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알의노래 공연 장면
명작옥수수밭
무대 위의 논은 벼만 자라는 곳이 아니다. 개구리와 우렁이, 물방개, 소금쟁이, 논지렁이, 잠자리 등 수많은 생명이 함께 살아가는 작은 세계다. 은정은 이들과 함께 계절을 지나며 벼의 한살이를 경험한다.
농사를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보다 농부의 몸짓과 농사의 리듬을 공연의 언어로 바꾼 것도 특징이다.
모내기와 김매기, 물꼬 트기, 수확과 타작까지 반복되는 노동의 움직임이 배우들의 몸짓과 장단으로 변한다. 왈츠와 펑크 등 서로 다른 리듬이 등장하고, 벼가 자라고 계절이 변하면서 무대의 움직임도 달라진다.
이시원이 특히 눈여겨봐 달라고 꼽은 것은 폭우 장면이다.
폭우에 떠내려가는 은정을 아버지가 붙잡아 다시 땅에 심는다. 겉으로 보면 농부가 벼 한 포기를 살려내는 장면이다. 그러나 은정에게는 자신보다 늘 논을 먼저 생각한다고 여겼던 아버지가 자신을 붙잡아주는 순간이 된다.
아버지는 뿌리를 내리고, 발바닥을 땅에 붙이고, 흔들려도 버티라고 말한다. 벼에게 하는 농부의 말이면서 동시에 세상을 살아갈 딸에게 건네는 말이다. 농사와 가족의 이야기가 가장 직접적으로 겹치는 순간이다.
<쌀알의 노래>는 아이와 어른이 같은 무대를 서로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갑자기 볍씨가 되어 과거의 논으로 들어가 여러 생명을 만나고, 가뭄과 비바람을 견디며 쌀이 되는 모험이다.
반면 어른은 논에서 일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자신의 부모를 떠올릴 수 있다. 어린 은정의 서운함을 보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짚거나, 지금 자신이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모습을 겹쳐볼 수도 있다. 실제로 이시원의 딸도 공연을 본 뒤 물었다.
"저렇게 반항기 가득한 은정이 엄마였어?"
이시원은 "많은 부분 그렇다"고 답하며 함께 웃었다. 자신도 어린 시절 많이 흔들렸고 부모에게 붙잡히며 자랐다는 이야기도 딸에게 들려줬다.
공연 한 편이 엄마의 어린 시절을 딸에게 보여준 셈이다. 이시원이 공연을 본 가족에게 남기고 싶은 질문도 그 연장선에 있다.
'우리 집에서 내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중에, 지나고 보니 누군가의 마음이 담겨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매일 차려지는 밥일 수도 있고 학교에 데려다주는 일, 빨래와 청소, 매일 일터로 향하는 뒷모습일 수도 있다. 한 톨의 쌀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공연장을 나선 뒤 식탁에서 계속된다면 어떨까.
"엄마 아빠는 어렸을 때 어땠어?"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어?"
그런 질문을 나누며 다시 밥 한 그릇을 바라보는 순간, 평범했던 쌀 한 톨도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보일지 모른다.
한 계절의 햇빛과 비, 흙과 물, 그리고 그것을 길러낸 사람의 시간이 그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연극 쌀알의 노래 공식 포스터명작옥수수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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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간 문화예술계에 몸담고 있다. 월간지 <문화+서울> 편집장(2013~2022), 한겨레신문 객원 필진(2016~2023)으로 글을 썼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과 전시 등 다양한 분야의 소식을 전한다. 이밖에 문화예술 전문매체인 '서울문화투데이'와 '더프리뷰' 등에 문화예술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