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예술단이 선보이는 창작가무극 <청사초롱 불 밝혀라>는 조선 시대에도 웨딩 업체가 있었다는 기발한 상상에서 시작한다. 웨딩 업체의 이름은 '청사초롱'으로, 행수 '윤덕'은 부부에게 '세상에 단 하나뿐인 특별한 혼례를 만들어주겠다'는 목표로 업체를 운영 중이다.
어김없이 혼례를 치르고 있던 어느 날, 청사초롱의 행수 윤덕 앞에 한 청년이 나타난다. 청년의 이름은 '노들'로, 어머니의 결혼식을 부탁하기 위해 윤덕을 찾아온 것이었다. 노들은 일찍 남편을 잃고 홀로 자신을 키워온 어머니의 새 출발을 위해 다른 남자('장씨')와의 결혼식을 치러주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당시는 과부의 재혼이 제도적으로 금지된 시기로, 노들의 바람은 그 자체로 위험천만한 일이다. 평민이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요즘 말로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며 제2의 결혼생활을 즐기는 것쯤은 가능하겠지만, 시끌벅적한 결혼식을 여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 어려운 일을 <청사초롱 불 밝혀라>는 기꺼이 해내려 한다.
▲창작가무극 <청사초롱 불 밝혀라> 공연 사진
서울예술단
유쾌한 분위기, 그 속에서도 놓치지 않는 주제 의식
공공성을 지닌 예술단체의 작품들에는 고유의 특색이 엿보인다. 어떤 단체는 민간 프로덕션이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이유 등으로) 잘 시도하지 못하는 실험을 벌이고, 또 어떤 단체는 세대와 성별을 폭넓게 아우르며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서울예술단은 후자에 가깝다.
그동안 서울예술단은 익숙한 소재나 친근한 표현 방식을 통해 관객들과 만나왔다. 저항 시인 윤동주의 이야기를 <윤동주, 달을 쏘다>로 재탄생시켰고, 웹툰 <나빌레라>와 <신과 함께>도 뮤지컬로 무대화했다. <청사초롱 불 밝혀라>는 우리의 전통 혼례를 소재로 삼고,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무는 친근한 방식으로 관객에게 다가가는 작품이다.
관객은 노들과 청사초롱이 펼치는 여정의 목격자인 동시에, 이들이 계획하고 실행하는 결혼식의 하객이 된다. 배우들은 공연 시작 전부터 등장해 관객 전체에게 말을 건네고, 공연이 시작되면 한바탕 마당놀이가 벌어진다. 중간중간 배우들이 객석에 올라와 함께 호흡하기도 한다.
공연은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하지만, '결혼'과 '결혼식'이라는 소재에 대한 나름의 문제의식 역시 놓치지 않는다. 오늘날 결혼식은 지나칠 정도로 상업화되어 일종의 소비 행위이자 과시 행위처럼 보이기도 한다.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을 일컫는 '스드메'는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굳어진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는 경제 여건이라는 현실적 문제가 결혼식 간에 차이를 만들고, 때문에 어떤 이는 결혼식이라는 '통과 의례'를 치르기 못하기도 한다.
▲창작가무극 <청사초롱 불 밝혀라> 공연 사진
서울예술단
이는 극 중 조선 시대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때도 신분, 경제 여건 등의 문제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윤덕은 그런 사람들마저도 특별한 결혼식의 추억을 간직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청사초롱을 운영해 왔다. '스드메'도 패러디된다. 청사초롱 내에서 극강의 손기술을 자랑하는 '수', 조선의 가위손이라 불리는 '두', 메이크업 아티스트 '매'로 이어지는 '수두매' 트리오는 극 중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결혼식이라는 사회·문화적 차원뿐 아니라 결혼이라는 제도적 차원도 짚는다. 과부는 재혼할 수 없다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제도에서 <청사초롱 불 밝혀라>의 모든 문제가 시작됐다. 다른 변수들을 제거하고 나면 남는 것은 사랑이지만, 본질적인 사랑 외에 변수들에 지나치게 치중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걸 놓쳐온 꼴이다.
오늘날에도 제도 탓에 여전히 사랑하지만 부부 관계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소수자가 대표적이다. 또 결혼이라는 제도가 사랑하는 사람 간의 관계를 협소하게 규정하기 때문에, 다른 관계를 상상하거나 시도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지를 무력화하기도 한다. 뮤지컬 속 과제는 외양을 조금 달리했을 뿐,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노들나루 강물이 바다로 흘러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는 날에는, 지금 당장은 꿈꾸기 어려운 결혼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극 중 대사는 우리로 하여금 '진보의 희망'을 품게 한다.
한편 <청사초롱 불 밝혀라>는 오는 13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관객과 만난다. 이기완·이한수(노들 역), 김건혜(윤덕 역), 고석진·안재홍·윤태호(수·두·매) 등이 출연한다.
▲창작가무극 <청사초롱 불 밝혀라> 공연 사진서울예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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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웨딩업체가 있었다면? 과부의 시끌벅적 결혼식은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