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소송 끝에 얻은 판결, '코다' 재개봉이 던진 과제

[김성호의 씨네만세 1426] 배리어프리 판결과 <코다> 재개봉

지난 3일, 한국 영화판에 기념비적인 판결이 나왔다. 영화관에서 시각·청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과 자막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불법 차별이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것. 무려 10년을 끌어온 재판으로, 장애인이 영화를 향유할 수 있는 권리가 현실적으로 제한되는 상황에서 일선 극장에게 더 의무를 지워달란 요구로부터 출발한 소송이었다.

'씨네만세'에서라도 장애를 적극 다루기로 한 지난해 이후 장애 관련 기사가 30여 차례 나갔다. 영화계에 장애인 스태프와 배우가 턱없이 부족하고, 장애를 다루는 영화 또한 얼마 되지 않으며, 그 표현방식 또한 왜곡돼 있어 바람직하지 못하단 게 주요 골자였다. 기사가 나가는 동안 내게 의견을 전해온 장애인들은 "장애인 영화는 그나마 많은 편"이라며 "장애를 다룬 영화를 정작 장애인은 볼 수 없다"는 현실을 하소연해오기도 했다. 현실이 과연 그러하다(관련기사: 왜 한국 영화엔 장애인 배우가 없을까?).

이번 대법원 판결은 2심에서 배리어프리 상영에 따르는 비용을 과다하게 계상한 점이 부당하단 점을 지적한 것으로, 현실적으로 어떤 결론이 도출될 지는 확신할 수 없는 상태다. 다만 원심과 대법원 모두 기존 한국 극장의 상영체계가 장애인을 배제한 차별적 행위란 사실을 확인한 점이 고무적이다.

코다 스틸컷
▲코다스틸컷판씨네마

9월 돌아오는 '코다', 또 한 번의 바람 일으킬까

소리쳐 전해 마땅한 희소식과 맞물려 장애를 소재 삼은 영화 한 편을 소개한다. 세계에서 유명한 영화제로 손꼽히는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무려 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장애를 소재로 한 작품 가운데 가장 높은 위치에 섰다 해도 무방하다. 94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코다>의 수상은 다분히 이례적이었는데, 감독상, 편집상 등 주요부문 후보에 아예 거론조차 되지 못했다. 요컨대 작품의 완성도며 품격, 수준에 있어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는 뜻이겠다.

그럼에도 <코다>는 당당히 2022년 가장 빛나는 오스카의 주인이 됐다. 그에 앞서 미국배우조합, 미국제작자조합 등이 주는 최고상도 몰아서 받았다. 제인 캠피언의 <파워 오브 도그>, 애덤 맥케이의 <돈 룩 업>, 폴 토마스 앤더슨의 <리코리쉬 피자>,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 카>, 드니 빌뇌브의 <듄> 등 쟁쟁한 경쟁작을 물리친 결과였다. 도대체 무엇이 연출적으로 평이한 작품이란 평가를 받은, 또 원작을 둔 리메이크영화인 <코다>를 최고의 영화로 추켜세우게 한 것일까.

제목이 된 '코다 CODA'에 힌트가 있다. 'Children of deaf adult', 직역해 농인의 아이들이란 뜻의 준말로, 1980년대 미국 농인 자녀들이 설립한 국제기구 'CODA International'이 등장하며 조금씩 쓰여 정착된 용어다. 본래 수어통역사나 학계에서 통용되던 말이 널리 퍼져 상식으로 정착된 건 오롯이 이 영화의 공이라 하겠는데, <코다>가 바로 농인의 아이들, 확장해 농인의 통역사 역할을 하게 되는 비장애인 가족의 고충을 다룬다.

코다 스틸컷
▲코다스틸컷판씨네마

꿈과 가족, 둘 모두를 택할 수는 없을까

주인공은 코다 소녀 루비(에밀리아 존스 분)다. 어부인 아버지(트로이 코처 분)와 오빠(다니엘 듀런트 분), 집안 살림을 책임지는 엄마(말리 매트린 분)와 함께 살아가는 그녀는 집안의 유일한 비장애인이다. 다른 셋이 모두 청각장애를 가진 관계로, 가족과 외부의 소통을 모두 루비가 감당한다. 이제 겨우 고등학교 3학년인 청소년인데, 영화가 비추는 그녀의 모습은 벌써 십 수 년 쯤 통역사 역할을 해온 베테랑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음성 기반 무선통신이 일반적인 항해를 해야 하는 어부의 삶에서 루비의 도움이 불가결하다. 루비가 없으면 해경 무전도 받지 못해 뱃일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가진 거라곤 배 한 척이 전부고, 배운 것도 고기잡이 뿐인 이들 가족에게 배를 포기하는 건 모든 걸 잃는 것이나 다름없다.

영화는 두 갈래 줄기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하나는 악질적인 유통업자에게 소득의 상당부분을 뜯기는 동네 어부들의 열악한 삶, 이를 개선하기 위해 일어선 루비 가족들의 조합 만들기다. 비장애인인 주변 어부들을 포섭해 유통망을 조직해야 하는 일인 만큼 중개를 해야 하는 루비에게 크게 의존할 밖에 없다.

다른 한 줄기는 주인공인 루비가 꿈을 향해 다가서는 과정이다. 루비는 노래에 남다른 자질을 갖췄는데, 남몰래 짝사랑하던 마일스(퍼디아 월시-필로 분)를 따라 지원한 합창단에서 제 재능을 꽃피울 기회를 잡게 된다. 버클리 음대를 졸업하고 루비의 고등학교에서 합창단을 지도하는 교사 베르나르도 빌라로보스(에우헤니오 데르베스 분)가 그녀의 재능을 단박에 알아본 것이다. 그의 아낌없는 지도를 통해 루비는 노래하는 즐거움을 깨우쳐 간다. 마일스와 함께 하는 즐거움은 덤이다.

코다 스틸컷
▲코다스틸컷판씨네마

그저 흔한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나 이쯤이면 눈치 챌 수 있겠다. 가족에 충실한 삶과 저를 위한 나아감이 충돌한다는 것을 말이다. 버클리 음대에 지원하고 음악을 통해 꿈을 펼치는 길은 가족의 배에 올라 고기를 잡고 동료 어부들을 모아 독자적인 유통망을 구축하는 일과 정면에서 충돌한다. 몸은 하나인데 둘을 할 수는 없으니 어느 하나를 택해야만 한다. 좋아하는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갈등하는 루비,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저항이 그대로 영화의 주된 갈등으로 비화된다.

어찌 보면 흔한 이야기다. 때로, 어쩌면 그보다는 자주, 가난한 집구석에서 태어난 자식의 재능은 저주가 된다. 재능이 그 스스로는 완성될 수 없는 탓으로, 재능과 재주가 적절한 때 적합한 자극과 만나야만 하는 때문으로, 그 과정에서 너무나 비싼 조력이 주어져야 한다는 이유로써 가난은 재주와 재능의 무덤이 되고는 한다. 큰 저항은 곧 감동적 드라마의 원천이 된다. 세상에 많은 작품이 비슷한 곳에서 이야기를 찾는 것도 그래서다.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빌리 엘리어트>일까. 졸작이긴 하여도 최근 씨네만세에서 소개한 <캐리어를 끄는 소녀>도 같은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그리고 <코다>는 그 전형을 그대로 답습한다.

<코다>의 강점이라면 그 재능을 음악에 둠으로써 음악영화로써 발화될 수 있다는 점이겠다. 듣는 이를 사로잡을 수 있는 지난 시대의 명곡을 새롭게 해석한 노래들이 에밀리아 존스의 목소리로 관객의 귀를 매혹한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를 풍미한 명곡들이 오늘의 관객 앞에 낯설지만 분명히 통하는 감동을 안긴단 건 여러모로 인상적이다. 이 영화가 제 틀로 삼고 있는 익숙한 구조 또한 마찬가지의 힘을 발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설득력, 나의 진심을 너에게 닿게 하는 것이랄까.

또 한 가지,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잘 하는 것을 제 가족에게는 들려줄 수 없다는 당혹스러운 설정이 곧 이 영화 <코다>를 장르화된 성장영화들과 달리 보게 한다. 단순한 설정과 이를 적절히 연출하는 역량만으로 영화는 성장영화이자 가족과 관계를 재정립하는 드라마이며, 무엇보다 장애와 그를 대하는 사회의 시선, 또 그 사이에 선 코다의 고충을 내보이는 폭넓은 이야기로 화한다. 하나같이 영리한 기획으로 빚어낸 이점이라 할 수 있겠다.

코다 포스터
▲코다포스터판씨네마

'코다' 앞에 떳떳하지 못한 한국

<코다>는 훌륭한 영화인가. 전형적 갈등구조를 답습했다는 등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가진 훌륭한 측면이 여럿이다. 청각장애인 가족 역할을 실제 청각장애인 배우들에게 맡긴 점은 씨네만세가 수차례 지적해온, 특히 한국에서 검토조차 없이 반복되는 '비장애인들의 장애인 연기'가 가진 문제를 돌아보게 한다.

아버지 역할을 맡은 배우 트로이 코처가 94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사실은 장애를 진실로 이해하고 삶으로 껴안은 배우가 줄 수 있는 감동이 결코 매끄러운 연기보다 못하지 않음을 증명한다. 아마도 이 영화가 아카데미시상식 투표권자를 비롯해 이시대 수많은 관객들을 설득한 데는 이 같은 요소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을 테다.

마지막 한 가지. 여성, 다민족과 마찬가지로 장애인 스태프의 채용, 장애인 배우의 기용 등을 아카데미시상식 후보 선정은 물론, 각종 기금 지원 등에서 고려하고 우대하는 할리우드와 미국이다. 반면 한국은 장애인과 이주민의 영화산업 종사 비율이 턱없이 낮은 현실이다.

장애에 대한 사회적 변화의 바람이 법조계에서 먼저 불어왔다. 장애를 가진 이들이 비장애인과 함께 가까운 극장으로 나가 영화를 볼 날이 머지않았다. 한때는 불가능하다 여겨졌던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가능하다. 장애인의 불편을 그저 불편으로 남겨두지 않으려는 이들이 힘을 보탠 결실이다. 사회가, 전문가 집단이 그 문제제기에 고개를 끄덕여준 결과다. <코다>와 같은 영화가 이와 같은 인식 제고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다. 이달 재개봉하는 <코다>의 귀환이 더 반가운 이유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코다 판씨네마 션헤이더 에밀리아존스 김성호의씨네만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