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여성까지 춤... 한국 락 발상지에서 열린 페스티벌

2026 동두천 락 페스티벌

 2026 동두천 락 페스티벌
▲2026 동두천 락 페스티벌염동교

동두천은 한국 대중음악사, 특히 록밴드가 뿌리내린 도시다. 한국전쟁 이후 동두천에 거주한 미군들이 당대 미국 팝송을 전파했으며 실력파 음악가들이 경제적 수입과 선진 문물을 습득하기 위해 미8군 부대를 찾았다. 한국 록 대부 신중현과 김홍탁, 윤항기 등 1세대 로커들이 동두천을 거쳤다.

이처럼 록의 세례를 받은 도시는 국내 최장수 록 페스티벌을 잉태했다. 1999년 시작되어 올해 26회를 맞은 동두천 락 페스티벌(Dongducheon Rock Festival). 지난 13일, 스파르탄 브라스와 데킬라 올드패션드, LOW(이오욱밴드)와 불고기 디스코, 마야와 크랙샷, YB(윤도현밴드)까지 총 7팀이 출연한 날에 다녀왔다.

미8군 군인들로 구성된 '스파르탄 브라스'는 오프닝과 예열 이상의 흥취를 선사했다. 2025년 7월 인천 문학경기장에 강림했던 팝 아이콘 예(카니예 웨스트)의 명반 <마이 뷰티풀 다크 트위스트디 판타지(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 속 '올 오브 더 라이츠(All Of The Lights)'와 펑크(Funk) 여제 샤카 칸의 '쓰루 더 파이어(Through The Fire)를 관악으로 편곡한 이들은 블랭핑크의 테크노 넘버 '뛰어!'로 친근감도 확보했다. 앙코르로 빌리 아일리시의 '배드 가이(Bad Guy)'까지 장르를 넘나든 스파르탄 브라스는 일시적 결합체가 아닌, 국내의 여러 문화 행사에 참여 중인 악단이라고 한다.

 2026 동두천 락 페스티벌 중 스파르탄 브라스
▲2026 동두천 락 페스티벌 중 스파르탄 브라스염동교

에어로스미스의 1970년대 아메리칸 하드록과 머틀리 크루의 1980년대 아메리칸 팝 메탈을 경유하는 데킬라 올드 패션드의 음악은 동두천의 586세대를 사로잡았다. 현재 MZ세대들이 열광하는 큐어나 스미스 같은 영국 포스트 펑크, 브리티시 기타록과 달리 1980년대 국내에서 라디오와 빽판으로 득세했던 건 포이즌과 신데렐라 같은 헤비메탈이었기 때문.

깁슨 기타 특유의 기름진 톤이 돋보였던 '룩 포워드(Look Forward)'와 리드보컬 임준의 카랑카랑한 고음이 빛난 '테이크 잇 오프!!(Take It Off!!)'처럼 이들의 지향점은 1980년대를 가리켰다. 밴드 바투를 이끌었던 기타리스트 정지원은 화려한 플레이와 더불어 관중석까지 내려와 교감하는 등 리더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스탠딩 존 뒤편에선 "청년밴드 데킬라 올드 패션드"라고 적힌 하얀 깃발이 나부꼈다.

더 이상 공연을 볼 수 없지만 감각적인 모던록으로 2010년대를 수놓았던 4인조 칵스를 기억한다. 이현송은 이제는 신토불이 디스코 밴드 불고기 디스코를 이끌고 있다. 이현송 특유의 여유로움과 긍정주의는 불고기 디스코 그루브와 함께 넘실댔고 척 봐도 관록이 감지되는 멤버들이 충실하게 리듬을 쏟아냈다.

김동현의 잘게 쪼개지는 커팅 기타가 돋보였던 '비 유어셀프(Be Yourself)', 프린스 '키스(Kiss)'의 영향이 감지된 신곡 '헤이 나우(Hey Now)'는 남녀노소 춤바람을 불러왔다. 바로 옆 중년 여성은 "이박사 삘인데"라며 열심히 허리를 돌렸다.

 2026 동두천 락 페스티벌 중 불고기 디스코
▲2026 동두천 락 페스티벌 중 불고기 디스코염동교

이오욱밴드는 이날 라인업의 트렌디 록 담당이었다. MC 겸 개그맨 조승제의 "듣고픈 이오욱밴드 노래가 있나요?"라는 질문에 어느 청중이 답변으로 외쳤던 '두렵지 않아서'와 신곡 '널 부를게'에서 이용욱의 가창력이 부각되었다. JTBC 오디션 경연 프로그램 <싱어게인 4 – 무명가수전> 정상에 오를 정도로 보컬 능력을 인정받았다.

감성적 모던 록 색채가 자연스레 넬을 상기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곧이어 넬의 김종환이 작·편곡에 참여한 '니가 있는 곳'이 들려왔다. 걸 그룹 투애니원의 '어글리(Ugly)' 리메이크로 30분 세트를 완성한 이오욱밴드는 "로우"란 밴드명처럼 낮은 음역대부터 고주파까지 뜨거운 에너지를 끌어올렸다.

삐죽한 염색 머리가 익숙했던 터라 동그란 단발을 한 채 연단에 들어선 첫 등장이 생경했다. 가수 마야. 2000년대 초중반에 걸친 그의 절정기는 나의 초등학교 고학년을 관통했기에, 2003년에 발표한 '진달래꽃'과 '쿨하게'를 부른 순간 타임머신 타고 유년기로 돌아간 것 같았다. 긴 공백기를 거쳐 오랜만에 선 무대라 더욱 의미가 깊다고 말한 그는 물류 배송원의 애환을 담은 '콰로맨'을 공유했다. 올해 4월부터 매월 하나씩 내놓는 시리즈 성격의 신곡 중 하나라고.

데킬라 올드 패션드에 이어크랙샷도 1980년대 메탈의 향수를 자아냈다. 2021년 JTBC 오디션 경연 프로그램 <슈퍼밴드2>에서 크랙실버의 형태로 우승을 거머쥔 크랙샷은 수상에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기량이 출중했다. 구성원 하나하나 비르투오소의 기술을 보유했는데 재패니즈 메탈의 기타리스트처럼 착장한 윌리K는 네오 클래시컬 메탈의 본좌 잉베이 맘스틴 같은 화려한 기교를 뿜어냈고, 베이스 기타리스트 싸이언은 은은하게 타 포지션을 지원하는 악기"로서의 선입견에서 벗어난 리드기타 같은 멜로딕한 연주를 들려줬다.

머틀리 크루의 '킥스타트 마이 하트(Kickstart My Heart)'를 오마주한 듯한 '라우드! 핫! 크레이지!(LOUD! HOT! CRAZY!)'에서 열띤 무대 액션과 정교한 소리가 공존했다. 무대 앞쪽엔 젊은 열성팬이 보였는데, 전통적 하드락과 메탈이 경향성에서 한 발 물러난 지금 크랙샷이 이 장르의 대표주자로 메탈 인구를 결집해 줬으면 하는 소망이다.

 2026 동두천 락 페스티벌 중 윤도현밴드
▲2026 동두천 락 페스티벌 중 윤도현밴드염동교

헤드라이너이자 "국가대표"란 칭호가 합당한 윤도현밴드가 무대에 당도했다. 박노해의 시 "참된 시작"에 선율을 붙인 1997년 작 '이 땅에 살기 위하여'에서 윤도현은 확성기를 든 채 민중의 의미를 증폭시켰다. JYP엔터테인먼트의 록밴드 엑스디너리 히어로즈가 음원에 참여했던 '리벨리온(Rebellion)'에서의 짐승이 포효하는 듯한 거친 창법을 일컫는 "그로울링"과 고속도로처럼 시원하게 뻗어나간 '박하사탕'은 국보급 목청을 공인했다.

'리벨리온(Rebellion)'과 "관음자"를 뜻하는 '보이어리스트(Voyeurist)', 대곡지향적 '오키드(Orchid)'가 수록된 실험작 <오디세이(Odyssey)>을 2025년에 내놓은 윤도현밴드. 낮게 튜닝한 전기기타와 복잡한 리듬을 골자로 하는 젠트(Djent)로 또 한 번의 음악적 진화를 알린 작품이었다. "답습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쇄신하는 밴드가 되겠습니다"라는 윤도현의 공연 중 멘트와도 어울렸다. 제목처럼 멈췄다가 다시 시작하길 반복한 전인권의 '돌고 돌고 돌고' 리메이크까지 윤도현밴드는 약속 시간 30분을 훌쩍 뛰어넘는 공연으로 축제의 대미를 장식했다.

협소한 부지로 인한 이벤트부스의 부족, 30분으로 결코 길지 않은 아티스트별 할당 시간은 약점이었지만, 무료 축제임을 감안하면 록팬, 특히 주류에서 밀려난 하드록·메탈 계열 마니아들에겐 단비와도 같은 행사가 아닐 수 없다. 한국 록의 발상지라는 상징성에 무게감을 더해가고 있는 동두천 락 페스티벌이 2027년엔 또 어느 음악가와 함께 역사를 켜켜이 쌓아갈지 함께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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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 염동교라고 합니다. 대중음악을 비롯해 영화와 연극, 미술 등 다양한 문화 예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