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의 귀환, 오아시스만 주인공은 아니다

오아시스의 재결합 투어 기록한 다큐 영화, <돈 룩 백 인 앵거>

 영화 <오아시스 : 돈 룩 백 인 앵거>
▲영화 <오아시스 : 돈 룩 백 인 앵거>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지난해 대한민국에서 열린 공연 중 단연 최대의 사건은 오아시스(Oasis)의 단독 내한 공연이었다. 오아시스가 주축인 노엘 갤러거, 리암 갤러거 형제의 극심한 다툼으로 해체된 지 무려 16년 만에 진행된 재결합 투어였다. 결코 일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꿈 같은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1990년대가 전성기였던 영국 록밴드의 공연에 수많은 2030 관객이 모여 그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마법이 실현되었다. 지난 9월 9일 롯데시네마에서 단독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오아시스 : 돈 룩 백 인 앵거>(딜리안 서던, 윌 로벨라스 연출)는 이 재결합 투어의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팬들이 예상했듯이, 이 영화는 관계 회복의 서사다. 노엘과 리암은 2009년 프랑스 파리에서의 다툼 이후 15년 동안 의절했고, 서로의 얼굴을 단 한번도 마주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노엘 갤러거는 40대에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고, 30대였던 리암 갤러거 역시 50대 중반이 되었다.

이 영화는 밴드의 재결합 공연을 몇 주 앞둔 2025년 봄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리허설을 위해 마주했을 때도, 형제는 눈을 좀처럼 마주치지 않는다. 프로답게 리허설을 진행한 후, 리암은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현장을 떠나 버린다. 노엘은 그런 동생의 모습을 보고 '진정한 비즈니스 모드'라며 혀를 찬다.

하지만 형제 간의 장벽은 리허설과 투어를 거듭하면서 무너져 내린다. 재결합 후 첫 공연이 열린 웨일스의 카디프 프린시팔리싵 스타디움. '투모로우 네버 노우즈(내일은 절대 알 수 없다)'라는 비틀즈의 노래가 흘러나오더니, 리암은 형의 손을 잡고 무대 위로 오른다. 노엘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후 두 사람은 천천히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오랜 앙금을 풀어 간다. 리암은 형이 만든 멜로디의 위대함을 칭송한다. 노엘 역시 동생 리암이 얼마나 거대하고도 유쾌한 존재였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젊은 날 끊임없이 반목하던 두 사람은 더 이상 자존심을 세우지 않는다. 전성기 시절 밴드의 독재자로 군림했던 노엘은 동생의 말을 중심에 둔다. 리암 역시 노엘의 말을 귀담아 경청한다. 영화 초반에는 따로 진행한 인터뷰로 등장하던 형제의 모습이 영화 후반부에는 합동 인터뷰를 하는 구도로 바뀌는 구성 역시 절묘하다. 오아시스의 오랜 팬들이라면 감개무량할만한 순간이다.

 영화 <오아시스 : 돈 룩 백 인 앵거>
▲영화 <오아시스 : 돈 룩 백 인 앵거>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아티스트, 그리고 팬들이 함께 완성한 이야기

이 영화는 음악 영화, 콘서트 영화의 기능에도 충실하다. '돈 룩 백 인 앵거(Don't Look Back In Anger)', '원더월(Wonderwall)', '리브 포에버(Live Forever)', '슈퍼소닉(Supersonic)', '슬라이드 어웨이(Slide Away)' 등 수많은 명곡이 연주되었던 공연 실황이 웅장하게 울려 퍼진다. 공연장마다 음향 상태가 달랐음에도, 마치 같은 공연장에서 연주한 것처럼 균일하게 들리는 사운드가 일품이다.

지난해 고양에서 열린 내한 공연의 순간을 발견하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오아시스를 간절히 기다린 팬들이 춤추고, 울고, 껴안고, 노래하는 모습 역시 영화에 자세하게 담겨 있다. 팬들의 열광적인 모습은 우리가 흔히 보아왔던 팝스타, 록밴드의 공연 영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하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 이 영화에서 팬들은 갤러거 형제와 동등한 수준의 주역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첫 공연이 열린 웨일스의 카디프를 비롯해 미국,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국가의 팬들이 등장한다. 영화는 다양한 국가를 가로질러 전 세계 오아시스 팬들의 사연을 듣는다. 한국의 한 오아시스 팬은 "오아시스의 음악은 내가 넘어질 때 함께 넘어져주고, 또 일으켜준다"며 그들의 음악이 가지고 있는 긍정 정신을 이야기한다.

아르헨티나의 팬은 지역 축구팀에 대한 애정, 노동자 계급으로서의 정체성을 오아시스에 투영한다. 맨체스터 테러의 생존자인 한 영국 여성은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곡 '돈 룩 백 인 앵거'를 라이브 현장에서 듣게 되자 감격한다. 저마다 각자의 삶에 새겨져 있는 오아시스가 존재하는 셈이다. 영화를 보는 팬들 역시 그들의 모습에 자신을 대입할 수 있게 된다.

극중 나레이션에서 노엘 갤러거는 "이것은 우리와 팬들이 함께 만든 것이다"라고 말한다. 대중음악의 역사는 위대한 아티스트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음악을 듣는 팬들이 함께 만들어왔음을, 갤러거 형제와 이 영화는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이번 재결합 투어를 거치면서 오아시스는 모든 것을 이뤄냈다. 개인적으로는 가족의 재건을 이뤄냈다. 거시적으로는 허무하게 끝나버린 밴드의 역사를 명예롭게 다시 세웠다. 음악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다. 이번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갤러거 형제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열린 시사회에 참석했다. 리암이 청중의 호응을 즐기고 있는 동안, 형 노엘은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독설가로 유명한 그의 면모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믿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그의 눈물이 납득되기 시작했다. '성난 얼굴로 돌아보지 마(Don't Look Back In Anger)'라는 말은, 스스로에게 해 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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