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스틸
㈜영화사 진진
감독은 원작의 기본을 함부로 손대려 하지 않는다. 고전은 이미 그 자체로 시대를 초월한 울림과 영향력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소설의 출간 시기와 작품 속 배경을 고려해 의도적인 흑백 촬영으로 화면을 도배한다. 그 덕분에 작품은 최신 영화의 현란한 원색 대신 소설을 계승하듯 고전의 향기를 물씬 풍긴다. 겉치레로 도입한 색감이 아니라 어떤 방식이 위대한 소설의 영상화에 가장 걸맞은 것인지 심사숙고한 결과다. 말 그대로 영상 소설 보는 기분이다.
21세기에 귀환한 <이방인>은 원작이 활동사진으로 재현되는 질감으로 가득하다. 실제 소설 속 인물과 사건이 저랬을 거라 상상했던 풍경이 고스란히 화면 가득 펼쳐지는 체험 격.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호사다. 원작을 곱씹던 이들에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반가운 재회의 순간이다. 소설에서 상상만 했던 식민지 알제리의 풍경, 조롱과 야유만 가득하던 부조리한 법정 풍경이 또렷하게 형상화된다. 대체 태양 빛이 얼마나 뜨겁기에 그랬을까 의문도 해소해 준다.
물론 이걸로 그친다면 감독의 이름값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프랑수아 오종이 두 팔 걷고 <이방인>에 도전할 때는 그만한 각오를 했을 터. 카뮈의 소설이 나온 후 불과 10여 년 지난 1954년부터 8년간 벌어진 알제리 독립전쟁의 잔혹한 상흔을 경유한 역사를 과거의 제국을 계승한 나라의 감독이 그저 실사화로 그칠 순 없는 노릇. 거장은 독자적인 해석과 변주를 수행해야만 하는 법이다. 제국주의 역사에 대한 반성이 원작의 확장해석으로 가미된다.
전체 분량으로 본다면 점 하나, 한 획 긋는 정도의 변화일 뿐이지만, 저울의 무게 추가 슬쩍 기울 정도의 효과가 난다. 고작 이것만으로도 원작이 가진 시대적 한계를 21세기 탈식민주의 시선과 조응하며 수정한 셈이다. 물론 요즘 할리우드가 종종 저지르듯 원작 파괴 수준의 파격적 수정은 없다. 하지만 최소한도로 추가한 아랍인 캐릭터, 뫼르소가 살해한 아랍인 청년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속죄와 사과의 태도가 소설에 의문을 품던 이에겐 작지 않은 충격을 준다.
부활한 <이방인>은 카뮈가 생전 설파했던, 부조리한 사회 현실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평범한 이들의 철학을 작가의 또 다른 대표작 <시지프의 신화>와 결합해 시대를 초월한 생명력을 관객에게 전하려 한다. 감독은 탈식민주의 시대에 필요한 최소한의 미덕을 적절히 가미하되, 원작의 문제의식을 충실히 구현하는 수준에서 균형감을 유지한다. 이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닌데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관객이 상상하던 것과 근사치로 구현하는 위업에 이른다.
카뮈의 소설은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적이다. 프랑수아 오종의 새 버전 역시 아쉬움을 표할 이가 나올 법하다. 하지만 그럼 어떤 형태여야 하는가에 대해 반문하면 뾰족한 답이 나오기 힘들 만큼 이번 영화화는 중용에 충실하다. 어렵게 결단해 돌아온 <이방인>의 더 많은 변주가 보고 싶어진다. 이번 작업은 그 갈증을 열어제끼는 출발일지도 모른다.
<작품정보>
이방인
The Stranger
2025 프랑스 드라마
2026.09.30. 개봉 122분 15세 관람가
감독 프랑수아 오종
출연 뱅자맹 부아쟁, 레베카 마르데르, 피에르 로탱, 드니 라방, 스완 아를로
수입/배급 ㈜영화사 진진
공동배급 ㈜레드아이스엔터테인먼트
▲<이방인> 포스터㈜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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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