이라는 영화 자체도 자신이 던지는 질문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이 영화는 극장에서 먼저 보기를 권하고 싶다. 164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자체가 영화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집에서 중간중간 멈추고 다른 화면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네 사람 사이에 조금씩 쌓이는 감정의 흐름이 끊길 것 같다. 한 공간에 앉아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어야 마지막에 이르러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감정들이 다시 떠오른다.
결국 <가능한 사랑>을 보고 나서 내게 남은 질문은 사랑보다 이해에 가까웠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정말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경험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사람의 고통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까.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사람은 자꾸 다른 사람에게 다가간다. 이야기를 듣고, 카메라를 들고, 손을 내밀고, 이해해보려고 애쓴다.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어쩌면 이창동 감독이 말하는 '가능한 사랑'은 상대를 완전히 이해한 뒤에 시작되는 사랑이 아니라, 끝내 다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사람에게 다가가려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그게 가능한 일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그 가능성을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라면, 기꺼이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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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영화와 시리즈 속 감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단순한 이야기보다, 우리의 삶과 감정을 비추는 거울처럼 바라봅니다.
브런치에 영화 감성 리뷰와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으며,
영화 속 감정을 담은 첫 에세이집 《그럴 때, 나는 그를 떠올렸다》를 출간했습니다.
레빗구미라는 이름으로,
영화가 남긴 감정과 삶의 이야기를 오래 기록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