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름한 목욕탕, 세신사 손에 이끌려 가 본 장면

[극장가는 길] 예술집단C의 < TANG > (황지선 작·연출)

연재 "극장가는 길"은 어둠이 번지는 저녁, 극장을 향해 걷는 발걸음에서 시작된다. 객석과 무대에서 벌어지는 밀고 당기며 교차하는 숨소리, 조명기 점멸, 사라졌으나 사라지지 않는 세계 변화의 순간을 길어내고 이를 기록한다. 나는 지역의 연극과 축제의 현장을 묵묵히 걷고 보면서 그 무대의 잔상과 스쳐간 감정과에 대해 적으며 동시대적 의미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기자말]
씻김을 위한 탕(湯)

 예술집단C의 < TANG > 커튼콜
▲예술집단C의 < TANG > 커튼콜조훈성

드디어 예술집단C를 만났다. 2014년에 창립한 단체의 작품을 이제야 보러 갔다는 게 조금 민망해진다. 서대신동 녹천탕을 찾아 부러 구불구불 골목을 걸어올라 가면서 그 소회가 남다르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의 연극은 극장에서가 아니라 동네 허름한 목욕탕에서다. '푸른 물'이라는 이름을 가진 오래된 목욕탕에서 공연 포스터에 적힌 대로 '그녀들을 위한 작은 제의'를 벌인다는 게 남다른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게 한다. 그리고 다소 낯선 'Theatrical Performance'라는 극 형식, 굳이 직역하면 '연극적 몸짓'은 이미 관객에게 몇 개의 선명한 극적 단서를 건넨다. 재현극만은 아닐 것이고, 또 이야기만으로 완결되지도 않을 것이라는, 그래서 연극과 무용, 음악과 영상, 의례적 상징과 배치가 뒤섞여, 관객의 몸까지 어떤 기억의 장으로 끌어들일 것이 분명했다. 심지어 바뀐 새주소가 '해돋이로 335번길 4'다. 씻김 후에 해돋이까지 '탕(湯)'은 준비한 것인가.

굿에서의 '씻김'이 단순히 더러움을 없애는 행위가 아닌 것처럼, 그것은 말해지지 못한 것을 불러내고, 맺힌 것을 풀며, 죽은 이와 산 이 사이에 길을 내는 일이다. 기억을 지운다고 해서 상처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오히려 그 지워진 자리에는 더 짙은 얼룩과 고통, 불안을 남긴다.

<TANG>은 바로 그 얼룩을 지우는 게 아니라 지울 수 없음을 신체적으로 감각하게 한다. 이 연극적 행위의 장에서 여성의 고통은 오랫동안 개인적 이든 가족, 공동체 사회, 국가적으로든 '지워야 할 것', 수치스럽고 떳떳하지 못한 것으로 은폐되고 가려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씻김은 그러한 여성수난사의 고통을 소거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말할 수 없었던 숨겨진 당사자의 고통을 말할 수 있게 만드는 것에서 시작된다.

 예술집단C의 공연장소인 서대신동 녹천탕
▲예술집단C의 공연장소인 서대신동 녹천탕조훈성

울림을 위한 탕!

<TANG>의 프롤로그는 녹천탕 영업 마지막 날이다. 목욕탕에 들어서면 협소한 공용 탈의실에 입장해 사물보관함에 물품을 낳고, 입장객들은 평상과 간이의자에 앉아, 낡은 텔레비전을 바라보기도 하고, 호객하는 세신사가 섞여 소란스레 손님을 맞이한다. 낡은 TV에서 흘러나오는 옛 만화영화 <캔디>, 1980년대의 호돌이 마스코트 홍보 KTV 화면은 특정 세대의 추억을 건드린다.

사전 대기실의 이러한 추억소환 장치는 따뜻한 과거 회상에 머무르지만은 않는다. 목욕탕은 몸이 가장 적나라한 무방비한 상태로 드러나는 곳이자, 어떤 계급과 계층, 나이와 질병, 상처와 노화가 감추어지지 않는 장소다. 세신사의 손에 이끌려 탕 안에 들어서면 입구 양쪽으로 2열의 객석이 마련되어 있는데, 그렇게 탕이 습하지는 않았다. 세신사들은 공연 전부터 관객과 대구하며 긴장된 분위기를 푼다. 그들의 왁자지껄한 부산 사투리 특유의 거센 소리들이 탕 안에 공명으로 섞인다. 이들의 관객과의 트임은 낯선 장소에 들어선 관객의 긴장을 풀어 주는 동시에, 이곳이 자신들이 오랫동안 축적해 온 일상적이고 친밀한 노동공간이라는 것을 환기한다.

공연은 장이나 막 대신 'ACT'로 나뉜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사이에 배치된 일곱 개의 ACT는 환향녀, 여성독립군,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 기지촌 여성, 여공, 그리고 이름 없이 살아가고 사라진 여성들의 몸을 불러낸다. 옴니버스 형식이지만 각 장면은 따로따로 분절되어 흩어져 있지는 않다. 한 여성의 몸에서 다른 여성의 몸으로, 한 시대의 억압과 폭력에서 다음 시대로, 한 상처에서 다른 상처로 이어지는 흐름이다. 이는 '여성'이라는 서로 다른 역사적 조건 속에서 반복되어 온 여성의 취약성과 그 저항을 하나의 물길로 묶어 내는 방식이다.

지워지지 않는 얼룩

ACT 1 '몸을 씻는 사람들'은 일상의 목욕탕 풍경에서 출발한다. 손님을 탕으로 안내하고, 서로의 안부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던 세신사들은 차츰 저마다의 기억 속으로 빠져든다. ACT 2의 '돌아갈 수 없는 몸—환향녀를 위한'에서는 발목에 족쇄처럼 보이는 열쇠꾸러미부터 눈에 들어온다. 또 검은 얼룩은 지워지지 않는 낙인처럼 몸에 남아 있다. 유리창에 새겨진 글자를 닦아 내려고 애쓰는 장면, 카카오톡 알림음으로 증폭되는 수군거림은 과거의 폭력이 오늘의 소문과 댓글, 낙인과 배제의 언어로 되돌아오는 방식을 보여 준다.

여성의 몸은 한 번의 폭력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몸은 귀환 이후에도, 타인의 시선과 공동체의 혐오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된다. '환향녀'는 역사적 여성으로서 보다는, '돌아왔으나 돌아갈 곳이 없는' 여성의 비극을 말해준다 할 것이다. 전쟁국가의 남성 중심의 공동체는 여성의 몸을 민족적 명예나 정절의 기호로 사용하면서, 그 폭력의 피해자에게 다시 수치의 몫까지 떠넘겼다. 이 장면에서 재현의 수위를 높이기보다, 지워지지 않는 흔적과 반복되는 소리를 통해 폭력 이후의 시간을 감각적으로 공명화한다.

ACT 3 '기억되지 못한 몸—여성독립군을 위한'에서는 신체성이 무척 강렬하다. 총성과 함께 무너지는 여성, 벽면에 맵핑된 철로를 달리는 열차, 붉은 꽃잎의 이미지,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은 역사 투쟁 한복판의 여성을 위치시키고, 역사에서 쉽게 지워진 여성의 투쟁을 강하게 압축한다.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남성 영웅들 중심의 서사 조직은 여성을 보조적이거나 예외적으로 놓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탕'에서는 '기억되지 못함'을 단순한 결핍으로 다루지 않으며, 오히려 사라진 이름을 탕 안을 활보하는 몸의 균형과 붕괴, 낙하와 버팀의 신체성으로 드러낸다.

ACT 4 '잊혀지지 않는 몸—위안부 여성을 위한'은 가장 인상적 장면 가운데 하나다. 신문을 읽던 행위가 구겨진 신문지 인형으로 변하고, 그 인형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을 상징한다. 종이인형을 물에 담그는 행위는 단순한 정화가 아니라 넋받이 의례를 연상시킨다. 종이는 기록의 재료이지만 쉽게 구겨지고 찢기며 버려진다. 신문은 사건을 보도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누군가의 삶을 낡은 종잇장처럼 덮어 버리기도 한다.

공연은 그 종이를 다시 인형으로 만들고 물에 담근다. 기록되지 못한 존재를 기록으로, 기록에서 다시 몸으로 되돌려 놓는 작업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에서는 이를 이미지를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배우들은 고통을 재현해 관객의 연민을 얻기보다, 살아있는 몸과 물, 종이와 소리의 관계를 통해 애도의 차별적 형식을 만든다.

ACT 5 '지워지지 않는 몸—기지촌 여성을 위한'에서 디스코 조명과 화려하게 웃는 노랑머리 소녀의 얼굴은 어느 순간 깊은 주름의 얼굴로 바뀐다. 기지촌 여성의 삶은 국가안보와 경제성장, 외화 획득이라는 거대한 명분 아래 오랫동안 주변부로 밀려났고, 그 여성들은 국가가 필요로 할 때는 동원되며 불편해질 때는 지워졌다.

이 장면의 웃음은 그래서 명랑하지 않다. 그것은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한 표정이며, 살아남기 위해 수행해야 했던 표정이기 때문이다. ACT 6 '닳고 앓은 몸—여공들을 위한'에서는 미싱 소리와 반복되는 기계음이 탕 안을 공기를 바꾼다. 불빛 아래 작업복은 검게 물들고, 소녀의 몸은 점점 닳아 간다. 산업화의 휘황한 서사 뒤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감당해야 했던 저임금, 장시간 노동, 유해한 작업환경, 통제된 기숙사 생활과 감정노동의 시간들이 이에 압축된다.

다시 숨 쉬는 녹천

<TANG>을 바리데기와 나란히 놓고 볼 수도 있겠다. 딸이라는 이유로 버려지고, 부모를 살리기 위해 저승의 길을 떠나며, 마침내 삶과 죽음 사이를 매개하는 존재가 되는 서사는 여성의 고난을 담아낸 대표적인 여성수난담이지만, 동시에 버려진 존재가 길을 열고 생명을 되찾게 하는 능동적 주체가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TANG> 속 여성들은 고통받는 피해자의 도상으로 정지하지 않는다. 그들은 물속에서 서로의 몸을 씻기고, 상처 난 몸을 보듬으며, 서로에게 넋받이가 된다. 이때 씻김은 누군가가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구원하는 행위가 아니다. 상처 입은 몸들이 서로를 살피고, 기억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행위가 된다. 주디스 버틀러가 <젠더 트러블>(문학동네, 2024)에서 젠더를 "매우 단단한 규제의 틀 안에서 반복된 몸의 양식이자 반복된 일단의 행위"라고 했다.

여성다움은 자연스러운 정체성이 아니라, 사회적 규범이 몸에 반복적으로 새긴 결과라는 의미다. 다시 말해 <TANG>의 세신사와 소녀, 기지촌 여성과 여공, 위안부 피해 여성과 여성독립군은 하나의 '여성성'을 대표하지 않는다. 이들은 서로 다른 시대와 제도, 전쟁과 산업화, 군사주의와 자본주의가 여성의 몸에 강요해 온 서로 다른 역할과 낙인을 드러낸다. ACT 7에서 앞선 여성들의 굴곡진 서사는 한데 모인다. 물속에서 여성들은 서로의 몸을 씻고, 상처를 어루만지고, 닦아 낸다. 에필로그의 화관을 쓴 소녀들은 정화된 존재라기보다, 애도의 과정을 지나 새롭게 맞이되는 존재처럼 보인다. 여기서 정화는 과거를 깨끗이 지워 버리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기억 속에 제대로 자리 잡게 하는 일이다. 망각을 위한 목욕이 아니라, 기억과 공존하기 위한 씻김이라 할 수 있다.

녹천탕 안에서 벌어진 라이브 밴드의 음악, 목욕탕 3면을 활용한 영상 맵핑, 배우들의 아크로바틱한 신체, 코러스의 집단적 움직임은 각기 따로 놀지 않는다. 물과 타일, 조명, 기계음과 총성, 디스코의 번쩍임과 미싱의 반복음이 하나의 인상적으로 감각화된다. 특히 장소특정적 공연의 장점은 이처럼 무대장치가 아니라 실제 공간이 가진 기억을 작품의 일부로 사용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녹천탕의 마지막 영업일이라는 설정은 공연 자체를 하나의 송별 의식으로 만든다. <TANG>은 한국 여성수난사의 박제된 역사교육이나 비극의 전시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몸의 수행성과 장소의 감각, 그리고 서로를 씻겨 주는 집단적 행위를 통해 이를 새롭게 인식시킨다. 여성의 고난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여성은 더 이상 고난의 대상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녀들은 기억하는 자이고, 애도하는 자이며, 서로를 살리는 자다. 바리데기가 저승길을 건너 생명의 물을 가져왔다면, <TANG>의 여성들은 물속에서 서로의 몸을 닦으며 아직 끝나지 않은 삶의 길을 연다. 녹천탕의 마지막 씻김은 이 날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한국 여성수난사의 씻김은 한 편의 공연으로 종결될 수 없고, 종결되어서도 안 된다.

환향녀와 여성독립군,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 기지촌 여성, 여공, 그리고 끝내 이름을 남기지 못한 수많은 여성들의 몸은 여전히 우리의 일상과 제도안에 다양한 언어와 차별적 시선 속에 남아 있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망각을 위한 정화가 아니라, 기억을 지속시키기 위한 제의가 필요한 지도 모른다. 예술집단C의 <TANG>은 그 제의의 작은 시작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생각보다 깊고 오래 남는다. 많은 녹천탕이 있어 이러한 씻김의 공간으로 다시 숨을 틔울 수 있기를 바란다.

 예술집단C의 < TANG >포스터.
▲예술집단C의 < TANG >포스터.예술집단C



<TANG>
∙주최_주관_예술집단C
∙공연_2026년 9월9일~9월12일
∙장소_서대신동 녹천탕(부산광역시 서구 해돋이로 335번길 4)
∙작,연출_황지선
∙출연_이혜영, 이은주, 김소이, 김여진, 김아름, 이윤하
∙조연출, 연기디렉팅_전성호
∙움직임,안무_이용진
∙음악_꼭두, 한상훈
∙공간디자인_박주호
∙영상디자인_송지훈
∙조명디자인_조세현
예술집단C TANG 씻김 여성수난 황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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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나고 자랐으며, 전통연희, 굿, 마당극 등을 연구하고, 또 그 마당을 보러 다녔다. 공연장 안팎을 분주히 걷다 보니,연극, 공연 축제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이 생업이 되었다. 지역 문화예술정책에 관심이 많아 이와 관련한 심의, 자문 등의 일도 겸하고 있다. 2024년, 『묵음_ 다음에 걸음, 그리고 스페이스바』 (그래도, 2024) 등을 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