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옥상 밭 고추는 왜>(장우재 작, 김광보 연출) 무대 전경
조훈성
단 고추 몇 개가 이토록 한 작은 공동체의 첨예한 갈등으로 커질 것이라고는 예측하기 쉽지 않다. 그리고 그 대립 과정에서 빌라의 재개발 논의와 함께 세입자와 소유자가 개발로 인한 처지의 단면이 극명하게 나타나기도 하며, 각 빌라 칸마다 삶 속에는 노년의 불안과 청년의 분노, 개인의 양심과 집단의 규범, 정의와 폭력의 문제 등까지 끌려 나온다.
작은 텃밭은 순식간에 우리 사회 전체를 축소해 놓은 뜨거운 광장이 된다. 연극은 거대한 사회문제를 거대한 인물이나 거대한 사건에 기대지 않는다. 옥상 텃밭 매달린 작고 매운 고추 하나로, 또 오래된 빌라의 옥상과 출퇴근하는 길 통로에 놓인 평상에서 이웃끼리 오가며 던지는 말 한마디는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이처럼 중요한 이야기가 따로 없을 정도로 그 무게가 달라진다.
누구 집 밥상과 마당과 복도에서 벌어지는 이웃 간의 시비를 통해 우리 사회의 균열을 예리하게 담아낸다. 그래서 이 연극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고추를 땄는가'라는 추리의 질문이 아니라, 극 중 '현태'의 분노나 '동교'의 연대에서 듣고 봤던, '누군가에게 삶의 기쁨이자 자기 존엄의 일부였던 것을, 다른 누군가는 왜 아무렇지 않게 훼손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훼손을 목격한 사람들은 왜 함께 아파하기보다 자기 몫의 이해와 체면 속에서 한데 묶이지 않고 흩어지는가'를 이 연극은 진지하게 묻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 여기에
거의 십 년 전 초연 당시 <옥상 밭 고추는 왜>는 사회 전체가 유지되기 위해 지켜야 하는 윤리적 약속과, 개인이 삶의 기준으로 삼는 도덕적 양심이 혼재하고 충돌하는 현실을 말하고자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연극이 차별화되는 것은 관객이 극 중 각각의 인물에게 잠시라도 설득되도록 만든다는 데 있다. 극 중 '현자'에게 재개발은 탐욕만으로 문제를 단선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그 세대가 겨우 붙들어 온 생존의 자산이며, 불안한 노후를 책임질 수 있는 마지막 희망끈으로 보이게 한다. 이와 반대로 '광자'의 고추밭 농사는 단순한 소일거리가 아니라, 자신 삶의 성찰의 시간이며 수확한 고추를 이웃과 나누며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결코 작은 세계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추밭에서 벌어진 '광자'와 '현자'의 싸움을 목격한 '현태'에게 그 사건은 절대 사소하지 않다. 그는 자신과 가족이 살고 있는 빌라에서 세 들어 살면서 이미 힘 있는 자의 횡포와 무시로 인해 불만이 축적되어 왔고, 고추밭 사건의 목격은 방아쇠가 되어 잠재된 분노가 분출되는 게 자연스럽게 연출된다.
그러나 연극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정의를 말하는 사람의 말과 행동이 언제부터는 역으로 타인을 밀어붙이고, 낙인찍고, 폭력으로 변질되는지를 놓치지 않는다. '동교' 역시 '광자'의 피해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인물이지만 그가 선택하는 행동은 도덕적 분노가 윤리적 경계를 넘을 때 어떤 파국을 낳는가를 잘 보여 준다.
그렇기 때문에 극중 인물의 입체성은 '옥상 밭 고추'에 대한 입장차에서 분노와 망설임, 연대와 무력감 사이에서 선명해진다. 방관자처럼 보이는 빌라 주민들도 사실은 각자가 세계 불안과 맞서고 있으면서 공동체의 이해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려는 이들이고, 결국 오늘의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고, 나의 얼굴일 수도 있다.
다시 무대에 오른 <옥상 밭 고추는 왜>가 낡은 연극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재개발과 부동산, 세대와 계층, 혐오와 낙인, 온라인 폭로와 여론재판, 각자가 규정하는 정의를 둘러싼 언어의 충돌은 오히려 2017년 이후보다 더 복잡해지고 더 거칠어졌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훨씬 더 많은 말을 하지만, 더 잘 이해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정작 타인의 삶에서 무엇이 절박한지 듣는 능력은 그때보다 더 빈곤해졌다고밖에 할 수 없다.
연출은 희곡의 이러한 인물의 관계 배치에 대해 성급하게 결함의 인물로 결정하고 몰아가지 않는다. 인물들을 저마다의 사정과 감정, 결핍과 욕망을 가진 존재로 객석 앞에 둔다. 그러므로 관객은 한 인물에게 연민과 공감을 느끼다가도 다음 장면에서 그 인물 이면의 폭력성과 위선을 적나라하게 마주하게 된다. 무대에 선 위태로운 인물에 서려던 마음이 자꾸 흔들린다. 이 흔들림이야말로 이 연극이 관객에게 요구하는 윤리적 경험일 것이라 생각한다.
<옥상 밭 고추는 왜>에서 관객의 시선은 '현자', '현태', '동교'에 집중된다. 현자는 고추를 맘대로 따 간 장본인이자 재개발을 둘러싼 이해관계의 한가운데에 놓인 인물이고, 현태는 그 사건을 결코 사소하게 넘길 수 없다고 주장하며 빌라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인물이며, 동교는 현태를 앞장서게끔 뒷받침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연극의 힘은 세 사람의 관계성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고추밭의 주인 광자는 단지 피해자가 아니다. 옥상의 작은 밭을 가꾸어 온 삶 속에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재개발로 인하여 광자가 소박하게 지켜왔던 가치와 생활이 붕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동교의 아내 '지영'은 무능력한 남편에게서 벗어나 전임교수가 되려는 인물이다. 지영의 선택과 욕망은 사적인 부부 갈등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가족 안에서 감내해야 했던 몫을 넘어 자기 삶의 자리와 사회적 위치를 새로 마련하려 한다는 점에서 특별하게 바라보게 된다.
큰아들 현수와 작은아들 현태를 데리고 세 들어 사는 엄마 '재란'의 억척스러움도 멀리 있는 인물이 아니다. '현수'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으로서, 바깥의 구조적 불안과 가족 내부의 갈등을 동시에 견뎌야 하는 인물이고, 세입자이면서 말단 공무원인 '주연'은 친절한 말투와 달리 벌어진 갈등 상황에서 이성적이고 사무적인데, 이 역시 인물에 대한 관찰이 무척 섬세하게 느껴진다. 도움을 주는 듯하면서도 한 발 떨어져 있는 인물의 태도는 제도화된 행정민원에 대한 감각이 여실히 보이기 때문이다.
할매 '충'과 '성'은 동네의 구경꾼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역할도 작지만은 않다. 벌어지는 사건에 적당히 관심을 두고, 편에 들고, 풍문을 옮기며, 혀를 차는 이들은 우리 공동체의 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성복' 역시 빌라의 관리자처럼 관여하지만, 그의 역할은 빌라 내 벌어지는 갈등을 무마하고 자신의 위치를 유지하는데 국한된다. 이 연극의 주 갈등 관계를 끌어가는 연료는 '구', '균', '쏘'라는 전문 데모꾼의 등장에 있다. 갈등이 커질수록 어떻게 손쉽게 구호와 진영의 언어로 바뀔 수 있는지, 또 그 결속이 이합집산처럼 흩어지는지를 잘 보여 준다.
빌라 일로 여러 차례 출동하는 말단 '경찰'은 사건을 해결하기보다 사태를 행정적으로 관리하고, '성식'은 빌라와 이웃에게 거의 관심이 없는 채 주차 문제에만 날카로워져 있다. 이러한 다양한 인물의 설정과 배치, 갈등의 구도는 한 공동체의 붕괴가 반드시 거대한 악의 형태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외면한 채 자기 불편만을 절대화하는 일상적 무관심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것을 무척 선명하게 제시해 준다. 그래서 관객은 어느 순간 그 인물의 말과 태도에서 거울처럼 자신의 일부를 발견하게 된다.
무대는 1층에 자리한 세 빌라 가족, 동교네, 현태네, 현자네 등의 생활 공간을 만들고, 공용공간인 옥상, 빌라 앞 평상, 사람들이 오가며 마주치는 통행로와 맞물려 있다. 이 구조는 한 건물에 함께 살지만 서로의 삶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거리와 가까움을 동시에 보여 준다.
옥상은 광자의 고추밭이 있는 개인적 돌봄의 장소이면서, 재개발과 소유, 침해와 응징의 문제가 폭발하는 중요한 장소가 된다. 객석과 바짝 맞닿은 무대는 이 생활 공간을 추상적인 사회 모형으로 두지 않으면서 배우들의 대사와 몸짓, 오가는 시선, 인물 사이의 날 선 거리감이 객석까지 고스란히 전달되게끔 한다.
관객은 그래서 멀리 빌라 바깥에서가 아니라, 제법 거대한 세트에 밀접해 있으면서, 가까이에 앉아 이웃 간의 다툼을 듣고도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는 또 하나의 주민이 된다. 결국 우리는 그 답답한 무대와의 간격 속에서 '벽'에 대해 체감하지 않을 수 없다. 고추밭에서 시작된 사건은 그 벽 앞에 오래 쌓여 있던 사회적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계급, 세대와 젠더, 소유와 생존의 문제가 뒤섞여 모습을 나타낸다.
고추를 둘러싼 소동이 점차 감당하기 어려운 파국으로 번져 갈수록, 관객은 인물 안에 축적돼 있던 잠재된 감정을 비로소 제대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모멸감, 낙오되거나 실패한 삶에 대한 두려움, 인정받고 싶은 욕망, 누군가를 향한 오래된 원망, 더 이상 밀려나고 싶지 않다는 절박함이 극중 인물의 대사와 몸짓을 통해 흡인력 갖는다.
<옥상 밭 고추는 왜>를 주목하게 되는 것은 거대 자본주의의 괴물성이나 사회적 도덕적 파산을 고발하는 데서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히려 이를 바로잡겠다며 나서는 정의 역시 얼마나 쉽게 배제와 폭력의 얼굴을 띨 수 있는지까지 말해주기 때문이다.
"희미한 것들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
▲연극 <옥상 밭 고추는 왜>(장우재 작, 김광보 연출) 커튼콜
조훈성
연극에서 끄트머리, 광자의 고추밭이 진드기로 끝내 회복할 수 없는 지경이 된 게 마음이 아프다. 백무산의 시에서 "희미한 것들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이 바로 거기에 있다. 우리는 저마다 아주 작고 희미한 것을 붙들며 산다. 어떤 이에게는 고추 몇 포기이고, 어떤 이에게는 오래 산 집이며, 어떤 이에게는 일자리와 관계, 명예와 기억일 것이다. 문제는 누군가가 그것을 사소하다고 말하는 순간, 타인에게 중요한 것을 하찮게 여기기 시작할 때다.
2017년 초연 이후 2026년 '연극의 질문들'이라는 이름 아래 다시 무대에 올려졌다. 그 사이 우리 사회는 얼마나 나아졌는가.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들은, 우리들이 사는 이 세계는 이 연극이 있었음에도 왜 여전한가. <옥상 밭 고추는 왜>는 그 질문 앞에서 쉽게 답하지 않는다. 다만 뜨거운 옥상 위, 다 따진 고추밭의 자리를 오래 보여 준다. 빌라의 몇 호에 사는 희미한 사람보다 희미한 누군가가 붙들고 있던 소중한 것을, 너무 쉽게 사소하다고 말해 버린 적은 없지는 않은가. 오늘따라 그 물음이 어느 푸른 고추보다 맵고 쓰다.
<옥상 밭의 고추는 왜>
∙일시 : 2026년 9월19일~10월04일
∙장소 : 대학로극장 쿼드
∙연출 : 김광보
∙작 : 장우재
∙출연 : 고수희(현자 역) 장석환(현태 역) 송철호(동교 역) 김시영(재란 역) 박상종(수환 역) 최나라(지영 역) 장연익(충 역) 김남진(성 역) 문경희(광자 역) 성노진(성복 역) 정홍구(현수 역) 김민혜(주연 역) 이진혁(구 역) 김현진(균 역) 변은영(쏘 역) 김은기(경찰 등) 이준혁(성식 역)
∙주최 주관: 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 "2026 쿼드, 연극의 질문들: 진화하는 텍스트"
∙제작 : 극단 청우
▲연극 <옥상 밭 고추는 왜>(장우재 작, 김광보 연출) 포스터“2026 쿼드, 연극의 질문들: 진화하는 텍스트” - 연극 <옥상 밭 고추는 왜>(장우재 작, 김광보 연출)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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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나고 자랐으며, 전통연희, 굿, 마당극 등을 연구하고, 또 그 마당을 보러 다녔다. 공연장 안팎을 분주히 걷다 보니,연극, 공연 축제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이 생업이 되었다. 지역 문화예술정책에 관심이 많아 이와 관련한 심의, 자문 등의 일도 겸하고 있다. 2024년, 『묵음_ 다음에 걸음, 그리고 스페이스바』 (그래도, 2024) 등을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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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를 둘러싼 소동 앞에서 관객이 받아 든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