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다민족 국가다. 그저 다민족 국가일 뿐 아니라 지역패권을 확고히 한 현대판 제국이다. 한민족을 중심으로 56개 민족이 중화의 깃발 아래 공존하며, 5개의 자치구가 행정에 있어 일부 자치권을 보장받고 있다. 특히 인종과 역사, 문화, 종교 등에서 중국 주류와 극명한 차이를 가진 신장위구르와 티베트 자치구의 경우엔 독립과 인권탄압이 현재적 문제다. 경제적, 기술적, 군사적으로 팽창하는 현실 속 중국이 문화콘텐츠 가운데 자기 안팎의 타자를 그려내는 모습엔 그들 자신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현재와 미래가 반영돼 있다. 우리 또한 그렇듯이.
<황제의 딸> 시즌2는 대만 CTV와 중국 후난TV가 1편의 대단한 흥행 뒤 곧장 제작에 돌입해 찍어낸 48부작 드라마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한국 수도권 케이블 방송사이던 iTV가 수입해와 방영했는데, 케이블TV 드라마 사상 최고 시청률인 4%를 기록했다. 전편 그대로의 출연진에다 한층 확장된 규모까지 더해진 시즌2의 인기는 전편을 능가했다. 중국에선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깨부수며 평균 시청률 50%를 넘기는 기염을 토했고, 대만에서도 화제작으로 자리했다. 이밖에도 몽골, 홍콩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렸는데, 중화권을 넘어 중국과 역사적으로 연관된 거의 모든 나라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한 첫 번째 콘텐츠란 평가까지 나왔을 정도다.
지금에 와 <황제의 딸> 시리즈를 다시 이야기하는 건 중화권 드라마, 그것도 중국과 대만이란 독특한 관련성을 가진 두 나라 방송국의 합작 작품이 다른 민족과 문화권을 다루는 방식을 엿볼 수 있는 의미 깊은 작품인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작품이 거둔 이례적 성공은 훗날 제작되는 수많은 사극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중국 드라마 가운데서 역사적 순간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작품보다 궁궐 내 삶을 비추는 작품이 유달리 많이 보이는 것도 사상 최고의 성공을 거둔 드라마라 평가되는 <황제의 딸>이 궁중 이야기를 담고 있는 까닭으로 이해할 수 있다.
▲황제의 딸 2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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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전성기 강건성세의 복판
이 드라마 가운데 외세가 등장하는 건 어쩌면 필연적이다. <황제의 딸>에서 '황제'는 청나라 건륭제다. 건륭제는 청나라의 전성기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인데, 강희제-옹정제-건륭제로 이어지는 140여 년의 치세가 청나라, 나아가 중국 역사상 가장 번영한 시기로 꼽히는 때문이겠다. 조선에선 현종부터 정조대로, 사림들에 의한 붕당정치가 한창이던 시대다.
이때 청나라는 경제와 영토 모두에서 이전엔 닿은 적 없는 수준에 이른다. 서방의 번성한 준가르와 위구르, 티베트를 모조리 복속시켰고, 북방의 몽골과 동방의 연해주 또한 정복해 영토에 포함했다. 남방으로도 베트남에게 패하긴 하였으나, 그 바로 이북의 땅까지 진출했다. 베트남과 조선까지 모두 사대를 하였으므로, 사실상 인접국을 완전히 통일해 더 이상 확장이 필요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건륭제는 소위 '강건성세'라 불리는 이 시대의 마지막 황제다. 드라마는 아직 위구르와 티베트에 긴장감이 남아 있는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시즌1에선 서장이라 불리는 당대 티베트 국왕이 딸인 공주를 대동하고 베이징까지 와 문안을 올리고 형제의 관계를 공고히 하더니, 시즌2에서는 위구르의 왕이 애지중지 키운 제 딸을 직접 데려와 건륭제의 첩으로 바친다. 실제 역사 가운데서도 위구르족 후궁 향비가 존재하는데, 그와 얽힌 설화를 드라마 주요 인물과 엮어 극화했다.
▲황제의 딸 2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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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 바깥 세계는 어떻게 등장하는가
흥미로운 건 이 드라마가 위구르와 티베트를 묘사하는 방식이다. 위구르와 티베트의 전통복식이며 언어, 생김을 제대로 구현하지 않는 건 물론이다. 이건 제작의 편의 때문으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겠다. 역사를 배경으로 한 사극이라고는 해도 다분히 상상력이 개입된 창작극이지 않은가. 역사적 요소를 일부 덜어내는 대신 극적 재미와 제작의 편의를 취하는 정도는 언제고 창작의 자유로써 주어져야 한다고 여긴다. 문제는 위구르와 티베트, 당시만 해도 독자적 세력이 유지되고 있는 이들 국가의 정체성을 완전히 달리 그린다는 점에 있다.
시즌1이 그리는 것처럼 티베트의 국왕이 직접 베이징까지 가서 건륭제를 알현했는가? 드라마 가운데 건륭제가 티베트 국왕을 불러들여 사실상 동격으로 배석하고 격의 없이 대하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다. 티베트 무인들이 나서 중원의 무술가들과 대결하는 장면은 꽤 공들여 연출된다. 이때 등장하는 티베트 국왕은 아마도 청나라로부터 서장국왕 책봉을 받기도 한 인물 폴라나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그가 직접 베이징으로 행차해 공물을 바치고 주종관계를 공고히 했을 정도였을까? 역사 가운데 그런 기록을 따로 확인할 수 없다.
드라마가 만들어지던 20세기 말은 티베트 독립운동과 이를 막는 중국의 의지가 충돌하던 때였다. 1970년대까지 미국의 지원을 받아 전개하던 무장항쟁은 사실상 중단됐으나 인도에 망명해 중국의 민족말살 행위를 규탄하며 비폭력운동을 전개하던 달라이 라마 14세가 노벨평화상을 받는 등 국제사회의 관심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또 한편으로 달라이라마에 이어 티베트 종교 서열 2위인 판첸라마 승계 문제에서도 중국이 개입해 후보를 교체하는 등 공작이 이뤄진 사실이 폭로되기도 했다. 현실 사회에서 티베트의 독립을 막고 동화정책을 무리하게 진행하는 상황에서 거의 전 국민이 보는 드라마 가운데 역사와 달리 티베트의 독립성을 무너뜨리는 에피소드를 삽입한 건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황제의 딸 2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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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드라마가 현재적 문제를 다루는 방식
시즌2의 위구르 또한 마찬가지다. 위구르 지도자 또한 베이징에 온 기록이 없을뿐더러, 공주인 딸을 그 의지에 반해 직접 압송하다시피 해서 건륭제에게 바친 바 없다. 거의 치욕에 가까운 이 같은 방문을 작품은 아무렇지 않게 그리고, 심지어는 드라마 가운데 가장 주요한 사건으로 활용한다.
드라마 제작 당시 신장위구르 지역은 위구르의 독립을 원하는 세력과 이를 탄압하는 중국 정부 간에 수시로 충돌이 빚어지던 민감한 때였다. 국외에선 무장 독립운동 단체가 결성됐고, 국내에서도 테러행위가 잇따랐는데 중국은 이를 강경하게 진압하고 탄압했다. 이 같이 첨예한 갈등이 실재하는 상황에서 그 뿌리가 되는 위구르에 대한 참담한 묘사는 역사왜곡이자 민족적 치욕으로 다가올 밖에 없는 일이다.
<황제의 딸> 시리즈는 매력적이고 성공적인 드라마다. 그러나 그 가운데 등장하는 외세와 타 민족, 특히 오늘날 중국에서 인권탄압 등 현재적 문제를 겪고 있는 이들을 다루는 방식이 일방적이며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타 민족을 못하게 그릴 땐 역사적 증좌가 필요하지 않은가. 그 정체성과 자주성을 짓밟고 역량이 떨어지는 묘사를 할 때는 말이다. 무엇보다 청이나 오늘의 중국 모두 이들과의 관계에서 피해자라 볼 여지가 아예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황제의 딸 2포스터iTV
한국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
한편으로 한국 사극에서 종종 등장하는 타민족의 모습 또한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한국 사극에 등장하는 타민족은 대개 일본과 중국, 그리고 여진과 거란 정도다. 이중 사실상 민족결집체로 멸족한 거란과 문화적으로 한족에 완전히 동화된 여진(만주)족은 거의 드라마 제작자 마음대로 표현되기 일쑤다. 간단한 고증조차 배제하고 역사적 배경이나 사실을 도외시한 채 묘사하고는 한다. 그 과정에서 복식이며 언어, 문화는커녕 민족의 자존심조차 지키기 어려운 묘사가 쉽게 이뤄진다. 문명화된 사회의 일원이 아닌 누더기를 걸친 야만인으로, 거의 도적떼나 다름없는 무뢰배처럼 그리고는 하는 것이다.
이제껏 본 10여 개 사극이 하나같이 그러한데, 이들 민족이 갖고 있던 문명으로서의 군사적, 문화적 역량을 들여다보려는 일말의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는 태도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벗어나 바라보자면 민망할 지경이다. 세상 가운데 우리의 작품이라고 내밀 수가 없다는 뜻이겠다.
점차 콘텐츠의 국경이 사라지고 있다. 온라인, OTT 서비스의 망을 타고 지구 반대편에서 시청자와 만날 수 있는 게 이 시대 제작되는 작품이다. 새 시대의 사극은 '우리 편만 즐겁게 보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서로 다른 민족이 한 작품에서 등장할 때 바람직한 묘사란 어떤 것인지를 보다 사려 깊게 고민해야만 한다. <황제의 딸>처럼 오늘의 한국이 직접 개입되지 않은 역사 가운데서도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게 바로 사극이다. 지배자와 피지배자, 억압하는 이와 억압받는 이의 모양은 시대와 공간을 건너 어디서나 비슷한 모습을 보이게 마련이다. 오늘의 한국 작품들이 취하는 기울어진 자세가 장기적으로는 우리 스스로를 해할 수 있단 걸 기억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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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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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중드' 속 무책임한 묘사... 우리는 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