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소재의 두 영화, 관객에게 제대로 닿으려면

[리뷰] <경주기행>과 <비광>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경주기행의 한 장면
▲영화 '경주기행의 한 장면롯데엔터테인먼트

최근 관람한 두 편의 한국 영화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도록 했다. "좋은 의도가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일까?", "선한 주제를 위해 소재들은 소비되어도 되는 것일까?", "영화의 메시지는 과연 어떻게 관객들에게 명확히 전달될 수 있을까?" 이 질문들에 대한 한 가지 공통된 대답은 바로 개연성일 것이다.

영화 <경주기행>의 마지막 장면은 이정은 배우(옥실 역)의 투혼이 빚어낸 명장면이었다. 자신의 딸을 죽인 살인범을 벌하는 어머니의 행동은 처절하다 못해 비장하고 숭고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이 순간을 위해 앞의 모든 장면이 소비된 듯했다. 그것도 조금은 어설프게 말이다.

영화 <비광>은 제목인 '비광'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가 역력했다. 강간 학생들이나 정치인들, 기자들은 영화 제목을 띄우기 위한 장치처럼 보였다. 오히려 영어 제목인 <한 가족의 초상(Portrait of a Family)>이 더욱 어울릴 뻔했다.

<경주기행>에서 옥실과 세 딸 장주·영주·동주는 8년 전 수학여행을 떠난 뒤 돌아오지 못한 막내 경주의 생일을 맞아 경주로 향한다. 단체 티셔츠까지 맞춰 입은 가족의 모습은 평범하고 화목한 여행을 연상시키지만, 봉고차 트렁크에는 낯선 남자가 실려 있다. 이 여행의 목적이 관광이 아니라 복수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영화는 가족의 상처와 복수라는 무거운 질문을 꺼내 든다.

문제는 복수의 당위성이 관객의 감정을 움직이는 것과 복수의 과정이 영화적으로 설득력을 갖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데 있다. 딸을 잃은 어머니의 고통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가족이 오랜 시간 상실을 견디며 살아왔다는 설정 역시 강한 정서적 기반이 된다. 그러나 관객이 그 가족의 행동에 끝까지 따라가려면 '왜 저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서사가 더 촘촘하게 쌓여야 한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이정은의 연기가 강렬할수록 역설적으로 그 이전 장면들의 허술함이 더욱 도드라진다. 배우는 인물의 감정을 온몸으로 밀어붙이지만, 관객은 그 감정이 폭발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충분한 준비를 하지 못했다. 훌륭한 연기가 서사의 빈틈을 메울 수는 있지만, 서사 자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 명장면 하나가 영화 전체를 구원하기 어려운 이유다.

<경주기행>이 던지는 '복수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은 흥미롭다. 딸을 잃은 부모에게 복수는 정의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영화가 그 복수의 정당성을 관객에게 설득하려면 피해자의 상처뿐 아니라 복수를 실행하는 사람의 내면적 갈등과 그 선택이 가져오는 결과까지 충분히 유기적으로 설득력 있게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복수는 인간의 비극이 아니라 극적인 결말을 위한 장치로 소비되고 만다.

<비광>은 가족이라는 보다 넓은 틀 안에서 상처와 의심, 사회적 낙인과 미디어의 폭력성을 다룬다. 화려한 삶을 살아온 야구 스타 중구와 배우 남미는 중구의 딸 동주가 등장하면서 관계가 깨지고, 8년 뒤 우림천 여중생 사망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동주가 지목되면서 다시 얽힌다. 가족을 둘러싼 과거의 악연이 현재의 사건과 연결되면서 영화는 한 가족의 위기와 사회적 시선을 함께 바라본다.

 영화 <비광> 스틸컷
▲영화 <비광> 스틸컷㈜플레이그램, ㈜콘텐츠지오

이 영화에서 눈에 띄는 것은 사회적 소재가 지나치게 전면으로 나선다는 점이다. 성폭력 사건, 정치인, 언론에 대한 비판 등 현실에서 충분히 무거운 의미를 갖는 소재들이 등장하지만, 그것들이 인물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사건이라기보다 영화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배치된 듯한 인상을 준다. 관객이 인물에게 몰입하기 전에 영화가 먼저 '이것을 보라'고 손가락질하는 순간, 메시지는 오히려 힘을 잃는다.

영화에서 사회적 메시지는 클수록 좋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관객이 등장인물의 삶을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그 안에 담긴 사회적 문제를 발견하도록 만드는 편이 훨씬 강력하다. 가족의 갈등을 따라가다 성폭력 문제를 생각하게 하고, 한 아이의 억울함을 따라가다 여론과 언론의 폭력을 생각하게 하는 방식이다. 메시지가 서사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서사가 메시지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두 영화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문제를 보여준다. <경주기행>은 마지막의 강렬한 복수 장면을 위해 앞선 이야기들이 충분히 축적되지 못했고, <비광>은 전달하고 싶은 사회적 의미가 너무 선명하게 드러나면서 인물과 사건이 그 메시지를 위한 수단처럼 보인다. 하나는 결말이 서사를 앞서고, 다른 하나는 메시지가 서사를 앞선다.

물론 두 영화가 다루는 소재와 문제 의식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가족의 상실, 복수, 학교폭력, 성폭력, 미디어의 선정성, 사회적 낙인은 모두 지금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바라봐야 할 문제다. 좋은 영화는 반드시 가벼운 이야기를 다룰 필요도 없다. 오히려 불편하고 무거운 현실을 영화적으로 끌어안는 것이 영화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좋은 소재가 좋은 영화로 자동 변환되는 것은 아니다. 선한 메시지가 영화의 완성도를 보증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사회적 의미가 큰 작품일수록 소재를 다루는 방식에는 더 높은 수준의 책임이 요구된다. 실제 고통과 피해를 이야기의 재료로 사용할 때, 그것이 단순히 관객의 분노와 눈물을 끌어내기 위한 장치로 소비되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영화의 설득력은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에서 나온다. 인물이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사건이 왜 그렇게 전개되는지, 하나의 행동이 다음 사건을 어떻게 만들어 내는지가 납득 될 때 관객은 비로소 영화의 세계 안으로 들어간다. 개연성은 단순히 이야기의 앞뒤가 맞는다는 뜻이 아니다. 인물과 사건, 감정과 메시지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경주기행>과 <비광>을 보고 난 뒤 남은 아쉬움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두 영화 모두 관객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이 분명하고, 소재 역시 충분히 강렬하다. 하지만 좋은 의도와 선한 주제만으로 관객의 마음까지 움직일 수는 없다. 영화가 말하고 싶은 것이 클수록 이야기는 오히려 더 섬세해야 한다. 관객이 메시지를 '전달 받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삶을 따라가며 스스로 '발견하게' 할 때, 영화의 질문은 비로소 관객의 질문이 된다.
경주기행 비광 한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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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문화, 과학 및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