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크크' 인턴이 상사를 대하는 법... '인턴'이 보여준 진심

[리뷰] 한국판 <인턴>이 세대를 바라보는 방식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2015년 작품 <인턴>은 열정 넘치는 30세 대표(앤 해서웨이)가 경험 많은 70세 인턴(로버트 드니로)을 통해 인간적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국내 박스오피스 기준 총관객 수는 약 361만 명으로 해외 흥행 성적만 놓고 보면 한국이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국가였다고 한다. 그런 작품을 10여 년 만에 한국에서 리메이크한다고 했을 때 배우들의 부담은 어땠을까.

여기서 두 배우의 입장은 조금 갈린다. 나이 많은 인턴 '기호'를 맡은 최민식은 흥행한 할리우드 작품을 리메이크한 만큼 원작과 비교될 수밖에 없어 부담스럽다고 밝혔다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턴> 제작진의 1순위 캐스팅은 처음부터 최민식이었다고. 반면 열정 넘치는 패션브랜드 대표 선우를 맡은 한소희는 명작을 리메이크하는 일이 영광스럽다며 적극적으로 참여 의사를 드러냈다.

영화 <인턴> 포스터
▲영화 <인턴>포스터워너브라더스코리아

30년의 경험과 3년의 성공이 만났을 때

10년도 더 지난 원작 <인턴>을 어떤 메시지로 만났었는지 조금은 흐릿하다. 그래서인지 이번 작품을 보는 동안 원작과의 비교보다는 최민식과 한소희가 만들어낸 기호와 선우라는 인물에 조금씩 눈이 갔다. 두 배우가 각자의 캐릭터를 꽉 채우는 동안 '리메이크 작품'이라는 글씨도 점차 지워지는 듯했다.

기호는 37년 경력의 실버 인턴이고 선우는 불과 3년 만에 자신이 만든 패션브랜드 'Woo22(우투투)'를 매출 100억 원대 회사로 성장시킨 젊은 대표다. 열정도 많고 욕심도 많다. 숨 쉴 틈 없이 바쁘고 정신도 없어 실수도 잦다. 반면 기호는 사회생활만 30년이 넘는다. 은퇴 뒤 노후를 즐길 나이에 3개월짜리 인턴으로 회사의 막내가 된다는 설정부터 눈길을 끈다. 그런 두 사람이 어떻게 인간적으로 가까워질 수 있었을까.

회사를 키우는 능력과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이 반드시 같은 속도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선우를 보면 보다 명확해진다. 일에서는 거침없지만 관계에는 누구보다 서툴다. 그 화살촉은 때로 가족과 동료를 향한다. 엄마의 전화도 중간에 툭 끊어버리고, 바쁘다는 이유로 남편에게도 소홀하다.

반면 기호는 자신의 딸 같은 선우에게 늘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예우를 다한다. 은근슬쩍 비위를 맞추는 알량한 모습이 아니라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노련함과 침착함이 만든 묵직한 중후함에 가깝다.

기호와 선우는 스치듯 지나갈 법한 작은 행동과 소소한 대화를 반복하며 자연스럽게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기호는 상대가 묻기도 전에 자신의 인생 경험을 쏟아내는 '라떼충'이나 꼰대가 아니다. 묻기 전에는 자신의 경험을 잔소리처럼 내뱉지 않는다. 조언할 수 있는 순간에도 기다릴 줄 안다. 자칫 쓸데없는 조언으로 보일 수 있는 미묘한 경계 위에서 한 발 물러설 줄 아는 것 또한 오랜 경험이 만들어낸 묵직함일 것이고 그런 태도는 원작의 벤(로버트 드니로)과도 꼭 닮아 있다.

다만 가족과도 좀처럼 속내를 나누지 못했던 선우가 고작 3개월 만에 기호와 깊은 신뢰를 쌓는 과정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그 과정이 자연스럽게 흘러야 드라마가 완성되는 법이니 영화이기에 가능한 설정이라고 봐도 좋겠다.

사람과의 관계에는 서툰 선우가 자신의 회사만큼은 그토록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도 몸으로 부딪혀야 하는 대표로서의 책임감이면서 회사에 대한 깊은 애착 때문 아니었을까. 빈틈도 많고 누군가 채워줘야 할 만큼 실수도 하지만 결국 함께하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지금의 '대표' 자리에서 모두가 함께 하는 우투투를 빛낼 수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우투투 사무실에서 피자를 먹으며 대화하는 모습 선우(한소희)와 기호(최민식)
▲우투투 사무실에서 피자를 먹으며 대화하는 모습선우(한소희)와 기호(최민식)워너브라더스코리아

늙크크와 영크크가 함께 일하는 법

그만큼 우투투 사람들은 대체로 선하다. 물론 일부는 얄밉다. 젊은 직원이 대부분인 우투투에서 실버 인턴 기호는 분명 낯선 존재였을 테지만 그를 굳이 배척하거나 밀어내지 않는다. 기호 역시 젊은 세대를 무례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며 재단하지 않는다. 영화 속 세대 갈등은 별다른 파열음 없이 자연스럽게 봉합된다. 그것이 현실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나는 젊었거늘 서서 간들 어떠하리."

지금 세대에게는 생경한 문장일 것이다. 세상은 너무 많이 달라졌다. 나이가 들었다고 무조건 지혜로운 것도 아니고 경험이 많다고 모두 노련한 것도 아니다. 젊다고 반드시 진보적이거나 늘 새로운 것도 아니다. 요즘은 '젊꼰'이라 불리는 영크크도, '라떼'를 입에 달고 사는 늙크크도 함께 살아간다. 나이라는 숫자 하나로 한 세대를 규정하기 어려워진 시대다.

결국 <인턴>이 말하려는 것은 나이 차이나 세대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진심과 태도가 아니었을까. 20년이든 30년이든 40년이든 경험의 길이보다 중요한 것은 그 경험을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는 태도다. 젊음보다 중요한 것 역시 자신과 다른 경험을 그저 낡은 것으로 밀어내지 않는 자세다. 진심을 다해 다가가면 나이와 직급을 넘어 어느 순간 서로에게 닿을 수 있다는 것.

물론 이 거친 세상에서 굉장히 순진한 생각일 수도 있다. 현실의 직장은 영화 속 우투투처럼 선한 사람들만 모여 있는 공간도 아니다. 그럼에도 영화가 끝까지 놓지 않는 믿음이 있다면 결국 진심이 아닐까. 현실과 조금 다르다고 한들 어쨌든 진심은 통하는 법이니까.

우투투 막내가 된 실버인턴 기호(최민식)
▲우투투 막내가 된 실버인턴기호(최민식)워너브라더스코리아

김도영 감독의 한국판 <인턴>은 132분의 러닝타임 동안 직장과 세대를 중심으로 가족, 부부, 창업, 동료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과 배신, 화해와 동료애까지 폭넓게 끌어안는다.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에스파의 'Whiplash'에 맞춰 춤을 추는 코믹한 시퀀스부터 선우의 사생활을 길게 따라가는 장면까지 여러 이야기가 이어진다. 다루려는 이야기가 많은 만큼 중반 이후 다소 늘어지는 느낌도 없지는 않다.

반면 짧은 엔딩은 유독 마음에 남는다. 극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순간보다 햇살을 맞으며 음악을 듣고 나란히 앉아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훨씬 평온하게 느껴진다. 시간에 끌려다니던 대표 선우와 시간마저도 노련하게 다룰 줄 아는 기호의 모습이 겹쳐진다. 3년 만에 성공한 사람과 37년을 일한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다. 그 순간만큼은 누가 대표이고 누가 인턴인지도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두 사람 사이로 시간이 별것 아니라는 듯 흘러가는 마지막 장면은 이상하리만치 따스했다. 차가운 겨울이 지나고 그들에게 따스한 봄날이 찾아왔다. 마침내.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인턴 최민식 한소희 김도영감독 인턴리메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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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직장인이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