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아"가 "괜찮아"가 되기까지… 차나깨비가 아이들에게 건네는 말

[인터뷰] 창작국악극 <차나깨비 이야기>의 사부작당 송현아 대표

 사부작당 송현아 대표 프로필
▲사부작당 송현아 대표 프로필송현아

"귀찮아, 하기 싫어."

미취학 아동을 키우고 있는 학부모라면 크게 고개를 끄덕일 말이다. 어른들에게는 조금 얄밉게 들릴 수도 있지만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입장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말이다. 그런데 '귀찮아'를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도깨비가 있다. 이름도 '차나깨비'다.

무지개마을의 도깨비들은 저마다 화려한 색깔 도술을 부리지만 차나깨비가 만들어내는 색은 언제나 검은색뿐이다. 친구들은 하나씩 새로운 색을 만들어내는데 자신만 뒤처진 것 같다. 하기 싫다고 도망치지만 마음속에는 남들과 다르다는 불안이 자라난다.

오는 10월 15일과 16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꿈밭극장에서 공연하는 사부작당의 창작국악극 <차나깨비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지난 12일 대학로에서 만난 사부작당 송현아 대표에게 가장 먼저 물었다. 왜 하필 '차나깨비'일까.

"차나깨비는 늘 '귀찮아, 하기 싫어' 하면서 도망다니는 아이예요. '귀찮아'를 아이들 말투로 하면 '귀차나'가 되잖아요. 거기에 도깨비를 붙인 이름이에요. 그런데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는 '귀차나깨비'가 '괜차나깨비'가 돼요."

작품의 시작과 끝이 이름 하나에 들어 있는 셈이다. 귀찮다는 말 뒤에 숨었던 아이가 결국 자기 자신에게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과정이다.

검정색은 정말 아무 색도 아닐까

 차나깨비 이야기 공연 연습
▲차나깨비 이야기 공연 연습사부작당

<차나깨비 이야기>의 도깨비들은 색깔 도술을 부린다. 짜기와 로기는 매일 연습하며 새로운 색을 늘려가지만 차나깨비가 아무리 도술을 부려도 나오는 것은 검정색이다.

"이 작품에서 색깔은 마음이에요. 짜기와 로기가 만들어내는 색은 매일 쌓은 노력과 진심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죠. 반면 차나깨비의 검정색은 아무것도 없는 색이 아니에요. 여러 색을 다 품고 있지만 아직 마음이 열리지 않아 하나로 뭉쳐 있는 상태예요."

송 대표는 빨강·주황·노랑·초록·파랑·남색·보라의 일곱 색을 모두 합치면 검정에 가까워지는 것처럼 차나깨비의 검정 역시 '아무 색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여러 색을 모두 품고 있지만 아직 밖으로 꺼내지 못한 상태라는 것이다.

그래서 색은 누가 더 잘하는지를 가르는 점수가 아니라, 자기 마음을 얼마나 솔직하게 들여다보고 꺼내놓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에 가깝다. 이 설정에는 송 대표의 실제 경험도 녹아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이 실수를 걱정하고 친구와 자신을 비교하며 작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작품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더 분명해졌다.

"딸에게 '괜찮아'라는 말을 많이 해줬는데, 그 말을 하다 보니 제 어린 시절도 떠올랐어요. 저도 그맘때 누군가에게 그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작품은 누군가가 차나깨비를 위로해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남이 나한테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내가 나 자신에게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라고 생각해요."

어린 시절 '다르다'는 것은 쉽게 '부족하다'는 감각으로 바뀐다. 송 대표는 그래서 짜기와 로기, 차나깨비를 경쟁 관계로 만들지 않았다. 짜기와 로기의 길이 '성실한 반복'이라면 차나깨비의 길은 '자기 자신과 마주하기'다. 방식이 다를 뿐 어느 한쪽이 더 우월한 것은 아니다.

"차나깨비가 마지막에 짜기나 로기처럼 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여전히 차나깨비인 채 자기만의 무지개를 만들어내죠. '다르다'는 건 '부족하다'가 아니라 자기만의 속도와 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라는 걸 아이들이 느꼈으면 해요."

차나깨비는 끝까지 차나깨비다. 달라지는 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방법이다. 작품이 향하는 곳은 '잘하는 나'보다 먼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데 있다.

도깨비 방망이 대신 '색깔 부채'

 차나깨비 이야기 제작진
▲차나깨비 이야기 제작진사부작당

사부작당은 판소리와 민요를 기반으로 창작국악극을 만들어왔다. 이번 작품은 창작국악과 라이브 연주에 인형극, 색깔 부채, 노래와 움직임을 결합했다. 어린이 관객이 배우들과 함께 주문을 외치거나 노래에 참여하는 장면도 있다. 사부작당이 처음으로 인형극에 도전한 작품으로, 차나깨비와 함께 등장하는 '따라깨비'도 주요한 볼거리다.

국악은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니다. 가사에 어울리는 선율과 장단을 만드는 '작창' 과정을 거쳐 판소리와 민요의 말맛과 시김새를 살리고, 연주자들이 직접 무대에서 배우와 호흡한다.

"전통음악이라고 어렵게 가르치기보다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하고 싶었어요. 무대 위 모두가 마음을 모아 하나의 에너지를 만드는 게 저희가 생각하는 음악극이에요."

도깨비들이 드는 것도 방망이가 아니라 '색깔 부채'다. 색을 다루는 도깨비라는 설정에 맞춰 익숙한 이미지를 비튼 장치다. 의상과 조명, 소품과 움직임 역시 '마음의 색깔'이라는 추상적인 주제를 어린이들이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집중했다.

따라깨비 역시 처음에는 차나깨비의 말을 따라 하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차나깨비 마음속 그림자와 연결된 존재임이 드러난다.

"따라깨비가 차나깨비의 마음속 그림자였다는 걸 서서히 깨닫는 과정을 함께 지켜봐 주시면 좋겠어요."

작품의 초기 구상은 지금과 달랐다. 처음 차나깨비는 마음속 보물상자를 열 수 있는 '열쇠'를 찾아 숲을 헤매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작업을 이어가면서 방향이 달라졌다.

"차나깨비에게 필요한 건 밖에 숨겨진 물건이 아니더라고요. 자기 안에 이미 있던 용기였어요. 그래서 '무언가를 찾아내는 이야기'에서 '이미 가지고 있던 것을 마주하는 이야기'로 바뀌었죠."

배우들과 작업하면서 따라깨비가 차나깨비의 말을 따라 하다가 처음으로 다른 말을 하는 장면도 더 중요해졌다. 송 대표는 이 순간을 "극에서 가장 마음을 움직이는 장면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공연을 본 아이에게 남기고 싶은 것도 결국 그 마음이다.

"거울을 보면서 '나는 이미 내 색깔을 가지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서툴고 자신 없어 보여도 아직 다 꺼내지 못했을 뿐 자기만의 색은 분명히 있으니까요."

송 대표는 이 이야기가 어린이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저 역시 이 작품을 쓰면서 제 안의 오래된 불안들에게 위로를 건넨 셈이에요. 그러니 차나깨비는 우리 모두에게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최고의 어른일지도 모르겠네요."

'귀찮아'를 외치며 마음을 숨겼던 차나깨비는 그렇게 '괜찮아'를 말할 수 있는 아이가 된다. 그 말은 어쩌면 공연장을 찾은 어린이보다 함께 온 어른에게 먼저 필요한 말이 아닐까.

 창작국악극 <차나깨비 이야기>의 공식 포스터
▲창작국악극 <차나깨비 이야기>의 공식 포스터사부작당

연극 사부작당 창작국악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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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간 문화예술계에 몸담고 있다. 월간지 <문화+서울> 편집장(2013~2022), 한겨레신문 객원 필진(2016~2023)으로 글을 썼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과 전시 등 다양한 분야의 소식을 전한다. 이밖에 문화예술 전문매체인 '서울문화투데이'와 '더프리뷰' 등에 문화예술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