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나의 빨간날' 공연 연습
비영역공작단, 아르코 제공
<나의 빨간날>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지점은 말로 정확하게 설명되지 않는 마음이다. 어린이는 자신의 감정을 적절한 단어나 문장으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때 어른이 너무 빨리 자신의 언어로 해석하면 복잡했던 마음이 '슬픔'이나 '화', '외로움' 같은 하나의 감정으로 단순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이 대표는 재이의 마음을 말로 모두 설명하지 않으려고 했다. 재이 자신조차 바로 알아채거나 이름 붙이기 어려운 마음을 빛과 움직임, 소리와 사물 같은 무대의 감각으로 옮긴다. 관객이 작품 속 재이의 마음을 각자의 방식으로 만나고 상상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기는 것이다.
"어린이의 말이 어른의 언어로 너무 쉽게 해석되면서 그 감정이 납작해질 때가 있다고 생각해요. 재이가 바로 이름 붙일 수 없는 마음을 굳이 하나의 감정으로 규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관객이 자기 감각으로 만나고 상상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주제는 묵직하지만 공연의 주요한 언어는 유머와 놀이다. 책에서 익숙하게 만났던 위인들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생각지도 못한 존재들이 엉뚱하게 등장한다. 사실적인 공간을 재현하기보다 빛과 사물, 소리와 배우의 몸이 서로 만나면서 새로운 이미지와 놀이를 만들어내는 것도 특징이다.
이 대표는 공연을 본 어린이와 어른이 같은 장면에서 같은 감정을 느낄 필요도 없다고 했다. 자신의 경험과 기억에 따라 누군가는 재이의 마음을 따라가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아주 작은 장면이나 사물 하나를 오래 기억할 수 있다. 공연이 하나의 의미를 전달하기보다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가 어린이에 관한 작품을 만들면서 끝까지 붙잡는 태도 역시 '잘 모르겠다'는 데 있다. 어린이든 어른이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결국 눈앞에 있는 한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계속 알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 궁금해하고 질문하는 것이 제가 어린이를 만나는 방식이기도 하고 작품 속 인물을 만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공연을 본 뒤 부모가 아이에게 정답을 확인하듯 "무슨 내용이었어?"라고 물을 필요도 없다. 서로 어떤 장면이 재미있었는지, 무엇이 기억에 남았는지를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다 보면 아이가 오히려 부모에게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그 대화 끝에 작품이 처음 시작했던 또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나의 빨간날은 어떤 날일까.'
세상의 달력에 정해진 기념일이 아니라 나에게 특별한 날은 무엇인지 떠올려보는 질문이다. 누구에게도 특별하지 않지만 자신에게만은 잊고 싶지 않은 사람이나 사건, 아주 작은 순간일 수도 있다.
"꼭 지금 당장 말로 정리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날을 한번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연에서 만난 질문이나 감각이 어딘가에 남아 있다가 어느 날 문득 다시 떠오를 수도 있으니까요."
<나의 빨간날>은 어떤 날이 더 중요하다고 알려주는 공연이 아니다. 남들이 모두 특별하다고 말하는 날이 정말 나에게도 특별한지, 그리고 나는 무엇을 기억하고 싶은지를 묻는다. 그 질문 앞에서는 어린이와 어른의 자리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연극 '나의 빨간날' 공식 포스터비영역공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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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간 문화예술계에 몸담고 있다. 월간지 <문화+서울> 편집장(2013~2022), 한겨레신문 객원 필진(2016~2023)으로 글을 썼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과 전시 등 다양한 분야의 소식을 전한다. 이밖에 문화예술 전문매체인 '서울문화투데이'와 '더프리뷰' 등에 문화예술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