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상영작 <노래하는 사람>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사카이 고 감독과 함께 도호쿠 지역으로 향했다. 두 감독은 관심을 가졌던 것은 미디어를 통해 경쟁하듯 쏟아지는 재해 장면의 재현이 아닌 그곳에 남은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이른바 '도호쿠 기록 3부작'의 출발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작품은 마지막 <노래하는 사람>(2013)이다. 앞선 두 작품 <파도의 소리>와 <파도의 목소리>에서 생존자들이 무엇을 보았고 어떤 시간을 통과했는지 기록했던 두 사람은 갑자기 미야기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오래된 민화를 주제로 끌고 온다. 오랫동안 도호쿠 지역의 민화를 채록해 온 민속학자 '오노 가즈코' 씨가 지역 이야기꾼들의 민담을 듣는 방식을 차용하면서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3부작 가운데 처음의 두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말하는 사람이었다. 재난을 직접 경험한 이들은 카메라 앞에 앉아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거대한 재난을 하나의 사건으로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언어로 다시 말하게 하는 것이 두 감독의 출발점이었다. 실제로 그들의 말을 청취하는 이들에게는, 화면 안팎에 존재하는지에 대한 여부를 떠나 일방적으로 전달받는 역할만이 주어진다.
하지만 <노래하는 사람>에는 이야기꾼 앞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오노 가즈코'라는 존재가 적극적으로 존재한다. 오랫동안 도호쿠 곳곳을 찾아다니며 지역의 민화를 채록해 온 인물이다. 그의 역할은 지극히 단순하다. 웃고, 고개를 끄덕이고, 짧은 말로 반응하며 상대가 계속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는 대화적 기틀을 마련한다. 그 과정에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 들어주는 사람이 마주 앉아 대응하면서 하나의 이야기, 장면이 완성된다. 다시 말하면, 더 이상 듣는 행위가 일방적이고 수동적으로 주어지고 있지만은 않다는 뜻이다.
민화는 때때로 변하고, 그래서 살아남았다.
영화 속에서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세 인물, '이토 마사코', '사사키 겐', '사토 레이코'의 민화에는 다양한 소재와 접근법이 존재한다. 현실을 벗어난 존재가 등장하기도 하고, 우화의 형식을 빌리기도 한다. 이런 방식은 구전(口傳)을 위해 호기심을 일으키기 위한 용도일 것이다. 들여다봐야 할 것은 구전의 형식이다. 민화에는 처음 이야기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도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고 세부적인 내용은 세대를 지나며 지역과 개인에 따라 조금씩 변하기도 했다.
실제로 극 중에 등장하는 세 명의 주요 이야기꾼은 같은 이야기를 조금씩 다른 내용으로 전달하곤 한다. '효론코 방구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이야기가 입을 통해 전달되는 과정에서 상황에 따라 표현이 달라지고 일부 내용이 바뀌기도 한 것이다. 대체로 우리가 기억을 보존한다고 생각할 때 원래의 형태를 최대한 정확하게 남기고 기록하는 일을 떠올리게 되는 것과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 변화가 이야기를 오래 살아남을 수 있게 만든다. 재난의 기억 또한 마찬가지로 그래야 할 것이다.
재난의 기억을 다음 세대에까지 전달하는 일
바로 이 지점에서 3부작 가운데 마지막 작품인 <노래하는 사람>은 다시 동일본대지진과 연결된다. 재난의 형상이 직접적으로 그려지거나 다른 두 작품처럼 언급되는 일은 없지만 동일한 질문이 여전히 계속되는 것이다. <파도의 소리>와 <파도의 목소리>에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던 사람들은 언젠가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그 앞에서 이야기를 듣던 이들처럼 (관객을 포함하여) 다음 세대의 존재들 역시 점차 낯설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야기와 경험이 여전히 살아 있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하마구치 류스케와 사카이 고 감독은 민화로부터 오래된 전승의 구조를 발견했던 것 같다. 2011년 3월 11일의 비극적인 사건, 그 기억과 경험이 하나의 살아있는 이야기가 되어 전달되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 말이다. 이제 하나의 구조가 완성되었다. 과거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었던 이야기꾼들이 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가 되었듯이, 구전의 과정을 통해 비극의 시간 역시 한 세대의 청자가 다음 세대의 화자가 되는 방식으로 오래 전달될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이 글의 처음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전시되듯 자극적으로 소비되던 장면의 반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하마구치 류스케 영화의 원류와도 같은 작품
이 작품은 3부작의 틀을 벗어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이후 극영화를 바라보는데도 의미있는 영화로 둘 법하다. <해피 아워>를 비롯해, <드라이브 마이 카>, <우연과 상상> 등 많은 작품에서 '대화'가 중요하게 활용되고 있어서다. 한 인물이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고, 이를 들은 상대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현상을 생각하게 되고 바라보게 되는 일.
이는 어쩌면 처음부터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뛰어난 대사를 만들어 내는 스토리텔러이기 이전에 다른 사람의 말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 고민하는 창작자이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감독 본인은 이를 '연결'이라고 표현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민화는 다시 여러 사람 앞에서 이야기된다. 이야기꾼의 목소리를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관객들에게 다시 건너온다. 스크린 밖의 관객들 역시 '오노 가즈코' 씨의 자리를 이어받아 한 편의 영화를 보는 사람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듣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말하고 듣는 것, 아주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왔을 이 단순한 행위로부터 재난의 자리에서 시작된 3부작의 여정이 모두 끝난다.
이 작품을 포함한 <도호쿠 재난 3부작>은 아쉽게도 쉽게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사건의 시간을 지나온 이들이 너무 쉽게 소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채널을 제한하고 있으며, 이번 영화제와 같은 특별한 기회를 통해서 오프라인 공간에서만 상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몇 번의 기회가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도 아주 없을 것 같지는 않다. 상영 소식을 알게 된다면, 언젠가 꼭 한번 3부작 모두를 관람할 수 있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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