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딸>의 원제는 '환주격격 還珠格格', 풀이하자면 '환주공주' 쯤이 된다. <옹정황제의 여인>의 중국 방영당시 원제는 '후궁견환전 后宫甄嬛传'이다. 말 그대로 후궁 견환의 이야기다. iTV는 중국 원작에서 앞장선 주인공 환주공주를 전면에서 끌어내리고 조연인 황제를 앞세웠다. 중화권 콘텐츠를 전문으로 다루는 한국 케이블 채널 CHING도 주인공 후궁 견환 대신 조연인 옹정황제를 앞세운다. 모두 한국에서 한 일이다.
영화평론가로 활동한 지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그간 자연스레 지켜보게 된 것 중 하나가 작품이 국경을 넘으며 변화하는 양상이다. 드물게는 작품 자체가 탈바꿈하기도 하고, 그보다 자주 작품이 관객과 만나기까지의 과정이 달라지며, 흔하게는 관객이 작품과 관계 맺고 이해하는 방식이 변화한다. 번역은 이 미묘한 과정에서 주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작품의 제목부터 영화 속 대사의 미묘한 뉘앙스에 이르기까지, 아주 작은 변화만으로 커다란 차이를 빚어내고는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변화에는 눈여겨 볼 경향이 또한 자리한다. 한국인은 유달리 저들을 세계의 표준으로 여기고는 한다. 이는 특히 역사와 문화, 예술의 영역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타국에서 오래 생활하거나 빠르게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을 여럿 접해본 이들만이 저와 제가 속한 사회를 객관적 견지에서 인식할 수가 있다. 본래 우물 안 개구리란 우물을 온 세계라 여기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제 선 자리가 중심이며 다른 이들은 변경에 섰다고 여기기 십상이다. 이와 같은 인식이 스스로를 더욱 변경으로 몰아넣는단 걸 이해하지 못한 채로.
▲황제의 딸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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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라마사에 발자국 새긴 중국 드라마
오늘은 드라마 한 편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바로 <황제의 딸>이다. 소위 '중드', 중국과 대만에서 제작된 범 중화권 드라마 가운데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것은 단연 두 작품으로 수렴된다. <1993 판관 포청천>과 <황제의 딸>이다. 최고 시청률 45%를 기록하며 포청천 신드롬을 일으킨 <1993 판관 포청천>과 iTV 개국 이후 최고의 콘텐츠라고까지 불렸던 <황제의 딸>은 해외드라마 방영이 그리 흔하지 않던 시기 이례적 인기를 구가했다. 다른 무엇보다 작품이 가진 내적인 완성도가 흥행의 이유였단 건 부연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겠다.
<황제의 딸>은 대만 CTV와 중국 후난TV 합작으로 1997년 제작된 작품이다. 처음 중화권 방영 당시 선풍적 인기를 끌었는데, 주연배우 조미를 비롯해 소유붕과 판빙빙, 장철림 등의 매력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이 작품이 한 해 정도의 시차를 두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막 개국해 독자적 콘텐츠가 필요했던 수도권 기반 케이블 방송사 iTV가 값싸지만 야심차게 들여온 말 그대로 킬러콘텐츠였다. 그리고 이 킬러는 제 역할을 충실히 했다.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중계권이 지탱하고 지상파가 돌아보지 않던 게임방송으로 선전하고 있었다지만 그 외엔 이렇다 할 콘텐츠가 없던 iTV에 갑자기 가까운 나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한국에선 볼 길 없던 드라마가 통째로 들어온 것이다. <1993 판관 포청천>의 성공으로 잘 만든 콘텐츠는 틀림없이 먹힌다는 인식, 그럼에도 '포청천 신드롬'은 예외적 현상이라며 무시한 지상파 방송국의 오만 사이에서 헐값에 계약을 따낸 iTV의 승리였다.
<황제의 딸>은 한국 케이블TV 역사에 기록할 만한 지점을 썼다. 그러니까 케이블 기반으로 수도권 방영이 고작이란 한계에도 불구하고 시청률 4%를 찍어 앞뒤 광고판매에서 그야말로 대박을 냈던 것이다. 조미는 그대로 중화권을 대표하는 여배우로 한국에 제 존재감을 아로새겼다. 홍콩영화가 정체돼 있던 국면 속에서 한국활동을 한 서기, 장쯔이 정도를 제외하곤 이 시기 여배우 가운데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 됐다. 함께 출연한 판빙빙, 소유붕 등도 스타 반열에 올랐다. <1993 판관 포청천>과 마찬가지로, <황제의 딸> 또한 2026년 현재에도 여러 케이블채널이 남는 시간대를 채우는 콘텐츠로써 수시로 재방영한다. 본방송 때와 비할 수 없이 시청률이 낮아졌다지만 누군가는 제 집 TV 앞에서 이 작품을 보며 감동을 맛보는 광경이 펼쳐질 것이다.
▲황제의 딸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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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드롬은 이유 없이 일어나지 않는다
<황제의 딸>은 iTV엔 부실한 경영에 조금이나마 숨통을 틔워줄 돈을 벌어다주었고, 여타 케이블TV 채널엔 해외에서 잘 골라온 콘텐츠로 지상파와 맞서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특히 <1993 판관 포청천>과 이 작품의 연속된 흥행으로 유입된 시청층 상당수가 '1세대 중드 마니아'를 이뤘고, <신조협려> <보보경심> <옹정황제의 여인> 등 중드 수입으로 이어졌다. 아예 이를 전문으로 삼는 중국 콘텐츠 전문 케이블 방송국도 여럿 생겼을 정도다. 싸게 풀린 해외 드라마를 잡아와 한국에서 터뜨리는 기획은 케이블 채널에 무시할 수 없는 돈줄이 됐다. 2000년대에 접어들며 다양한 케이블 방송국을 중심으로 미드와 일드 열풍이 잇따른 것도 중드 흥행이 불러온 변화라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황제의 딸>은 한국 드라마사, 특히 지상파 채널 중심이던 드라마 제작 판도가 케이블TV로까지 확대되는 과정에서 하나의 특이점을 이루었다. 그저 그렇게 지나가리란 분석이 더 많았던 작품임에도 편견을 깨부수고 당대 한국 사회의 주류 콘텐츠 무대에 진입했다. 이 드라마의 성공요인은 무엇일까? 무엇이 <황제의 딸>을 세기말과 세기 초 한국 사회에서 꼭 보고픈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게 했을까?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은 당대 한국사회가 놓치고 있던 결핍과 왜곡된 자기인식을 이해하도록 이끈다. 당대 한국 콘텐츠가 갖지 못한 어떤 매력이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성취를 이루어냈던 것이므로.
같은 시기 당대 사극들을 떠올려본다. <황제의 딸>이 폭발적 인기를 구가하던 당시는 기본적으로 사극의 전성시대였다. KBS의 <용의 눈물>이 끝나고 채 몇 년 지나지 않은 때였고, MBC에선 한창 <허준>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KBS가 야심차게 준비한 <태조 왕건>이 <용의 눈물> 못잖은 성취를 이루었는데, <황제의 딸>은 바로 <허준>과 <태조 왕건> 사이에서 시청률 4%의 기염을 토한 것이다. 물론 다른 시간대에 다른 시청층을 겨냥했다. 대만과 중국 방영 당시에도 기존 사극 주 시청층이 아닌 청소년 및 젊은 청춘남녀가 이 작품에 호응했단 걸 고려했던 것일까.
▲황제의 딸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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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주도하는 사극, 그 첫 발을 떼다
조금 더 단서를 뿌려보자. <황제의 딸> 종영 후에 한국 사극에서 새 흐름이 인다. 2001년 SBS의 <여인천하>가 조선조 궁중암투를 다뤄 당대 화제작이 됐고, 같은 시기 KBS에선 <명성황후>가 나와 인기를 누렸다. 2년 뒤긴 하지만 MBC의 <대장금>도 빼놓을 수 없다. 이후 퓨전사극의 시대가 도래하기까지 한동안 여성 중심 사극이 한국 드라마판의 중심에 선 것이다.
이전까진 남성 주인공의 곁에 선 조력자, 그가 정복할 대상쯤으로 그려졌던 여성들이 <황제의 딸> 흥행 뒤로는 극의 중심에서 활약한다. 이전에도 여성 주역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남성서사 가운데 남성보다 더 강인한 여성 정도에 머물렀던 게 현실이었다. <황제의 딸>이 전개한 이야기가 당대 한국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온 건 바로 우리의 결핍, 왜곡된 현실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바람을 우리의 것이라 당당히 말할 수 없는 것은 '환주공주'가 그저 '황제의 딸'로 남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전술했던 '후궁견환' 또한 '옹정황제의 여인'으로 전락하고 만다. <황제의 딸>은 어떻게 '황제의 딸'이 되었을까. iTV가 헐값에 수입을 확정지은 뒤 보다 사극다운 제목으로 사내공모를 거쳐 전했다는 사연이 전설로써 전해져올 뿐이다. 그로부터 얼마나 많은 수입드라마가, 특히 중화권에서 가져온 작품이 제목을 바꾸어 달았는가. 신선한 바람을 품은 작품을 한국에 들여온 이들이 그 작품을 이해할 눈은 갖지 못했음을 제목의 변화로써 읽어낼 수 있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황제의 딸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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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과 반대로 가는 제목이 민망해
얼마 전 몇몇 영화사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가슴이 답답해지는 작품의 개명계획을 들었다. 계획 아래 깔린 개명의 사유가 너무나 민망하여서 원작자가 그를 문제삼을 어떤 수단도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워질 지경이었다. 어째서 해외작품은 쉽게 제목을 틀어도 좋다고 여겨지는 것일까를 나는 몹시 개탄해왔다. 제목을 바꾸는 이들이 정작 그 작품의 가치를 너무나 잘못 이해하는 경우를 나는 이 바닥에서 수시로 목격해왔던 것이다.
여러 영화사가, 또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제조차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부적절한 제목을 원제와 바꿔단다는 걸 '씨네만세'를 통해 수차례 지적해왔다. 진실에 가 닿기 어려움을 뜻하던 'Hard Truths'가 <내 말 좀 들어줘>가 되고, 멀어짐을 말하는 'The Other Way Around'는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가 된다. 너 하나가 최악이었음을 선언하는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가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로, 무너지는 자연의 절망을 형상화한 'Weeping Rocks'는 <돌과 나비의 여정>이 되는 광경을 보았다(관련 기사 :
'세상 최악의 인간' 그린 이 영화, 한국에선 왜?
). 그저 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라지고 생겨나는 것 사이에 깃든 인식을 이해한다. 환주공주와 후궁 견환을 밀어내고 황제를 앞세우는 태도가 그러했듯, 오늘 이 순간 제목이 바뀌는 한국의 수입 콘텐츠들 가운데도 무시되는 것과 앞세워지는 것 사이의 경향을 읽어낼 수가 있다. 결코 무시되지 않아야 할 것이 무시되고 그다지 좇지 않아도 될 것이 앞세워지는 현실 가운데서 나는 경향이 예술과 가치를 압도하는 현상을 목격한다. 더 나은 인식을 보일 수 없다면, 원작과 작가를 존중하는 태도 쯤은 갖추기를 바라는 게 지나친 기대일까. 그저 나아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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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