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진행할 때 유난히 많이 들어온 신청곡

전인권이 "평생 부를 노래"라고 했던 들국화 '그것만이 내 세상'... 시대의 어둠을 뚫고 터져 나온 명곡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노래가 있다. 같은 노래를 반복해서 들어도 들을 때마다 전혀 다른 감정이 찾아오는 음악. 내게 들국화는 바로 그런 음악을 만들어낸 밴드다.

1985년 들국화가 세상에 내놓은 데뷔 앨범은 한국 대중음악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사건이었다. '행진', '매일 그대와',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등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곡들로 채워진 이 앨범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다.

그중에서도 필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하나 꼽으라면 단연 '그것만이 내 세상'이다. 무언가에 실패했을 때,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힘이 빠질 때 이 노래를 듣곤 했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처졌던 마음이 조금씩 일어난다. 누군가 억지로 "힘내라"고 말해주는 것도 아닌데, 노래가 끝날 무렵이면 나도 모르게 다시 한번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 교통방송에서 라디오를 진행할 때도 이 곡은 유난히 많은 신청곡으로 들어왔다. 교통정보를 전달하는 전문 방송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청취자들의 사연도 남달랐다.

아침 7시 생방송을 진행하다 보면 "새벽 일찍 나왔지만 아직 손님 한 명 태우지 못했다"는 택시 기사님의 쓸쓸한 문자 사연도 있었고, 오타가 가득해 의아해하며 읽어 내려가다 보면 아니나 다를까 시각장애인 청취자가 보낸 문자 사연이 이어지곤 했다.

사연은 저마다 달랐지만, 힘든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이 노래를 통해 위로와 용기를 얻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가고 서로 다른 실패와 좌절을 겪지만, 이 노래를 듣는 순간만큼은 자신의 삶을 다시 붙잡게 되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 결코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국경과 시대를 넘어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명곡들이 그렇듯 말이다.

개인적으로 영국 밴드 퀸(Queen)에게 '위 아 더 챔피언스(We Are The Champions)'와 '위 윌 록 유(We Will Rock You)'가 있다면, 한국에는 들국화의 '행진'과 '그것만이 내 세상'이 그와 비슷한 상징성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물론 음악적으로 두 밴드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힘든 순간 흐트러진 마음을 다시 붙잡고, 가라앉은 분위기를 단번에 끌어올리는 대중적인 힐링곡이라는 점에서는 서로 닮은 구석이 있다.

Bm7과 Am7 코드 사이에서 터져 나온 가사

 '그것만이 내 세상', '제주도의 푸른 밤' 등을 작사·작곡한 밴드 들국화의 최성원
▲'그것만이 내 세상', '제주도의 푸른 밤' 등을 작사·작곡한 밴드 들국화의 최성원지니뮤직

최근 이 노래를 만든 들국화의 최성원이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그것만이 내 세상'에 얽힌 특별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수많은 사람의 삶을 위로하고 응원하는 명곡이 된 이 노래는 과연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그 시작은 화려한 작업실도, 거창한 영감도 아니었다. 지금이라면 믿기조차 힘든, 연탄을 때던 그의 신혼집 13평 주공아파트에서였다.

그의 아내는 졸업하자마자 전공을 살려 유치원 선생님으로 취업했고, 최성원은 군 제대 후 학교를 자퇴해버렸다. 아내의 쥐꼬리만 한 월급과 최성원이 밤에 술집에서 연주하고 받은 일당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던 시절이었다.

저녁 9시 정각을 알리는 시보음 '땡' 소리가 울리자마자 전두환 대통령의 동정이 첫 소식으로 흘러나오던 이른바 '땡전뉴스'의 시대. 그런 시대의 최성원은 낮에 아내가 출근하고 나면 텅 빈 집에 홀로 남아 LP판을 듣거나 기타를 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기타를 치다 우연히 잡은 Bm7에서 Am7으로 이어지는 코드 진행을 수없이 아르페지오로 반복하던 중 문득 '참 세상은 서로 이해하지 못할 일들로 가득 차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갑자기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고 나보고 그대는 얘기하지 /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고 나 또한 너에게 얘기하지"

그렇게 시작된 노래는 놀랍게도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대략적인 구성을 갖췄다. 혹시라도 잊어버릴까 봐 그는 카세트 녹음기에 중얼거리듯 노래를 녹음해 두었다.

"나 이 노래 평생 부를 것 같다"

얼마 뒤, 전인권과 언쟁을 벌인 뒤 화가 난 최성원은 밴드를 그만두겠다며 며칠 동안 밤무대에도 나가지 않았다. 그러다 전인권이 직접 그의 집을 찾아왔고, 두 사람의 감정도 조금씩 누그러지고 있었다.

막 언쟁을 벌이고 화해하려던 바로 그 순간, 노래의 가사는 묘하게 당시 상황과 맞아떨어졌다. 한 소절씩 천천히 멜로디를 들려주자 전인권의 눈이 점점 커졌고, 그는 한 소절씩 따라 부르며 노래를 익혀갔다. 그리고 마침내 후렴구에 이르렀다.

"하지만 후횐 없지 울고 웃던 모든 꿈 / 그것만이 내 세상, 그것만이 내 세상~"

노래를 따라 부르던 전인권은 최성원에게 "나 이 노래 평생 부를 것 같다"고 말했다. 노래의 가능성을 단번에 알아본 것이다. 그리고 이 노래는 결국 들국화의 운명을 바꾼 결정적인 곡이 되었다.

그렇다고 이 노래가 그저 우울했던 80년대의 시대상 속에서 우연히 툭 튀어나온 것만은 아니다. 들국화 최성원의 아버지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애창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탄생시킨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고 최영섭 선생이다.

최성원의 음악적 감각에는 한국 음악계의 거목이었던 아버지 최영섭 선생의 영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최성원의 손끝에서 태어난 노래들은 우리 대중음악사에 독보적인 명곡으로 남아 지금까지도 수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래서인지 어릴 적 들었던 이 노래를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지금 다시 들어보면, '그것만이 내 세상'은 단순히 "힘내라"는 응원에 그치지 않는다. 지나온 실패와 좌절조차 결국 내 삶의 일부분이었음을 나지막이 일깨워준다.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던 시간들, 그리고 찾아 헤맸던 모든 꿈 역시 끝내 '내 세상'을 완성해가는 과정이었음을 말이다.

어쩌면 이 글에 담긴 노래 이야기가 기대만큼 거창하거나 특별한 비하인드가 없어 조금은 싱겁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난히 어둡고 답답했던 그 시절, '그것만이 내 세상'은 단지 한 밴드의 노래에만 머물지 않았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실패하고 방황하던 이들에게 조용하지만 강렬한 위로를 건네는 응원가가 되었고, 세월을 뛰어넘어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들국화 최성원 전인권 그것만이내세상 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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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 Life is News | 전) TBN 교통방송 & KTV 한국정책방송원 | 사상계(思想界)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