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영화 <가능한 사랑>은 서정적인 서사에 관능적인 욕망과 감정이 뒤섞이는 소설 같은 작품이다. 대기업 해고 노동자 부부와 부유한 다큐멘터리 여성 감독 부부가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만나 서로 다른 욕망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두 부부의 일상을 통해 대량 해고, 노동의 가치, 삶의 파괴, 직업적 정체성 등 철학적 사유가 내포되어 있다.
넷플릭스와 전략적 동행
▲영화 <가능한 사랑>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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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사랑>의 포지션은 변화된 영화 제작 및 소비 방식의 바로미터다. 제작사의 독립성과 감독의 편집 자유도, 극장 공개를 보장받아 넷플릭스에서 만들어졌다. 자본의 영향으로 망가진 소시민을 비추는 카메라의 시선을 대자본의 힘을 빌려 완성하게 된 셈이지만 관객(시청자)과 영화가 만나 비로소 영화가 완성된다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는 이창동 감독의 시선과 태도와도 연결된다. 10여 년 전 영화 제작을 포기했던 이유 중 하나도 '그들의 고통을 영화로 만들 자격이 있는가'였다. 노동자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재현하지 않는 대신, 고통을 카메라에 담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대체함으로써 질문을 끌어내는 방법에서 해답을 찾았다. 이는 자본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영화를 만들 수 없는 창작자의 필연적인 운명까지 포함되며 현실을 살아가는 누구라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진실과 맞닿는다.
대기업의 대량 해고와 파업, 강제 진압으로 이어진 상처를 정직하게 다룰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시간이 흘러 AI가 일상까지 침투하면서 노동의 가치가 변화되었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해고를 넘어 노동 소멸을 맞을 인간에게 노동이 무엇인지 묻는다.
▲영화 <가능한 사랑>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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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장도 달라졌다. 영화적 예술성은 짙지만 흥행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작품 제작은 위축되었다. 애초 <가능한 사랑>은 영화진흥위원회 제작 지원 사업에 선정되었으나 추가 투자처를 찾지 못해 표류했다. 그 배경에는 팬데믹 이후 OTT의 대중화로 극장 관객 감소와 연결된다. 한국 영화는 늘 어려움을 겪어왔지만 지금처럼 자금의 영향으로 시장 자체가 축소된 사례는 처음이었다. 연이은 창고 영화의 속출로 흥행은 실패했고 허리급 영화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대규모 상업 영화도 흥행을 보장받지 못하자 영화 제작 투자는 위축되었다.
급기야 세계적인 감독, 중저급 규모 영화라 해도 쉽지 않은 현실에 부딪혔다. 한국 문화가 전 세계에 영향력을 끼치는 것과는 정 반대길을 겪고 있는 내수시장의 역설이다. 관망하던 넷플릭스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오랫동안 이창동 감독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극장 개봉을 약속하며 묵묵히 기다렸다.
10여 년 전부터 넷플릭스는 거장의 신작 투자를 지원하며 씨를 뿌려왔다. 우리나라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2017)이후 두 번째다. 대표적인 성공사례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2018)다. <로마>는 베니스 황금사자상을 시작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 촬영상, 국제영화상(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아이리시맨>(2019)도 아카데미 시상식에 노미네이트되며 넷플릭스의 예술 작품 지원 사업에 힘을 보탰다.
넷플릭스의 성과는 작년 베니스영화제를 통해 화려하게 꽃피웠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프랑켄슈타인>, 캐서린 비글로우의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노아 바움백의 <제이 캘리> 세 편을 경쟁 부문에 올렸다. 올해는 큰 수확으로 돌아왔다. <가능한 사랑>이 베니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은사자상)을 받으면서 제2의 <로마>를 꿈꾸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아카데미 레이스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제작 국가 최초 공개 및 7일 이상 극장 개봉이라는 조건을 충족해야 하기에 스트리밍에 앞서 9월 23일 극장 개봉을 선행한다. 이로써 국제 장편영화 부문 한국 작품 선정은 물론, 감독상, 작품상, 각본상, 주연상까지 도전해 볼 기회를 갖추게 되었다. <기생충> 이후 한국 영화의 이름이 다시 불릴 날이 멀지 않았다는 예감도 커진다.
사랑과 욕망, 그리고 치유
▲영화 <가능한 사랑>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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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인물은 무엇을 욕망하고 탐했을까. 먼저 해고 노동자의 아내이자 집안의 생계를 건사하는 미옥(전도연)의 욕망이다. 자본과 계급 앞에서 가족과 자신을 지키려고 분투하는 인물이며, 시련 앞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나아가려는 의지를 보인다. 전혀 마주칠 수 없는 계층과 얽혀 여름휴가를 함께 가지만 그곳에서 환멸을 느끼고 상처받는다.
호석(설경구)은 겉으로만 봤을 때는 무언가를 탐하기보다 빼앗겼다고 생각되는 인물이다. 착취의 대상같이 보이지만, 남과 비교하며 생긴 열등감이 욕망을 만들고 분노로 이어지도록 만들었다. 넉넉지 않은 형편 속에서도 대기업의 정규직으로 살며 노동을 대가로 돈과 사회적 위치를 인정받았다. 작은 행복에 만족하며 살았으나 총파업 이후 감옥까지 다녀오며 자아가 부서졌다. 수치심, 분노, 열등감 등 복합적 감정만 남아 유령처럼 떠도는 폐쇄적인 인물이다.
감독인 예지(조여정)는 남편 상우(조인성)의 자본으로부터 독립해 영화를 만들고자 한다. 정부 예산을 승인받아 제작비를 받았지만 상우라는 절대적 자본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는 독립영화의 성향을 지향하지만 남편의 도움을 수혈받는다. 이창동 감독 역시 창작자가 자본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작품을 만들 수 없는 운명을 예지에게 투영했다. 남의 고통을 자기 것인 양 대상화하거나, 착취하지 않고 진심으로 사랑하려 하는 마음이 앞서지만 대상과 가까워질수록 윤리성을 잃어간다.
▲영화 <가능한 사랑> 스틸컷넷플릭스
마지막으로 상우는 보이지 않는 계급론과 자본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도 있지만 자기 사업을 꾸려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다. 돈이 갖는 이중성, 누군가의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강력한 자본주의 시스템의 인간화다. 여유롭고 친절한 태도를 보이나, 후반부 해변에서 벌어지는 미옥과의 강렬한 대치 장면에서 포악한 욕구가 표출된다. 탐하지 말아야 할 것까지 가질 수 있다고 믿었던 욕심은 균열을 초래하고 또 다른 착취로 이어진다.
호석의 텅 빈 마음을 꽉 찬 보름달처럼 채우기 위해 미옥이 건넨 소소한 위로 같다. 사랑은 폐허를 재건하는 유일한 희망임을 암시한다. 타인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을지를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164분의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할 틈 없는 스토리는 이야기의 진정성이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숨은 메타포는 복잡한 층위를 세워 오랫동안 의미를 곱씹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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