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에 거짓을 보태다" 한 점의 그림이 폭로하는 것

[안지훈의 뮤지컬 읽기] 뮤지컬 <소년의 초상>

 뮤지컬 <소년의 초상> 공연 사진
▲뮤지컬 <소년의 초상> 공연 사진레드앤블루

몇년 전, 필자가 프랑스 파리를 여행하던 때의 일이다. 하루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만큼 육체적으로 지친 상태였다. 그러던 중 눈길을 확 잡아끄는 미술 작품 하나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홀린 듯 걸어갔다.

루브르 박물관는 학창 시절 미술 수업부터 각종 매체를 통해 눈에 익을대로 익은 미술 작품들이 꽤 많이 소장하고 있어,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공간이다. 그런데 이때 필자의 관심을 사로잡은 바로 그 작품은 이제껏 접해본 적 없는 작품이었다. 전시된 공간도 중심부라기보다는 외곽이었고, 그 앞에 서 있는 관람객도 거의 없었다.

그림 앞에 당도했을 때에도 강렬함은 여전했다. 그리고 여기서 필자가 처음 한 행동은, 이 그림을 그린 작가의 이름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림을 제대로 바라보기도 전에, 그림의 이름을 알아보려 하기도 전에, 그림을 그린 사람의 이름에 먼저 눈길이 갔다.

대체 왜 그랬을까. 지금도 필자는 그때의 행동을 두고 '천박한 작가주의'로밖에 결론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곧바로 자리를 떴다. 그 그림을 다시 쳐다보기 부끄러웠고, 그래서 그림의 이름도 알지 못한 채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출구로 향하는 길에 루브르 박물관에서 꼭 봐야 한다고들 하는 ~의 '모나리자'가 있었다. 아까 필자를 사로잡은 그림과는 달리 '모나리자' 앞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있었다. 지그재그도 설치된 바리케이드를 따라 관람객을 일제히 줄을 선 채로 '모나리자'를 영접하길 기다렸다.

필자는 그럴 수 없었다. 멀리서 본 '모나리자'는 아까 본 그림에 비해 눈길을 사로잡지 못했고, 무엇보다 앞선 경험 탓에 '모나리자'를 보기 부끄러웠다. 지금도 이름을 알 수 없는 이전 그림에게 미안해서라도 '모나리자'를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곁눈질로 '모나리자'를 힐끔 바라본 뒤 출구를 향해 계속 걸었다.

미술이나 예술사를 제대로 공부해 본 적 없는 필자 같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작가를 통해 해당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태도를 갖기 십상이다. 이건 우리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게 위대한 작가의 작품이라고 하면 괜히 더 대단해보이고, 대단해보이던 작품도 무명 작가의 창작물이라고 하면 괜히 고개를 돌리곤 한다.

오히려 예술을 공부하고 이를 업으로 삼은 사람들에게서도 이런 태도는 흔히 발견된다. 지난달 30일에 관람한 뮤지컬 <소년의 초상> 속 미술계 인사들에게서도 이런 태도가 엿보인다.

 뮤지컬 <소년의 초상> 공연 사진
▲뮤지컬 <소년의 초상> 공연 사진레드앤블루

캔버스에 생긴 균열, 그 속에서 드러나는 진실

2020년 피렌체에서 화가 '마르첼로 디 나탈레'의 그림 '남작의 초상'이 발견되며 미술계가 발칵 뒤집히는 것으로 뮤지컬 <소년의 초상>은 시작한다. 극의 설정상 마르첼로는 대단한 화가이고, 또 '남작의 초상'이 그의 유작이라는 사실까지 알려지며 그림의 가치는 계속 뛰어오른다. 그러던 중 미술품 복원사 '비올라'는 캔버스 뒷면에서 '나탈리'라는 낯선 이름을 발견하며 이상함을 느낀다.

이제 무대는 '남작의 초상'이 그려진 1530년 베네치아로 이동한다. '남작의 초상'을 그렸다고 알려진 마르첼로의 공방을 배경으로, 이곳에 로지나, 마르타, 야코포가 모여든다. 예술적 재능을 지닌 로지나는 친구 마르타와 함께 베네치아에 왔지만, 여성이자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쉽게 자리를 잡지 못한다. 마르타는 생계를 위해 이런저런 노동을 하고, 로지나는 힘겨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마르첼로의 제안(마르첼로의 이름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받아들인다.

로지나가 이런 선택을 하도록 하는 건 현실의 문제, 특히 경제적 문제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사회 구조와 권력 관계가 얽혀 있다. 여성과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당대 예술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구조적 한계, 성별과 국적이 만들어내는 비대칭적 권력 관계가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현실의 문제와 얽혀 로지나의 선택을 강요한다.

마르첼로는 로지나의 작업을 두고 "진실에 거짓을 보탠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거짓에 손톱만큼의 진실을 보태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듯 권력은 진실을 교묘하게 감춘 채 거짓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곤 한다.

야코포는 로지나가 그리게 되는 '남작의 초상'의 모델이다. 하지만 남작은 아니다. 여기서도 또 하나의 거짓이 드러난다. '남작의 초상'의 작가는 마르첼로가 아니고, 모델은 남작이 아닌 것이다. 뮤지컬 <소년의 초상>은 1530년에 그려진 하나의 작품에 얽힌 진실과 거짓을 위태롭게 오가고, 그 진실을 파헤치고자 하는 2020년의 노력을 조명한다. 그렇게 서서히 드러나는 균열,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진실까지 이 뮤지컬은 꽤 탄탄한 드라마 구조에 더해 예술을 둘러싼 사회적 현실과 권력 작용 등 생각해볼 만한 주제 의식을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남작의 초상'이 뮤지컬의 제목이기도 한 '소년의 초상'이 되어가는, 다시 말해 진실을 향해 제자리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여정이 펼쳐지는 무대는 왠지 겹겹이 쌓인 액자와 균열이 생긴 캔버스를 연상시킨다. 찢어지고 벗겨진 끝에 발견되는 한 그림을 둘러싼 진실은 오는 10월 18일까지 대학로 TOM 2관에서 이야기된다.

로지나 역에 임예진·성민재·박소현, 마르타 / 비올라 역에 김수·송영미·김단이, 마르첼로 역에 김이담·박선영·정백선, 야코포 / 니콜라 역에 윤지성·도유현·조은성이 출연한다. 마르타와 비올라, 야코포와 니콜라는 한 배우가 두 명의 인물을 연기하는 1인2역으로 기획됐다.

 뮤지컬 <소년의 초상> 공연 사진
▲뮤지컬 <소년의 초상> 공연 사진레드앤블루
공연 뮤지컬 소년의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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