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크레딧이 오르고 나서 비로소 시작되는 영화가 있다. 극장을 나와 거리를 걸으며, 끝난 영화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러닝타임에 묻지 못한 질문을 잇달아 물어오는 작품이 있다. 어떤 영화가 끝나지 않는 질문을 물어오는 한, 그 작품은 진정으로 끝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작품의 생명 또한 그 질문이 유효한 한에서는 지속되는 것일 테다. 아마도 <옵세션> 또한 그런 영화일 것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영화가 그저 <미저리>, 혹은 <겟 아웃>의 아류이며 기껏해야 '피그말리온' 전설의 현대적 변주쯤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이들 작품이, 또 그 원형이 워낙 걸출한 탓으로, 파생된 영화 또한 그만한 파장이 있는 것이 아니겠냐고 생각하였다. 누텔라잼을 써 만든 빵이 맛이 있다면 그것이 어찌 제빵사의 공일 수가 있겠느냐고 말이다.
<옵세션>은 무속적 도구에 의지해 짝사랑하던 여자의 마음을 얻은 남자 베어(마이클 존스턴 분)의 이야기다. 같은 매장에서 일하는 동료직원 니키(인디 레버네티 분)를 남몰래 좋아하던 모태솔로 총각 베어가 골동품 상점에서 산 소원을 이뤄준다는 도구 '원 위시 윌로우'를 부러뜨리며 빈 소원은 니키가 저를 사랑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소원은 참말로 이뤄지고, 니키는 그대로 베어를 남자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옵세션스틸컷
유니버설픽처스
<옵세션>은 새로운 영화일까?
<옵세션> 가운데선 저 유명한 롭 라이너의 <미저리>, 조던 필의 <겟 아웃>, 그리고 원작자조차 누구라 말할 수 없는 피그말리온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미저리>는 다리를 다쳐 움직일 수 없게 된 소설가가 열성 팬의 집에 감금돼 광기어린 집착을 당하는 내용을 다뤘다. 그 집착이 어찌나 파격적이었던지 당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미저리'는 그대로 타인에게 광적으로 집착하는 이를 지칭하는 말로 자리 잡았다.
니키가 베어를 사랑하는 모습은 <미저리> 속 작가를 구속하는 팬과 닮아 있다. 단 한 순간도 베어와 떨어져 있지 못하는 니키다. 퇴근 후나 휴일의 여가는 물론이고, 일터에 출근하는 것조차 제대로 할 수 없도록 속박하는 모습이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질투는 또 어떤가. 베어의 관심을 받는 건 오로지 저 하나여야만 한다는 듯, 애완동물이며 다른 직장 동료와 가까워지는 것에 비정상적인 불쾌감을 표하기도 한다. 오로지 나만 바라보길 원하는 집착은 '네 가죽으로 스웨터를 짜 입고 싶다'는 기형적 표현과 맥이 닿는다. 개체로 존재하는 두 개의 인격이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소유하는 관계로 변질될 때 인간은 본래적 불쾌함과 마주한다. <미저리>와 <옵세션>의 닮음은 그 감정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보는 이 내면의 불편을 깨운다는 점일 테다.
<겟 아웃>의 명장면을 단 하나만 꼽으라면, 자기 몸을 타인에게 빼앗기고 육체 안에 봉인된 주인공의 깨어 있는 정신을 시각적으로 표현해낸 시퀀스가 아닐까 한다. 스스로의 몸 안에 침잠돼 아무리 노력해도 의식의 표면 위로 솟아오르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육체와 정신이 본래적으로 접착돼 있다 믿는 관객에게 일종의 바디호러적 공포감을 자아낸다. 그저 검증된 방식으로 관객을 자극하는 영화가 아닌, 공포란 감정이 유래하는 근원을 직접 찾아나서 두드려보는 이와 같은 영화야말로 명작이라 불러 마땅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관련 기사 :
백인 여자친구 집에 인사하러 가는 흑인 남자친구의 마음)
▲옵세션스틸컷
유니버설픽처스
꿈은 이루어진다?
<옵세션>은 베어의 소원이 작용한 뒤 니키가 제 신체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 모습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순간순간 본래의 의식이 깨어나는 듯 비명을 지르고, 현실을 부정하고, 스스로가 자기 자신이 아니란 걸 표출하는 니키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 동안 니키는 전혀 다른 니키, 곧 베어를 사랑하는 니키로 산다. 그녀는 전에 없던 방식과 강도로써 베어를 사랑하고, 집착하며 구속한다. 베어는 니키가 니키가 아닌 줄 알면서도, 적어도 짐작이며 의심은 하면서도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방치한다. 결국 점령자 니키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모조리 넘은 뒤에 잠이 든 어느 날 밤, 제 몸을 빼앗긴 진짜 니키가 수면 위로 올라와 베어에게 말을 건다. 저를 죽여 달라고, 반드시 죽여 달라고 간절히 요구한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 따르면 피그말리온은 키프로스 섬의 뛰어난 예술가였다. 키프로스의 수호신인 아프로디테를 모시던 피그말리온은 귀한 재료인 거대한 흰 상아를 깎아 인간 여자와 같은 크기의 여인을 조각한다. 피그말리온의 이상형, 더없이 아름답고 고귀한 여성의 외연이 그 조각 안에 투영된다. 당대 키프로스의 문란하고 시시한 다른 여인들과는 다른, 귀하고 아름다운 여인을 피그말리온이 사랑했다던가. 너무 깊은 사랑에 괴로움마저 느끼게 된 어느 날, 피그말리온은 제가 숭배하는 아프로디테에게 공물을 바치고서 이 조각과 같은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게 해달라고 소원하였다. 그리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조각의 입술에 입을 맞추자 그 소원은 이루어진다. 직접 깎아낸 조각이 산 소녀가 되어 피그말리온과 혼인하는 결말은 신화 속 그리 흔치 않은 해피엔딩이라 해도 좋겠다.
▲옵세션스틸컷
유니버설픽처스
신화 속 해피엔딩, 나는 반댈세!
물론 이 영화가 피그말리온 모티브를 차용한 첫 작품은 아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포기하지 못하여 절대적이며 초월적 무엇에 기대는 영화가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여러 작품이 있다. 개중 상당수는 <옵세션>이 그러했듯 신화와는 다른 길을 간다. 초현실적인 사건도, 전지적 힘조차도 사랑과 관계만큼은 한순간에 완성하지 못한다.
<일곱 가지 유혹> <왓 위민 원트> <루비 스팍스> <브루스 올마이티> 같은 작품은 어떤 능력도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얻어낼 수 없단 걸, 관계는 소원으로 재물처럼 취득되는 것이 아님을 확인하게 한다. 어떤 영화는 일방적이며 무리하게 획득된 사랑을 공포의 소재로 활용한다. <크래프트>나 <위시 어폰> 같은 작품이 그러한데, <옵세션>도 얼마쯤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이해할 수 있겠다.
<옵세션> 속 사랑이 절절해질수록 관객은 영화를 보기가 힘들어진다. 니키의 선 넘는 집착이 <미저리>처럼 몰아쳐오는 때문이다. 물론 <미저리>의 장르적 탁월함은 <옵세션>을 훌쩍 능가하여서 나는 이 영화가 역시 고전이며 명작과는 댈 것이 아니라고 고개를 젓는다. <겟 아웃>이 활용했던 '신체 속 감금'의 설정은 이 가운데서 <옵세션>이 지닌 분명한 무기다. 그러나 이 또한 <겟 아웃>의 연출적 탁월함에 전혀 미치지 못하여서 나는 역시나 '형만한 아우 없다'는 오랜 격언을 떠올리고 만다.
▲옵세션포스터유니버설픽처스
영화가 끝난 뒤 시작되는 물음들
그러나 극장을 나와 길을 걸으며, 또 영화를 깊이 이해하는 다른 이들과 대화하며 나는 <옵세션>의 유효함이 영화가 끝나고도 꽤나 오래 지속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영화가 관객에게 던진 질문, 그러니까 사랑이란 과연 소유할 수 있는 것인가를 관객은 되풀이하여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것이다.
'사랑과 로맨스는 다르다'는 니키의 말은 어쩌면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베어는 니키를 사랑한다 말하지만 그 사랑일랑 생명 없는 상아 속 형상을 대하며 그녀가 아닌 신에게 사랑을 구하도록 허락해 달라 비는 피그말리온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는 물론 로맨틱하지만, 관계와 사랑은 되지 못하는 것이다. '옵세션(Obsession)'이란 제목 그대로, 집착이고 강박에 가깝다.
그리하여 영화는 피그말리온에게 허락된 신화적이며 초월적이고 예외적이며 낭만적인 사랑을 베어에게 허하지 않는다. 대신 <미저리>의 집착을 내민다. 이 파멸이 네 오해와 강요의 마땅한 결말이라는 듯.
영화 속 니키가 저를 죽여달라고 말했을 때, 니키가 니키가 아님을 베어가 알 수 있었을 수많은 순간들은 엔딩크레딧이 오른 뒤 관객에게 중한 질문을 던진다. 베어가 사랑한 건 진실로 니키인가. 그 사랑이 진실했다면 어째서 베어는 제 몸을 빼앗긴 니키를 외면했는가. 그가 사랑한 건 대체 무엇인가. 이와 같은 질문 앞에서 그 답을 진지하게 구할 때 <옵세션>은 진실로 공포스러워지는 것이다.
아, 그러고 보자면 그리스 신화 속 에로스의 화살이 불러온 희비극은 또한 <옵세션>과 얼마나 절묘하게 통하는지. 이를 맞춰보는 즐거움일랑 '씨네만세' 독자 제현의 것으로 남겨둘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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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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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크레딧 이후 시작되는 영화, <옵세션>이 던지는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