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영화가 무대로, '카르페디엠'을 외치고 싶다면

[안지훈의 연극 읽기]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 공연 사진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 공연 사진마스트인터내셔널

영국의 명문 고등학교에 새롭게 부임한 문학 교사는 학생들에게 뜬금없이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를 즐겨라)" 정신을 가르치고, 학생들은 그런 교사를 향해 "오 캡틴, 마이 캡틴"이라고 부르며 따른다. 엉뚱한 교사와 혈기 왕성한 학생들의 만남은 그 자체로 긴장감을 자아내고, 이들의 수업 시간은 흡사 모험을 연상시키며, 학생들이 세상을 향해 소리를 지를 때면 왠지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진다.

지난 4일 관람한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는 동명의 아카데미상 수상 영화를 탄생시킨 톰 슐만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원작 소설을 쓴 톰 슐만이 무대화를 위해 직접 희곡을 다시 썼고, 중견 연출가 조광화의 지휘 아래 한국 초연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원작 소설의 텍스트도 훌륭하고, 영화도 관객의 마음을 울리기 충분하지만, 배우들이 직접 뛰고 노래하며 눈앞에서 소리를 질러 대는 연극은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견고한 성'에 나타난 한 명의 낭만주의자

학교는 지식을 전수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학교는 시·공간을 통제하고, 사회 통념과 규범의 내면화를 끌어낸다. 이런 작용을 두고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규율 권력'이라는 용어를 고안해 설명했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배경이 되는 '웰튼 아카데미'는 여느 학교보다 더 심한 규율 권력이 작동하는 곳이다. 웰튼 아카데미는 명문 상급 학교 진학이라는 단일한 목표를 위한 교육기관으로, 이 목표를 위해서라면 다른 모든 것을 수단화하는 곳이다.

연극을 여는 첫 번째 장면은 '개학식'인데, 여기서 교장 '미스터 놀란'은 학생들에게 학교의 4대 교훈을 역설한다. 학생들 역시 4대 교훈을 어찌나 많이 들었는지, 줄줄 외울 정도다. 4대 교훈은 바로 전통, 규율, 명예, 일류다. 전통을 지키고 규율을 따라 명예를 얻고 일류가 되는 것, 더 세속적이고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말 잘 듣고 좋은 대학에 진학해 웰튼 아카데미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이 학생들의 임무다.

전통, 규율, 명예, 일류는 얼핏 듣기엔 좋은 말처럼 들리지만, 조금만 삐딱하게 생각하면 얼마든지 안 좋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바로 이 삐딱한 시각을 견지하는 듯하다. '전통'은 그동안 지켜온 웰튼 아카데미의 단일한 가치를 유지함으로써 기득권을 공고화하기 위한 가치가 아닌가. '규율'은 말 잘 듣는 사회 구성원을 만들기 위한 것이고, 말 잘 듣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명예'는 사람들을 말 잘 듣는 존재로 만들기 위한 가치가 아니던가. 마지막으로 '일류'는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달성할 수 있는 가치로, 공생이 아니라 경쟁, 승리를 미덕으로 여기게 만든다.

학교는 학생들이 이 가치를 진리처럼 여기길 바란다. 학교의 바람대로 학생들이 이 가치를 의심하지 않고 내면화 한다면, 그들은 더 이상 다른 세상을 상상하기 어려워진다. 그럼 오직 이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비성찰적 존재, 더불어 사는 삶은 고려하지 않는 독단적인 존재가 되기 쉽다. 여기에 반기를 드는 인물이 바로 새로 부임한 문학 교사 '존 찰스 키팅'이다.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 공연 사진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 공연 사진마스트인터내셔널

키팅의 가르침

키팅이 보여주는 건, 웰튼 아카데미가 강조하는 가치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키팅은 정답을 알려주기보다 질문을 던지고, 규칙을 내세우기보다 규칙에 균열을 내도 된다고 격려한다. 문학을 단일한 기준으로 평가해도 된다고 주장하는 교과서의 페이지를 찢으라는 키팅의 주문, "성경책 아니야"라는 키팅의 말은 학생들에게 단순하고 견고한 믿음을 스스로 무너뜨리도록 만든다.

책상 위에 올라서라는 지시는 학생들에게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방법을 익히게 한다. 눈높이가 그저 조금 달라졌을 뿐인데, 학생들은 이전과는 완전히 새로운 시야를 얻는다. 이처럼 시선을 조금만 달리해도 상상할 수 있는 세상의 폭이 훨씬 넓어진다는 것을, 키팅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가르친다.

걷는 행위 자체도 충분히 수업이 될 수 있다. 키팅이 그냥 걸으라고 지시했을 때 학생들은 대세를 따라 박자를 맞추며 걷는다. 그리고 키팅이 이 사실을 인지 시킨 후 다시 걸을 것을 지시했을 때, 학생들은 제각기 원하는 방식으로 교실을 누빈다. 어떤 학생은 걷는 것 자체, 키팅이 제시한 규범을 거부하고 가만히 서 있는 것을 택한다(키팅의 가르침을 정확히 꿰뚫은 것으로, 키팅은 그 학생을 칭찬한다).

키팅을 만난 이상, 학생들은 키팅을 만나기 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카르페 디엠"을 외치고, 학생들과 함께 시와 낭만적인 삶을 읊조리는 키팅의 이야기는 분명 아름답다. 하지만 <죽은 시인의 사회>는 아름다움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극 중 인물들은 현실적인 문제에 맞닥뜨리며 실패를 경험한다.

키팅의 가르침으로 결성한 은밀한 시 낭송 모임 '죽은 시인회'는 곧 교장에게 발각되어 위기에 처한다. 연극의 낭만을 경험한 학생 '닐 페리'는 연기를 하고자 하지만, 아버지의 극심한 반발에 부딪혀 결국 무너지고 만다. 이 모든 일이 발생한 뒤, 학교의 질서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교장의 의지에 키팅은 설 자리를 점점 잃는다.

이들의 이야기는 이제 이전만큼 아름답진 않으나, 절망적인 순간에도 학생들은 "오 캡틴, 마이 캡틴"을 외치며 눈시울을 붉힌다. 이 장면은 아름답지 않은 이야기로 채워졌으면서도 분명 아름다운 장면이고, 절망적인 순간임에도 희망을 품고 있다.

한편 원작자 톰 슐만이 <죽은 시인의 사회>를 구상하게 된 이야기는 그 자체로 드라마다. 그는 어린 시절 교과서를 넘어 삶을 가르치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문학 교사를 만났다. 그런데 그 문학 교사는 새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모습을 감췄고, 학생들 사이에서는 소문이 무성했으나 결국 교사의 행방과 그 이유를 밝혀내는 데는 실패했다고 한다. 그 강렬했던 경험이 훗날 톰 슐만으로 하여금 존 찰스 키팅이라는 인물을 만들어내게 했다.

차인표·오만석·연정훈이 낭만적인 문학 교사 키팅을 연기하고, 남경읍·박지일이 교장과 닐 페리의 아버지(미스터 페리)를 연기하는 '1인 2역'을 소화한다. 여기에 김락현·이재환·찬희(닐 페리 역), 김태균·문성현(토드 앤더슨 역) 등이 힘을 보탠다. 공연은 오는 13일까지 서울 종로구 NOL씨어터 대학로 우리카드홀에서 펼쳐진다.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 공연 사진
▲연극 <죽은 시인의 사회> 공연 사진마스트인터내셔널

공연 연극 죽은시인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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