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해." "시간 없어." "늦겠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하루에도 대여섯 번씩 입에 올리는 말이다. 아침에는 학교에 늦을까 재촉하고, 방과 후에는 학원 시간에 맞춰 움직인다. 숙제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아이들의 하루는 촘촘한 시간표를 따라 흘러간다.
친구와 마음껏 놀 시간, 부모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시 쉬어갈 시간은 얼마나 남아 있을까.
김남식&댄스투룹-다의 무용 신작 〈모모와 춤을...〉은 이런 궁금증에서 출발했다.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원작을 무대 위에 그대로 옮기지 않는다. '모모'와 '시간도둑'이라는 상징적 존재를 빌려와 2026년을 살아가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시간을 현대무용으로 다시 들여다본다.
오는 10월 23일부터 25일까지 아르코꿈밭극장에서 공연되는 〈모모와 춤을...〉은 단순히 이야기를 보여주는 어린이 무용극을 넘어선다. 아이들이 움직임을 통해 다른 사람의 리듬을 느끼고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면서 함께 존재하는 시간을 경험하도록 하는 '체험형 현대무용 프로젝트'다.
▲김남식 안무가 프로필
김남식
작품을 만들고 안무를 맡은 김남식 안무가는 두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이다. 이번 작품에 담긴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18일 서울어텀페스타가 열리고 있는 뚝섬한강공원에서 그를 만났다.
"지금의 아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어쩌면 '함께할 시간'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학교와 학원에 쫓기다 보니 친구와 놀고, 가족과 이야기하고, 스스로 쉬어갈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가 작품을 만들며 떠올린 질문도 단순하다. '오늘 학원에 가는 것과 잃어버린 관계를 회복하는 것 중 무엇이 더 소중할까.'
'회색의 시간'에서 '우리들의 춤'으로
▲공연 장면
김남식&댄스투룹-다
〈모모와 춤을...〉의 무대는 시간을 빼앗긴 도시에서 시작한다. 공연은 '회색의 시간'을 그리는 프롤로그에 이어 '잃어버린 시간', '듣는 아이, 모모', '시간의 정원', '우리들의 춤'으로 이어진다. 마지막 에필로그의 제목은 '지금, 여기'다.
시간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출발해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의 시간을 인식하며 마침내 현재의 순간으로 돌아오는 흐름이다. 작품의 중심에는 단순히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것을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이야기가 놓여 있다.
시간도둑 역시 동화 속 악당으로만 등장하지 않는다. 원작의 '회색 신사'를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기계화된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한다.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와 소품을 활용하고, 시계가 '째깍째깍' 움직이듯 반복되고 분절된 동작으로 시간도둑을 형상화한다.
"결국 시간도둑은 외부의 존재이면서 동시에 우리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라고 요구하며 끊임없이 더 빨리 움직일 것을 재촉하는 어른들. 좋은 교육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짜놓은 시간표가 오히려 아이들이 '지금'을 살아갈 시간을 빼앗고 있지는 않은지를 묻는 대목이다.
김 안무가 자신도 아이들에게 "시간 없어", "늦겠다", "빨리해"라는 말을 자주 한다고 했다. 그런 그의 생각을 돌아보게 만든 작은 경험이 있었다. 어느 날 약속에 늦어 급하게 이동하던 그에게 한 후배가 말했다.
"이미 늦었으니 조심해서 천천히 오세요."
재촉하는 말이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 한마디가 마음을 움직였다. 상대방의 시간을 통제하기보다 스스로 자신의 시간을 인식하도록 기다려주는 태도였다.
"아이들에게도 무조건 '빨리'라고 하기보다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인식하고 제대로 걸어갈 수 있도록 말해주고 싶습니다."
이러한 질문을 전달하는 언어는 '춤'이다. 김 안무가는 연극이나 뮤지컬과 달리 무용이 구체적인 이야기를 직접 전달하기에는 어려운 장르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동시에 몸에는 언어 이전부터 존재했던 가장 본질적인 표현과 풍부한 상상력이 있다고 봤다. 오랫동안 어린이들과 교감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몸의 움직임'을 통해 이야기를 전하겠다는 것이다.
객석에서 바라보던 아이들이 직접 움직여
▲공연 장면
김남식&댄스투룹-다
이번 작품에서 눈에 띄는 것은 어린이를 수동적인 관객으로만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대 위에는 성인 무용수와 어린이 무용수가 함께 서고, 공연 후반부에는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어 관객이 자신의 몸으로 공연을 경험하는 장면도 마련된다.
관객은 공연을 바라보는 사람에서 움직임에 참여하는 사람으로 바뀐다. 서로의 몸짓을 보고 다른 사람의 리듬을 느끼며 기다리고 함께 움직인다. 제작진이 이 작품을 '체험형 어린이 현대무용 프로젝트'라고 설명하는 이유다. 김 안무가는 이전 작업을 통해 "몸으로 경험한 것이 가장 솔직하고 오래 남는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작품의 기획 의도도 여기에 맞닿아 있다. 시간을 빼앗긴 아이들이 몸을 통해 다시 듣고 느끼고 함께 존재하는 경험을 하면서 관계와 공동체의 감각을 발견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김 안무가는 〈모모와 춤을...〉을 단순한 어린이 무용극보다는 '온 가족 치유 무용극'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말하는 치유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부모와 아이가 같은 공간에서 공연을 보고 함께 느끼고 움직이는 것 자체가 하나의 치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공연이 끝난 뒤 돌아가는 차 안이나 식탁에서 부모와 아이가 '우리에게 시간은 무엇일까?'라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이 이 작품이 바라는 가장 중요한 치유입니다."
부모와 아이는 서로 다른 세대, 서로 다른 속도의 시간을 살아간다. 그러나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연을 바라보고 함께 움직이는 순간 그 간격은 잠시 좁혀질 수 있다. 김 안무가는 그 경험이 가족 안에 하나의 '공동 기억'으로 남기를 바란다.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김 안무가 역시 자신의 삶을 돌아봤다. 시놉시스를 쓰면서 아들과 딸, 그리고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주변 아이들의 모습을 다시 바라보게 됐다. '정작 이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현실 속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
그에게 〈모모와 춤을...〉은 아이들을 향한 질문인 동시에 부모이자 어른인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 됐다. 그래서 공연이 끝난 뒤 관객에게 하나의 정답을 주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대신 몇 가지 질문이 남기를 바란다.
'나에게 정말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내 아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부모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큰 감동 하나를 남기는 공연보다 서로에게 '좋은 질문'을 남기는 공연이 되었으면 합니다. 정답을 주는 공연이 아니라 가족의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질문을 남겼으면 좋겠습니다."
공연은 '회색의 시간'에서 출발하지만 마지막에 도착하는 곳은 '지금, 여기'다. 어쩌면 시간도둑에게 빼앗긴 시간을 되찾는 방법은 거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 아이에게 "빨리해"라고 재촉하기 전에 잠시 멈춰 서로의 속도를 바라보는 것. 〈모모와 춤을...〉이 춤을 통해 건네는 이야기도 결국 그곳을 향하고 있다.
▲무용 신작 <모모와 춤을...> 공식 포스터김남식&댄스투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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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간 문화예술계에 몸담고 있다. 월간지 <문화+서울> 편집장(2013~2022), 한겨레신문 객원 필진(2016~2023)으로 글을 썼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과 전시 등 다양한 분야의 소식을 전한다. 이밖에 문화예술 전문매체인 '서울문화투데이'와 '더프리뷰' 등에 문화예술 칼럼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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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다 바빠 쫓기는 아이들... 이들의 시간, 누가 훔쳤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