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 재즈 거장 에디 고메즈의 첫 앨범 껴안고, 그를 만났다

빌 에반스의 오랜 파트너, 에디 고메즈 트리오 내한 공연

 에디 고메즈 EBS 스페이스 공감 콘서트
▲에디 고메즈 EBS 스페이스 공감 콘서트염동교

재즈 애호가들에게 빌 에반스 트리오의 베이시스트는 각별하다. < 포트레이트 인 재즈 (Portrait In Jazz) >(1960)와 < 왈츠 포 데비(Waltz For Debby) >(1962)같은 고전에 일조한 스콧 라파로를 필두로 < 문 빔즈(Moon Beams) >에서 드러머 폴 모티안과 리듬 섹션을 구축했던 척 이스라엘스와 짧게 협연했던 마크 존슨까지. 그중 에반스와 가장 많은 작품을 함께 빚은 인물이 푸에르토리코 출신 연주자 에디 고메즈다.

장르와 시대 무관 다채로운 정체성의 음악가를 소개하는 EBS <스페이스 공감>이 지난 17일 '에디 고메즈 트리오 – 재즈 베이스의 전설'이라는 타이틀로 이 명장을 초빙했다.

세 번째로 만난 그

에반스와의 파트너십 이외에도 당돌하고 실험적인 솔로 경력, 포스트 밥과 재즈 퓨전을 경유한 이 추진력 넘치는 연주인을 2024년 10월 북살롱 오티움과 서울숲 재즈 페스티벌에 이어 세 번째로 만났다.

피아니스트 스테판 칼슨, 드러머 스티브 프루잇의 3인조 구성으로 열린 본 공연은 그레이트 아메리칸 송북(20세기 초중반 재즈 스탠더드와 뮤지컬 음악을 아우르는 명곡 모음집)과 트리오가 직접 작곡한 작품을 아우르는 담백하고 정갈한 음악 만찬이었다. 재즈 스탠더드는 작품성에 기반해 오래도록 대중과 음악가들이 사랑한 곡들을 일컫는다.

'랩소디 인 블루(Rhapsody In Blue)'의 주인공이자 20세기 미국 고전 음악 거성 조지 거슈윈의 '마이 맨 이즈 곤 나우(My Man's Gone Now)'에 이어 에디 고메즈가 직접 작곡한 1992년도 곡 '칙스(Cheeks)'가 울려 퍼졌다.

개구리의 둥근 몸처럼 트럼펫을 불 때 볼이 부풀어 오르는 트럼페터 디지 길레스피에게 바치는 곡이라고. 곡명의 유래처럼 유쾌한 곡조였다. 피아니스트 스테판 칼슨과 드러머 스티브 프루잇의 콜 앤 리스폰스가 돋보였다.

미국 작곡가 지미 반 휴센 (Jimmy Van Heusen)이 1943년 지은 '잇 쿠드 해픈 투 유(It Could Happen to You)'도 비운의 천재 피아니스트 버드 파월부터 일본의 대표적 재즈 보컬리스트 키미코 카사이까지 무수한 음악가가 커버한 스탠더드. 공교롭게도 바로 전날 연희동의 엘피 카페 하우스 오브 바이닐에서 레이베이의 우아한 음색으로 이 곡을 접했는데 트리오 앙상블이 상반된 매력을 선사했다.

 에디 고메즈 트리오 EBS 스페이스 공감 콘서트
▲에디 고메즈 트리오 EBS 스페이스 공감 콘서트염동교

제롬 컨 작곡, 오스카 해먼스타인 2세 작사의 '올 더 띵스 유 아(All The Things You Are)'에서 계속되었다. 컨-해먼스타인은 1927년 뮤지컬 < 쇼보트(Show Boat) > 속 '올 맨 리버(Ol' Man River)'와 '캔트 헬프 러빙 댓 맨(Can't Help Lovin' Dat Man)'을 합작한 뮤지컬 음악계의 역사적 콤비. 한국인 부인에 한때 한국에 살았을 만큼 이 땅과 인연 깊은 스티브 프루잇의 솔로가 빛났다.

스웨덴 출신으로 1990년대부터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건설해 왔던 스테판 칼슨은 고메즈 못지않게 역량을 떨쳤다. 에디 고메즈 트리오의 2007년 작 < 팔레르모(Palermo) >에 실린 '스마일링 아이즈(Smilin' Eyes)'에서 섬세한 필치를 드리운 칼슨은 공연 목록 후반부 '트라이킹즈(Trikings)'에서도 악곡을 주도했다.

과거 존 콜트레인과도 협연했던 드러머 지미 코브와 고메즈, 칼슨의 일본 투어에 대해 "전율을 일으키는"이란 뜻의 "스트라이킹(Striking)"란 수식어가 나왔다고 한다. "Striking"의 알파벳을 재조립해 "Trikings"란 제목을 얻었으며 "세 명의 왕(Tri-Kings)"란 중의적 의미도 의도했다고. 활로 베이스 줄을 켜는 "아르코(Arco)" 주법으로 동양적 선율을 가미했던 '트라이킹즈(Trikings)'에서 칼슨의 작곡 능력을 감지했다. 말씨 하나하나 신중하고 신사적이었던 스테판 칼슨을 공연 종료 후 잠깐 마주쳐 최애 피아니스트를 물었더니 "빌 에반스와 허비 행콕, 칙 코리아"라고 답해주었다.

공감 홀 청중의 열화와 같은 "앙코르!" 외침에 다시 연단 위에 오른 거장은 미국 작곡가 겸 지휘자 빅터 영이 1949년 지은 재즈 스탠더드 '마이 풀리시 하트(My Foolish Heart)'를 연주했다. 감상적이며 사뭇 절절한 이 곡은 에반스와도 인연이 깊다. 상기한 걸작 실황 음반 < 왈츠 포 데비(Waltz For Debby >에서 이 곡에 절정기를 투영했으며 완숙기에 다다른 1975년 "미국의 목소리" 토니 베넷과의 < 더 토니 베넷/빌 에반스 앨범(The Tony Bennett/Bill Evans Album) >에서 보컬과 피아노로 명곡이 환생했다.

 "Bill Evans At The Montreux Jazz Festival
▲"Bill Evans At The Montreux Jazz Festival염동교
몇몇 에디 고메즈 골수팬이 사인받기 위해 공연장 주위를 서성였다. 팔목에 피아노 건반 문신을 새긴 이는 빌 에반스와 2025년 10월에 별세한 드러머 잭 드조넷과 에디 고메즈가 협연한 라이브 앨범 < 빌 에반스 앳 더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Bill Evans at the Montreux Jazz Festival) >을 들고 혹시나 모를 행운을 고대했다. 십대로 보이는 청년은 에반스와 고메즈, 드러머 엘리엇 지그문트 구성으로 1980년 출반된 < 아 윌 세이 굿바이(I Will Say Goodbye) >를 꼭 껴안은 채 "에반스의 정점이라고 생각해요"라며 상찬했다.

약 30분 후 드디어 등장한 고메즈. 1944년생 노구(老軀)는 분명 지쳤을 텐데도 팬들의 눈을 마주치며 여운을 공유했다. 1976년 작 < 다운 스트레치(Down Stretch) >에 사인받을 때 "내 첫 솔로 음반이야!" 외치기에 "제일 좋아하는 당신의 솔로작"이라고 말했다. 드러머 스티브 개드와 콜라보한 더 개드 갱의 1986년 작 < 더 개드 갱(The Gadd Gang) >은 오랜만에 실물로 본다며 놀라워했다.

재즈 공연 전문 기획사 재즈 브릿지 컴퍼니의 주관하에 9월 18일 대구 배리어스 재즈클럽과 9월 19일 서울 성수아트홀에서 열리는 단독 공연, 9월 20일 인천 송도 트라이보울 재즈 페스티벌에 이르는 "에디 고메즈 트리오 코리아 투어" 덕에 2024년에 이어 한국과 이 푸에르토리코 거장과의 관계가 두터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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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 염동교라고 합니다. 대중음악을 비롯해 영화와 연극, 미술 등 다양한 문화 예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