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치현종합사격장으로 가는 길. 아랫쪽 내비게이션 화면 속 경로가 구불구불하다. 접근성이 좋지 않은 데다, 통신마저 끊겨 오가는 데 어려움이 크다.
박장식
지도로 어느 정도쯤 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을 열었다. 지도 화면이 나오지 않는다. 통신이 끊겼기 때문이다. 5G는커녕, 3G마저 통하지 않아 휴대폰을 쓸 수 없는 구간이 꽤나 길다. 고갯길을 따라 빽빽한 숲이 이어졌고, 곳곳에는 폐가가 보여 '경기장으로 가는 길이 맞나' 하는 의심도 들었다.
꼬박 한 시간 산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아이치현립사격장. 해발 669m에 위치한 이곳은 이번 아시안게임을 위해 리모델링을 거쳤다. 시설 자체는 좁지만 현대식으로 단장되어 있고, 권총과 소총 경기는 물론 산탄총 경기 역시 국제 규격에 맞춰 치를 수 있다. 당초 운영되던 현립사격장의 부실했던 관중석 역시 새로 지은 것이 눈에 띈다.
공간이 좁다보니 따르는 문제도 적잖다. 관계자들을 위한 공간은 대부분 컨테이너나 천막 등을 활용했고, 식당을 대신해 마련된 푸드트럭도 1개 매장만, 그것도 식사를 위한 매장이라고 보기 어려운 닭꼬치구이 매장이 들어와 있다. 경기장 내외부 사정도 좋은 편이 아니다. 가장 가까운 편의점과 주유소까지는 차량으로 최소 30분 이상 가야 한다. 갓 지은 따뜻한 밥은 언감생심에 가깝다.
가장 가까운 민박마저 차량으로 30분을 가야 하고, 가까운 호텔은 토요타시 시가지에 있어 선수단 역시 1시간 이상 차량을 타고 바깥으로 나갔다 와야 한다. 그마저도 선수단과 관계자들로 인해 차량은 언제나 만석인 데다, 멀미를 유발하는 길을 꼬불꼬불 오가야 한다.
실제로 조직위원회에서 선수단에게 제공한 도시락은 유통업체가 제작한 간단한 마트 도시락 수준에 불과했다. 실제로 기자가 전달받은 27일의 선수단 도시락은 차디찬 밥에 식은 닭튀김, 짠지가 전부였다. 그마저 전자레인지 등 음식을 데우는 조리기구가 없어 찬밥 식사를 감수해야 했다. 해외 선수단 가운데에서는 점심을 거르고 조직위가 제공한 빵만으로 점심을 버티는 선수들도 많았다.
2002 한·일 월드컵을 시작으로 국제 스포츠 대회의 조직위원회를 여러 차례 경험한 대한사격연맹 박정상 사무처장에게도 이번 대회는 난감했다. 박 사무처장은 "수많은 국제 대회를 겪어봤지만, 이번처럼 모든 면에서 난감한 경기장은 처음 봤다"면서, "선수 라운지에 전자레인지조차 없어 VIP 구역 전자레인지를 빌렸는데, 그마저 다음 날엔 쓸 수 없다고 막아 세우더라"고 혀를 찼다.
▲대한사격연맹을 비롯해 사격 대표팀 지원인력들은 매일 10분 가까이 산길을 걸어서 오르내리며 차량 지원에 나섰다.
박장식
10분 산길 걸어가고, 멀티쿠커에 반찬 데우고... 지원 빛났던 연맹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대한민국 사격 선수단은 익숙한 밑반찬과 함께 식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 대한사격연맹 임직원의 지원 덕분이었다. 선수단 냉장고를 한국 반찬으로 채우고, 매일 라면과 잡채를 따뜻하게 데워 먹곤 했다. 차량 출입이 불가능하고, 경기장에 식사 용구가 없었던 악조건 속에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당시 한국 선수단의 경기장 내 주차권이 없어 고민했던 대한사격연맹은 주차권을 발급받는 대신, 사격장 내 회차가 가능한 출입권을 발급받았다. 여러 대의 차량을 운영했던 사격연맹은 다른 국가 선수단으로 꽉 찬 버스로 인해 선수단에게 불편이 발생할 것을 염려, 미니버스를 대절해 한국 선수단만을 태우도록 했다. 선수들 역시 외부 접촉 없이 경기장까지 편안하게 향할 수 있게 되었다.
선수들이 필요한 음식, 물품 등 지원 물품을 운반하기 위한 차량 역시 도보 10분 거리의 보안구역 인근에 세워놓는 것으로 대응했다. 박정상 사무처장을 비롯해 연맹 임직원이 모두 투입되어 한국 선수단의 일용품을 산길을 걸어다니며 날랐다. 말이 쉽지 사람 한 명 없는 산길을 10분 가까이 직원들이 걸어 오르내리는 일은 중노동이었다.
▲이번 대회 기간 동안 작은 멀티쿠커 하나 덕분에 따뜻한 식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던 사격 대표팀 선수들.
대한사격연맹 제공
임원들 역시 일본에 거주하는 가족과 친지를 통해 김치며, 진미채볶음, 잡채, 깻잎지 등 한국인의 밥상에 없어서는 안 될 밑반찬들을 전달했다. 물을 끓일 수 있는 멀티쿠커를 선수단 대기실에 반입할 수 있게 되면서 음식을 데워 먹을 수 있었고, 결선 경기를 앞둔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에도 도움이 됐다. 특히 라면은 선수단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특별식이 되었다.
한국스포츠과학원의 멘탈 코칭 역시 빛났다. 경기를 앞두고, 경기 직후 어려움을 겪는 선수들에게 한국스포츠과학원의 연구원들이 언제 어디서나 선수를 향한 심리 상담에 나서는 한편, 체계화된 조력을 제공하면서 선수단에게 특히 도움이 되었다. 선수들 역시 먼저 연구원에게 부탁해 허물 없이 어려움을 공유하곤 했다.
각계에서 전달된 격려금도 선수단을 위해 사용됐다. 선수들은 매일 숙소 인근 한국 음식점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고기를 구워 먹기도 하고 익숙한 한국 음식으로 식사를 챙기며 경기 후 컨디션을 관리할 수 있었다.
장갑석 총감독도 선수단을 향한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선수단 호텔이 일본 내 비지니스 호텔 체인으로 지정된 탓에, 좁은 공간으로 인한 어려움을 겪을 것을 염려해 본인 등 코칭스태프와 임원진이 2인실을 썼고, 선수단은 모두 1인실을 쓸 수 있도록 조치했다. 장 감독은 "엄격한 원칙을 끝까지 지킨 선수단과 지도자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사격 2관왕에 오른 이건혁이 출국 이전 인천 옥련사격장에서 훈련하는 모습. 현지에 가까웠던 대한사격연맹의 지원 역시 이번 대회 성과를 가져왔다.
박장식
항저우보다 좋았던 성적... 이제 대구·LA로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대한민국 사격 대표팀은 금메달 3개를 따냈다. 추가은(임실군청)이 지난 9월 23일 여자 10m 공기권총에서 금메달을 획득했고, 사격 마지막 날인 지난 1일에는 이건혁·윤서영·송종호가 25m 속사권총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합작했다. 이어 이건혁이 개인전 결선에서도 금메달을 따냈다.
대표팀은 은메달 5개와 동메달 4개도 기록하며 사격 종목 국가별 메달 순위에서 중국과 인도에 이어 종합 3위에 올랐다. 악조건 속에서도 대한사격연맹 등 관계 기관의 지원 속에 어려움을 딛고 이룬 호성적이기에 의미가 크다.
2년 뒤 2028 LA 올림픽은 과제다.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 발견한 추가은·이건혁 등의 새로운 인재와 오예진·양지인 등 이번 대회 성과를 보여준 선수들, 그리고 LA 올림픽에서 새로이 발굴될 선수들을 모아 최상의 성적을 내야 한다는 숙제를 안게 되었다. 대한사격연맹은 이미 현지 숙소를 확보하는 등 2년 뒤 올림픽 대비에도 돌입한 상황이다.
이제 한국 사격은 한 달 뒤 카타르 도하에서 열릴 2026 세계사격선수권대회, 그리고 내년 대구광역시에서 개최될 2027 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향한다. 특히 1년 뒤 열릴 대회는 대한민국 홈에서 열리는 대회이기에 선수단의 선전, 그리고 성공적인 대회 운영이라는 두 개의 무게추를 모두 맞춰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당장 2일 귀국하는 사격 선수단은 제대로 휴식을 취할 여유도 없이 창원국제사격장에서 개최되는 제107회 전국체육대회에 참가한 뒤, 11월 1일 개최되는 도하 세계선수권에 나선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대중교통 이야기를 찾으면 하나의 심장이 뛰고, 스포츠의 감동적인 모습에 또 하나의 심장이 뛰는 사람. 철도부터 도로, 컬링, 럭비, 그리고 수많은 종목들... 과분한 것을 알면서도 현장의 즐거움을 알기에 양쪽 손에 모두 쥐고 싶어하는, 여전히 '라디오 스타'를 꿈꾸는 욕심쟁이.
공유하기
첩첩산중에 찬밥 도시락... 악조건 속 금메달 3개 딴 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