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베니스국제영화제 초청을 받은 한국 다큐멘터리가 있다. 대기업 계열사에서 저질러지는 노동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룬 이 다큐가 국제영화제 초청을 받은 건 만든 이들조차 내다보지 못한 일이었다. 잠시잠깐이지만 매스미디어의 주목도 받았고, 감독의 미래 또한 창창할 것으로 내다보는 이들도 많았다. 누군가는 영화가 다룬 노동문제 또한 개선되리라고 장밋빛 전망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5년이 흘렀다. 감독은 대학교 교수로 임용돼 영화 제작을 가르친다. 젊은 학생들은 그를 그저 교수로만 바라보지 않는 듯도 하다. 본보기로, 업계 선배로, 친근한 형으로 그리고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교수가 된 그가 여전히 영화를 만들고 있는지, 여전히 열정이 있는지를 아무도 알지 못한다. 어쩌면 그 자신조차도 답을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일상을 깨는 건 걸려 온 전화 한 통이다. 5년 전 찍은 다큐 속 인물 중 하나, 그에게 '아줌마'라고 불리는 노동자다. 목소리는 회사가 다큐에 나온 노동자들을 전부 잘랐다고 전한다. 대책이 있느냐며 물어오는 급박한 목소리에 감독은 '일단 알아보겠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수업 중이라 전화기를 꺼놓았을 뿐인데, 잘린 사람들 중에선 감독이 전화를 안 받고 무시하려 하는 것 같다는 소문까지 있는 모양이다.
▲키노아이 스틸컷
한국독립영화협회
다큐에 나왔다고 해고된 노동자들
알아보니 바뀐 계열사 CEO(최고경영자)가 딸과 넷플릭스를 보다가 올라와 있던 다큐를 보고 화가 난 나머지 출연한 노동자를 깡그리 잘랐다는 이야기다. 그가 다큐 제작자를 상대로 소송까지 제기하겠다고 엄포를 놨다는 말까지 들린다.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다.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주최하는 232회 독립영화 쇼케이스가 지난 22일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렸다. 상영작은 <키노아이>, 물론 지가 베르토프의 전설적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동명 한국의 독립영화다. 올해 봄 있었던 27회 전주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들어 나름 화제가 된 작품이다. 물론 그 화제가 작품성보다도 어마어마하게 흔들리는 촬영이라거나 관객과의 대화(GV) 당시 있었던 해프닝에 집중된 건 민망한 일이다.
<키노아이>는 어떤 영화인가. 감독은 광고·마케팅을 주력으로 하는 영상제작사를 차리고 일하는 두 사람, 김경계와 이정원이다. 1986년생으로 이제 중년에 접어든 두 감독에겐 생업 외에도 가슴에 품고 있는 뜻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다고. 영화과를 졸업하고 영상 제작사를 열어 조금씩 업력을 쌓아갔으나 해소되지 않는 갈증은 갈수록 분명해지기만 했다. 그 상황에서 내린 결단, 당장 찍을 수 있는 영화부터 찍어내겠다는 결심이 곧 <키노아이>로 이어진다.
▲키노아이 스틸컷
한국독립영화협회
원테이크로 간다, 보기 드문 독립영화
눈에 띄는 건 원테이크 촬영이다. 크게 전반과 후반으로 나뉘는 영화는 각각을 임의적 컷으로 자르고 붙이지 않는 원테이크 촬영으로 담아냈다. 이와 관련해 김경계 감독은 쇼케이스 제작일지를 통해 "카메라의 시선은 철저하게 관객의 시선으로, 독립적인 하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단순히 남자를 촬영하는 장치가 아니라 영화 안에서 어떤 태도를 가진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이는 그대로 영화의 주제, 나아가 주된 메시지와도 통한다. 촬영하는 이의 카메라는 어디서 멈추어야 하는가, 어디까지 돌입해 들어가야 하는가의 답을 감독이 아닌 가장 가까이 선 관객에게 묻는 것이다.
5년 전 다큐의 감독이자 현재 영화학과 교수인 남자는 과거의 일로부터 비롯된 현재적 문제 앞에 서게 된다. 넷플릭스에 나온 자기 회사 다큐를 보고는 출연한 직원을 싹 다 해고한 경영자다. 그 기업은 대학과 산학협력 관계에 있고 상당한 투자까지 약속했다는데, 교수를 자르지 않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한다. 학교 이사회의 방침은 이미 정리된 듯하다. 감독을 학교에 꽂아준 선배 교수는 경영자에게 전화해 사과부터 하라고 한다. 너라도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그렇다면 잘린 직원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건 그 다음에 해결될 수 있는 걸까. 아마도 그렇지 못하리란 걸 남자는 안다.
영화는 그의 뒤를 따른다. 수업을 마치고, 건물 바깥 공터에서 담배를 태우고, 선배 연구실로 갔다가 학교까지 찾아온 해고노동자를 만나고, 다시 제 방으로 가고, 학생들이 영화를 찍는 곳에 들렀다가 다시 다른 수업에 들어가는 과정이 이어진다. 남자는 당장 직업을 잃은 사람들과는 다분히 다른 온도를 보인다. 크게 당황하지 않고 격렬히 반응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해고노동자는 신경 쓰지 않고 너부터 살라는 선배의 말에 적극 동조하는 것도 아니다. 마지못해 사과 전화를 해보지만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또한 당혹스럽기만 하다. 그 사이 영화는 남자와 마주치는 사람들과 걸려오는 전화 등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얼마쯤 극복해 그를 둘러싼 상황을 폭넓게 이해하도록 한다.
▲키노아이 스틸컷
한국독립영화협회
찍어선 안 되는 장면은 존재할까?
흑백으로 구성된 전반과 달리, 영화 타이틀이 떠오른 뒤 이어지는 후반은 컬러다. 영화는 돌연 관객을 5년 전, 문제가 된 다큐를 찍을 당시의 상황으로 돌입하게 한다. 중요한 인터뷰가 녹화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남자는 다시 한 번 노동자를 찾아가 같은 장면을 얻으려 든다. 노동자가 걱정하는 것들은 5년 뒤 문제로 비화돼 일자리를 앗아갈 것들이다.
관객은 그가 기대하는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그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을 안다. 동시에 감독은 다큐의 성공으로 명성을 얻고 교수까지 된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인가. 노동자가 결정적인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에 이르러서 영화는 남자가 카메라를 내리고 등을 돌려 저편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찍어낸다. 그리고 전반에서와 달리 그 뒤를 쫓지 않고 놓아준다. 더 볼 필요가 없다는 듯.
현실적인 영화는 아니다. 해고의 양상부터 전개, 그에 따른 반응까지가 하나하나 그렇다. 마치 현실 속에서 내부 고발자가 어떻게 탄압받는지 혹은 기업이 외부 기관이나 매체를 법률적으로 문제 삼는 방식이 어떤지를 잘 알지 못하고 만든 것처럼 엉성한 구석이 적잖다. 그러나 그 엉성함은 보기보다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결정적 순간 앞에 선 남자의 선택과 그 무게를 관객이 얼마만큼 감지할 수 있느냐다. 적어도 영화는 그를 얼마간 성공적으로 해낸다.
▲독립영화 쇼케이스포스터한국독립영화협회
카메라는 어디서 멈춰야 하는가
카메라는 어디까지 들어갈 수 있는가. 어디서 멈추어야 하는가. 감독은 자기 영화에 얼마나 진심이어야 하는가. 어디까지가 감독의 책임이고 부담으로 남겨져야 하는가. 그에 대한 고민을 현실 속 창작자들은 얼마나, 어떻게 감내하려 하는가.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그 같은 질문 앞에서 염탐하고, 이용하며, 거짓을 진실처럼 꾸미려는 저 자신을 발견하는 감독이 있다. 염탐하고 이용하며 만들어내려 하면서도 보도이고 기록이라고 자기를 속이는 이 또한 있다. 그러나 둘 사이는 너무도 가까워서 무엇이 진실이고 다른 무엇은 거짓이라고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영화의 끝에서 카메라는 촬영을 멈추고 저편으로 말없이 걸어가는 남자의 모습을 비춘다. 그 장면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도리어 이야기 전체를 마치 판타지처럼 이해하도록 만든다. 5년 전 그와 같은 장면이 있었다면 영화는 완성될 수 있었을까. 아니면 그와 같이 촬영을 멈춰야만 했다는 인식인 것일까. 그처럼 촬영을 멈추지 않는다면 앞서 본 파국이 일어나고 말리라는 예고일까. 영화는 어떤 답도 내리지 않은 채로 '키노아이', 스크린을 바라보는 관객에게 바통을 넘긴다. 누군가에겐 무책임함이겠으나, 다른 누구에겐 사고의 여지를 틔워주는 여백일 테다.
<키노아이>는 흥미롭다. 대단한 주제가 아니라도 흔히 고민하지 않고 외면하는 문제를 진득하게 응시한다. 답을 내리지는 않아도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허한다. 제작상 편의 외에 구태여 원테이크로 찍어야 했을 이유가 있다고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를 그대로 영화의 특색으로 만든 점 또한 도전적이다. 지나치게 흔들리는 카메라가 별다른 함의를 달성하지 못한 채로 호불호만 크게 갈리게 하고 말았지만, 그 또한 시도는 시도였다고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 있겠다. 적어도 해낼 수 있는 한에서 뻔하지 않은 영화를 찍어내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엿보인다. 누군가에겐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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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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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는 어디서 멈춰야 하는가... 염탐하고 꾸며내는 다큐의 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