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히어로, 40주년 맞은 '우뢰매'를 기억하나요?

[김성호의 씨네만세 1442] <외계에서 온 우뢰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약 8년간 한국서 피고 진 꽃과 같은 장르가 있었다. 그 찬란함이 화원의 다른 모든 꽃을 압도할 정도였으나, 지고 난 뒤 그를 기억하는 이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저 한국 영화사조 가운데 기록할 한 페이지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 것은 이 장르가 직격해 쇠락케 한 또 다른 장르가 있기 때문이요, 도리어 일으킨 분야 또한 있기 때문이겠다.

1980년대는 한국 사회의 대변혁기였다. 특히 민주화운동과 연계한 노동운동이 커다란 성취를 이루며 사회 전 부문에서 임금과 노동환경 개선의 파격적 변화가 이루어졌다. 지난 시대 이어져 온 노동집약적 산업화는 결실을 이루었고, 1980년대 중반 들어선 저유가·저금리·저달러의 3저 호황까지 맞아 대미수출에 있어 각 산업 부문에서 일본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의 자리를 꿰찬 때였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과 뒤이은 대파업은 달라진 경제상황이 노동환경의 변화로 이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국가와 회사의 이익이 노동자의 임금상승으로 연결되며 임금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았다.

이 같은 변화가 모두에게 이로운 건 아니었다. 사업하는 입장에선 당장 폭증한 인건비를 어떻게든 줄이는 게 경쟁력으로 직결됐다. 노동집약적인 부문은 그 필요가 더욱 절실했다. 당대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이 꼭 그러했다. 사람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그리는 작화와 그를 이어 붙인 편집으로 구성되는 애니는 더 이상 값싼 장르로 남을 수 없었다. 독립 애니를 제외한 거의 모든 애니 부문에서 단가 절감을 위한 고투가 이어졌으나 장르의 특성상 제작비용 상승을 억누를 수는 없었다.

외계에서 온 우뢰매 스틸컷
▲외계에서 온 우뢰매스틸컷서울동화프로덕션

시대가 빚은 괴작, 전설이 되다

1986년 작 <외계에서 온 우뢰매>는 이 시기 특수한 환경이 빚어낸 괴작에 가까웠다. 큰 인기를 누리던 코미디언 심형래를 전면에 내세워 제작한 영화는 이후 7년간 무려 9편의 속편이 이어지며 단순한 아동 영화를 넘어서 한국 영화사 가운데 특별한 지점을 이루었다. 특히 1편은 실사촬영과 애니를 결합한 당시로선 꽤 파격적인 연출부터, 외계인의 지구침공과 이에 대항하는 수퍼히어로의 대립이란 구조, 변신 로봇, 무협과 전대물 사이를 오가는 액션, 그리고 무엇보다 심형래라는 브랜드까지를 창조적으로 결합한, 적어도 한국에선 전례 없는 작품이었다.

혹자는 이 영화가 일본 애니 <닌자전사 토비카게>의 캐릭터를 그대로 베낀 것이 아니냐고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알려진 것처럼 투자사인 뽀빠이과학이 이 애니 속 봉뢰응의 완구 금형을 사다가 우뢰매 금형으로 쓰기로 정하고 김청기 감독과 접촉해 작품을 만들도록 한 것인 만큼 완전한 창작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외계에서 온 우뢰매>가 채택하고 있는 주요한 설정, 이를테면 출생과 기연, 괴짜 박사 등의 캐릭터까지가 하나같이 그 기원을 다른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어떤 전형의 답습이라 할 밖에 없다. 그러니 이 영화가 이미 있는 틀을 가져온 것이라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그저 그뿐인 것은 아니다. 원가절감 차원이라곤 하지만, 실사와 애니의 결합을 시도했고, 그 타개책으로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심형래의 바보 캐릭터를 가져와 창조적이라고까지 하긴 민망해도 무튼 기묘하게 결합해 냈다는 점에서 한국적 특수성이 엿보인다. 무엇보다 외계인과 주인공의 와이어를 활용한 일기토 액션은 일본 애니보다는 차라리 중국이나 홍콩 무협영화와 닮아 있었다. 말하자면 대륙과 열도의 전혀 다른 장르를 중간자적으로 취합한 결과였달까.

외계에서 온 우뢰매 스틸컷
▲외계에서 온 우뢰매스틸컷서울동화프로덕션

불세출의 스타, 심형래의 출발

특히 심형래의 바보연기가 이 같은 장르물에서 피해 갈 수 없는 액션과 결합해 성룡이 묻긴 하였으나 그 완성도는 전혀 다른 독특한 무엇을 빚어냈단 점이 의미심장하다. 어른들의 시각에선 엉망진창에 가까웠던 이 영화의 바보적 슬랩스틱 액션이 당대 아이들을 사로잡았단 건 역사가 입증하는 바다. 풍문에 따르면 100만 명에서 200만 명 사이의 전국 관객이 동원됐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로 당시로선 기록적 인기를 구가했다. 특히 10세 전후의 아이들에게 가히 폭력적 인기를 누려 심형래를 이전 지상파 TV 코미디프로 스타와는 완전히 구별되는 인물로 만들어냈다.

이 영화의 진짜 힘은 당시 전국 배급망이 갖춰져 있던 비디오가게에서 발휘됐다. 어린이 치고 이 시리즈를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큰 인기를 누렸던 것이다. 수년이 지나도록 연일 대여 중을 뜻하는 뒤집힌 비디오였던 이 시리즈는 무려 9편의 속편, 또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아류작을 낳는다. 같은 SF장르 안에선 <은하에서 온 별똥왕자>, <화랑 브이 삼총사>, <반달가면> 시리즈 등이 이어졌고, 한 편에선 심형래의 캐릭터가 장르 바깥으로 분화해 나가 <슈퍼 홍길동>이며 <영구와 땡칠이> 시리즈를 이루었다. 바야흐로 비디오 시장을 겨냥한 아동용 실사영화의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는 산업적으로도 의미 있는 변화였다. SF장르, 특히 로봇이 등장하는 애니와 전대물이 제작되는 이면에는 캐릭터 장난감 판매를 겨냥한 완구업체의 투자가 자리했다. 이는 이미 미국과 일본에서 검증된 캐릭터 상품 개발과 마케팅, 제조와 판매까지로 이어지는 모델을 벤치마킹한 결과였다. 일본에서 사용한 금형을 그대로 사와 캐릭터를 확정한 뒤 이야기를 만드는 구조가 가능했던 것도 이 같은 모델이 작동한 때문이었다.

외계에서 온 우뢰매 스틸컷
▲외계에서 온 우뢰매스틸컷서울동화프로덕션

매체의 진화와 산업의 퇴보 사이

그러나 이 장르 안에서 심형래라는 스타가 탄생한 건 모델을 넘어선 매체의 진화를 뜻했다. 장난감 제작이 용이한 애니와 결합한 SF장르물을 벗어나 심형래의 바보 캐릭터를 활용한 작품이 연달아 만들어진 건 장난감이 아닌 비디오라는 2차 시장을 겨냥한 행보였다. 좀 힘을 주어 말하자면 어린이 영화가 다른 산업의 부수적 요소로 기능하다 독립을 쟁취한 혁명적 순간인 것이다. 그를 가능케 한 건 심형래라는 스타의 존재였다. 그 독보적 캐릭터는 당대 TV코미디로부터 가져온 것이긴 하였으나 영화 안에서 진화하고 발전해 전에 없던 성취를 이뤘으니 이 또한 심형래 어린이 영화의 공이라 보아야 옳을 테다. 그리고 그는 아마도 마동석과 함께 배우 한 명이 곧 장르를 이루는 한국 영화사 가운데 유이한 존재였다.

물론 그 시작점이 된 <외계에서 온 우뢰매>는 전혀 탁월한 영화는 아니었다. 기본적인 서사부터 시작해 액션, 연기, 편집, 녹음, 특수효과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당대 기준으로 보아도 허접한 구석이 산재한 수준 이하 작품이다. 앞서 언급한 도전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 도전의 성패 또한 주요한 요소라면 낙제점을 면치 못할 정도다. 그러나 할 줄 아는 안전함에 매몰되지 않고 시도했던 그 도전정신이 (혹자는 표절정신이라 폄훼하기도 하지만) 아무튼 이후 한국영화의 한 장르를 일으키고 특수효과 등의 발전에도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되는 것이다. 이야말로 도전의 이로움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한편으로 한국 비평가들이 좀처럼 지적하지 않는 아쉬움 또한 언급해야 마땅하겠다. 그건 이 작품이 연 아동영화 전성시대 이후로 아주 오랫동안 한국 애니의 암흑기가 열렸다는 사실이다. 이 시리즈가 이룩한 아동용 영화 주류 장르의 전환은 결국 제작비의 절감이란 필요에 의해 이뤄졌고, 그 과정에서 이전까지 시장을 장악하던 애니에 대한 고려와 배려가 전혀 이뤄지지 못한 점을 짚어보아야 한다. 1986년 이후 1990년 초까지 극장용 장편 애니는 채 10편이 제작되지 않았다. <외계에서 온 우뢰매> 이전까지 연간 5편 이상의 애니가 만들어졌음을 고려하면 현격하게 줄어든 것이었다. 한국 애니 창작자, 특히 작화가들의 설 자리가 사라진 건 물론이다.

한 업계가 초토화되고 존립을 위협받는 지경이 되었음에도 이 나라 문화정책을 결정하는 이들은 이를 전혀 돌아보지 않았다. 그리하여 한국 작화가들은 독자적인 작품활동을 이어가지 못하고 다른 나라 애니의 하청을 받아 주문제작하는 일꾼으로서 자리하기에 이른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애니메이션 하청국가라 불리는 오늘의 이면에는 자국 애니의 설 자리가 졸아들어가고 있음에도 돌보지 않던 무책임과 무관심이 자리한다. 이를 어떻게 마땅하다고 하겠는가.

외계에서 온 우뢰매 포스터
▲외계에서 온 우뢰매포스터서울동화프로덕션

40주년 맞아 다시 이는 '우뢰매' 바람

다행하게도 미취학아동용 애니 시장에서 한국은 대반전을 이뤄냈다. <뽀로로> <라바> <핑크퐁> 등 전 세계적 인기를 구가하는 작품들이 한국에서 제작됐다. 그러나 10세를 전후한, 또 청소년과 성인대상 애니의 사정은 그와는 딴판이다. 시리즈로 이어지긴커녕 극장에 걸리는 성인용 애니 한 편을 만나는 것이 몹시 희귀한 일이 되었다. 지난해 <퇴마록>이 야심 차게 등장해 역대 성인 대상 장편 애니 가운데선 유의미한 기록을 세웠으나, 손익분기점은 넘지 못했다. 아쉬운 일이다.

이처럼 <외계에서 온 우뢰매>는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긴 이야기를 안고 있다. 올해 40주년을 맞아 '우뢰매' 완구 펀딩이 열리고, 과거 향수를 가진 이들이 모여들어 1시간 만에 1억 원 펀딩에 성공하고 수차례 제작이 모두 마감되는 등 화제를 일으켰단 건 흥미로운 대목이다. 당시 미처 나오지 않은 이야기를 팬들이 AI를 통해 새로 제작한 영상 또한 온라인상에서 널리 공유됐다. 이는 독자적 브랜드로써 '우뢰매'가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케 한다. 끝나버린 시리즈가 아니라 여전한 브랜드로 이 작품이 존속할 수 있을까.

이것이 아주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여기는 건 지난해 <퇴마록> 사례에서 보듯이 발전한 기술력이 전에는 미처 이르지 못한 가능성을 뒤늦게나마 틔워줄 수 있단 걸 알아서다. 한국 영화사의 빛이자 어둠이었던, 꽃피는 시절이자 재난이기도 했던 이 시리즈를 2026년 한국은 어떻게 껴안을까. 때아닌 '우뢰매' 바람을 지켜보는 아재의 마음은 긴장 반 설렘 반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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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