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준 PD
EBS 홍보부
- 기다리는 게 힘들지 않나요?
"제일 힘든 게 물속에서 기다리는 거예요. 열대 바다라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엄청 춥고, 체온이 한 번 떨어지면 회복이 안 되거든요. 이번 프로그램에서 카디널 피시를 찍을 때도 거의 30cm까지 접근해야 했는데, 움직이면 부유물이 일어나거나 생물이 놀라기 때문에 다리도 펴지 못한 채 웅크린 자세로 계속 버텨야 했어요. 나중엔 다리에 쥐가 나고 발도 저리지만, 생물을 놓치면 안 되니 공기가 떨어질 때까지 악착같이 버팁니다. 호흡도 편하지 못한데, 일반인이 하면 위험한 방법이지만 공기 탱크 밸브를 거의 잠가 최소한만 호흡할 수 있게 해놓고 움직임 없이 기다려요. 보통 10m 수심에서는 45~50분이면 끝나는 공기량인데, 그렇게 해서 90분 정도까지 버팁니다."
- 1부는 생명의 노래였고 2부는 생존의 비밀이었잖아요. 이렇게 한 이유가 있나요?
"1부에서는 생명의 탄생을 주로 다뤘어요. 어떤 물고기는 한꺼번에 산란해서 바다의 흐름에 맡겨버리는가 하면, 카디널 피시 같은 어류는 오랫동안 알을 품고 부화시키거든요. 그런 다양한 생명 탄생의 모습을 담았다면, 2부에서는 그 생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생존의 과정을 다루자고 해서 1부와 2부로 나눴습니다. 이걸 다 섞어버리면 죽도 밥도 아닌 구성이 될 것 같아서, 단락을 딱 나눠서 구성했습니다."
- 다큐 촬영을 진행하시면서 인간의 삶과 바닷속 생태계가 닮아 있다고 느낀 결정적인 순간이 있으셨나요?
"사실 어류가 인간의 눈으로 보면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생물체 같지만, 그 종이 생존을 위해 알을 낳고 보살피며 대를 이어가려는 애틋함은 사람들의 정서와도 조금 닮아 있지 않나 싶어요. 다만 다큐를 만드는 사람이 제일 경계해야 할 부분이, 너무 인간적인 시각으로 바다나 생물을 바라보면 안 된다는 거예요. 모성애, 포악함, 간절함 이런 식으로 표현하면 시청자 이해를 돕기는 쉽지만, 사실 바닷속 생물들은 우리가 느끼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거든요.
그래도 저 역시 인간이라, 들여다보면 정말 사람이 자식을 기르는 것과 닮아 있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특히 문어를 보면서 30여 일 동안 먹지도 않고 알을 품다가 마지막에 다 떠나보내는 걸 볼 때는, 사람보다도 더 애절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편집하고 글을 쓸 때는 그런 감정을 절제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 1부에는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는 경이로운 순간들이 담겼을 텐데요. 촬영 과정에서 가장 매료되었던 장면이나 개체를 꼽는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카디널 피시인 것 같습니다. 저도 그런 장면을 처음 봤는데, 암컷도 아니고 수컷이 입안에 알을 물고 열흘 넘게 품거든요. 처음엔 알이 작아서 입안에 쏙 들어가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이 커지면 한입에 물지 못하게 돼요. 그러면 답답해서 뱉었다가 불안해서 다시 물었다가, 이걸 계속 반복하면서 열흘 넘게 버티는 거예요. 사람이라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까 싶더라고요. 그러다 마지막에 한순간, 입안에서 새끼들이 움직이며 동시에 부화해 바다로 탁 내보내는 걸 보면서 어류가 대를 잇는 삶이 이런 거구나 하고 굉장히 매료됐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그보다 더 짜릿한 장면들도 찾아보고 싶습니다."
- 2부 '생존의 비밀'에선 바다뱀과 전갱이의 이종 간 협력 사냥이나, 산호를 갉아 섬의 기반을 만드는 범프 헤드 패럿피시의 모습 등 흥미로운 장면들이 많습니다. 약육강식의 세계로만 알았던 바다에서 '협력'과 '순환'의 고리를 포착해 내신 과정이 인상 깊습니다. 취재 중 가장 놀라웠던 생태적 발견은 무엇인가요?
"저도 바다뱀이 그렇게 협력 사냥을 한다는 건 우연한 정보로 듣긴 들었는데, 전혀 다른 종인 바다뱀과 전갱이가 과연 어떻게 협력할지 의구심이 있었어요. 그런데 가서 계속 관찰해보니 원리는 단순했습니다. 바다뱀은 순발력이 그렇게 빠르지 않은 대신, 전갱이는 순발력은 빠르지만 물고기를 잡으려면 많이 움직여야 하거든요.
바다뱀이 굴 속으로 들어가면 전갱이는 밖에서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안에서 놀란 물고기들이 튀어나올 때를 기다리는 거예요. 튀어나오면 바로 잡아먹고요. 대신 바다뱀의 먹이인 작은 곰치나 장어는 밖에서도 지키고 있으니 얼른 나오지 못하고, 결국 안에서 바다뱀에게 잡아먹히는 거죠. 이 과정을 보면서 둘 사이에 무슨 신호를 주고받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자연스럽게 서로 공존하며 살아가는구나 싶었어요. 그 장면은 정말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순간이었습니다."
"바다 현장에 가보면, 다른 모습 보여줄 때가 많아"
▲장원준 PDEBS 홍보부
- 연출할 때 중점 둔 부분은 무엇인가요?
"저는 미리 정해놓은 이야기 틀에 자연을 억지로 끼워 넣지 않는다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어요. 자연 다큐를 만들다 보면 처음에는 어느 정도 이야기를 예상하게 되는데, 막상 현장에 가서 보면 바닷속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줄 때가 많거든요. 지금까지도 늘 그랬고요. 그럴 때 자연을 제 얘기대로 끌고 오기보다는, 거기서 찍을 수 있는 걸 그 흐름대로 따라가려고 합니다. 결국 자연 다큐멘터리는 감독이 자연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자연이 보여주는 걸 얼마나 잘 발견하고 얼마나 잘 전달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이범 다큐로 전하려는 메시지는 뭔가요?
"제 프로그램을 본 시청자들이 바다를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봤어요. '저기에 저런 물고기가 있었네' 하는 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저 생물들이 살기 위해 저렇게 애쓰고 종을 보전하기 위해 저런 방법을 쓰는구나' 하고 바다에 대한 인식이 조금이라도 달라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늘 갖고 있습니다."
- 다큐 연출하며 느낀 점이 있을까요?
"저는 늘 그렇습니다. 한 장면을 찍기 위해 오랫동안 한 곳에 머물면서 '내가 이 장면을 담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담아냈을 때는 '아 좋다' 하는 마음이 들어요. 그리고 이걸 시청자가 봤을 때 어떤 마음으로 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실제로 방송에 나가서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좀 더 해보자, 남들이 보지 못한 걸 더 찍어보자'는 생각을 늘 하게 됩니다."
-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요?
"알을 물고 있는 카디널 피시 수컷을 찾는 게 제일 어려웠어요. 이 물고기는 위협을 느끼면 도망가야 하니 절대 앞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옆이나 뒤만 보이거든요. 게다가 밤이 되면 낮에 몰려 있던 물고기들이 다 흩어져 바위틈에 숨어서 자거든요. 어렵게 찾아도 조명을 켜면 너무 밝아 놀라 도망가 버렸어요. 국내에서 이걸 찍은 사례가 없다 보니 노하우도 없었고, BBC 같은 곳도 밤 촬영 방식은 공개하지 않아서 고민 끝에 조명 밝기를 보름달 정도로 낮춰 촬영에 성공했습니다. 그 다음엔 부화 직전인 알을 찾아야 했는데, 며칠을 헤매다 운 좋게 발견해서 찍었어요. 그래서 이번 프로그램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 카디널 피시 산란 장면입니다."
- 촬영했는데 방송에 못 담은 게 있을까요?
"많죠. 사실 찍은 건 엄청나게 많은데 방송 시간은 한정돼 있어서, 편집은 어떻게 보면 '버리는 예술' 같아요. 잘라버리고 정말 필요한 것만 쓰거든요. 시간에 쫓겨 어쩔 수 없지만, 버려지는 게 굉장히 많은데 그걸 다른 데 쓰기도 힘들어요. 왜냐하면 그 장면 하나만 따로 찍었기 때문에 앞뒤로 이어지는 맥락이 없거든요. 예를 들면 눈에도 잘 안 보이는 5~10mm 정도의 아주 작은 해마가 있어요. 물속에서 찾기도, 보기도 힘든데 그 해마가 먹이를 먹는 장면을 찍었거든요. 정말 좋아서 찍었는데 이어지는 부분이 없어서 프로그램에 쓸 수가 없었어요. 그런 게 정말 아깝죠, 그런 경우가 사실 너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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