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한도 없이 사과문만 읽었다... 북중미월드컵 폭로한 박항서 감독

'서형욱의 뽈리TV' 영상 출연한 박항서 감독의 작심발언, 파장 일으켜

박항서 대한축구협회 전 부회장겸 북중미월드컵 선수지원단장 (현 태국 칸나차부리 감독)이 2026 북중미월드컵에서 벌어진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속사정에 대한 뒷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박 감독은 월드컵 당시 손흥민을 향한 일부 기자들의 뒷담화 논란에 대한 진실, 실권없는 단장의 한계, 축구협회의 미숙한 행정 등을 폭로하면서 "축구협회 카르텔이 존재한다"는 작심발언으로 파장을 예고했다.

지난 2일 박항서 감독이 출연한 유튜브 '서형욱의 뽈리TV' 영상은 현재 조회수 1백만 회를 돌파하며 뜨거운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박 감독은 북중미월드컵 당시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자 축구대표팀 지원단장을 맡아 선수단과 동행한 바 있다.

박 감독이 이번에 폭로한 당시 월드컵 축구대표팀 홍명보호의 선수단 내부 분위기와, 지원 역할을 맡아야 할 축구협회의 행정 실태는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축구협회는 박 감독에게 단장이라는 대외적인 직함만 부여하고 그에 걸맞은 권한을 주지 않고 필요할 때만 '얼굴마담'이자 총알받이로 내세운 정황까지 드러났다. 또한 손흥민의 뒷담화 사건 당시 축구협회가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것도 밝혀졌다.

"감독은 오래했지만 단장은 처음이었다. 단장이 무슨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는 잘 몰랐다. 축구협회 회의에서 '단장인데 보고라인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는데도 대부분 대답이 없었다. 그냥 '유난 떨지 말라'고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래 가지고 '내가 가도 되나'라는 생각은 얼핏 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단장으로서) 정확히 권한을 얻었어야 했다."

월드컵 당시 일부 취재 기자들이 대표팀 훈련 중인 손흥민과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조롱성 뒷담화를 한 영상이 공개되며 큰 파문이 벌어졌다. 분노한 선수단은 이후 취재진의 인터뷰를 보이콧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박항서 감독은 당시 단장이었음에도 해당 사건에 대하여 한번도 정식으로 보고받은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박 감독은 당시 손흥민과 이재성 등 뒷담화의 피해를 입은 고참 선수들이 자신을 찾아와 문제 해결을 위하여 SOS를 요청했고,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다고 한다.

"손흥민과 이재성이 저를 찾아와 3가지를 요청했다. 성명문을 발표하고 뒷담화를 한 기자 본인의 실명을 넣을 것. 당사자들의 사과, 공식적인 취재 거부였다. 그래서 전무와 전력강화위원장, 팀장들을 소집해서 선수들의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홍명보 감독은 시합이 있기 때문에 내가 오지 말라고 했다. 실질적인 결제라인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해결해보겠다'고해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

하지만 월드컵이 개막한 이후로도 갈등은 해결되지 않았다. 멕시코와의 조별리그 2차전을 앞두고 박 감독은 상황을 중재하려고 고참급 선수들과 협회 관계자들을 한 자리에 모아 미팅을 열며 문제 해결을 위하여 노력했다고 한다. 하지만 협회는 끝까지 미온적인 대응으로만 일관했다.

"손흥민과 이재성의 말에 공감이 가더라. 이들은 10년 이상 대표 선수 생활을 하며 협회에 대한 불만이 쌓여있고 신뢰가 떨어져 있었다. 선수들이 하는 말이 '단장님, 이런 사건이 났으면, 인종차별과 같은 인신공격이지 않나. 구단 같으면 적극적으로 대응을 하는데, 협회는 왜 선수보호를 안해줍니까?'라고 하더라. 얼마나 답답하면 저한테 이야기를 했겠나. 축구 선배로서 부끄러웠다. 맞는 이야기였고, 제가 선수라도 정말로 화가 났을 거다. 선수들은 누구를 믿고 뛰겠나."

그러나 보고라인도 결제권도 없는 단장이었던 박항서 감독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멕시코전 패배 이후 뒤늦게 기자단 대표가 찾아와서 선수단 앞에서 공개 사과를 했다. 하지만 그때도 정작 뒷담화를 한 당사자들은 오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선수단이 요구하는 사과 성명문에 가해자들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지만, 이미 해당 사건이 공개적으로 이슈화되며 실명이 밝혀져 있던 상황이었다. 협회는 선수단이 요구한 공개사과와 가해자들을 공동취재단에서 배제하는 선에서 상황을 수습하려고 했다. 박 감독도 협회를 대신하여 선수들을 보호해주지 못한 것을 사과하며 양해를 구했다. 이후부터 다시 선수단의 취재와 인터뷰가 재개됐다.

하지만 이후 대표팀은 남아공과의 3차전에서 졸전 끝에 0-1로 패배하며 32강 탈락의 아픔을 피하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인터뷰 거부를 주도했던 베테랑 손흥민과 이재성이 남아공전 선발명단에서 모두 제외된 것은 많은 의구심을 자아냈다. 홍명보 감독은 남아공전 졸전의 원인에 대하여 경기후에도 "나도 잘 모르겠다"면서뚜렷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박항서 감독은 "저도 잘 모르겠다. 그런 걸 이야기할 입장이 아니다"라며 말을 아꼈다. 다만 "홍명보 감독도 자기 나름대로 최선의 방법을 했다고 하는데, 결과가 나쁜 것은 감독의 몫이다. 그로 인하여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기고 비난을 받는 건 사실이다. 감독의 권한도 있지만, 그만한 막중한 책임도 따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작 협회는 북중미월드컵 탈락 이후 뜬금없이 단장이던 박항서에게 협회 대표로 홍명보 감독과 함께 사과문을 낭독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당시 협회 수장인 정몽규 회장도 엄연히 현장에 있던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정작 실질적인 권한도 주지 않았던 박항서에게 가장 부담스러운 역할을 총알받이로 떠넘긴 셈이다.

"팀장들이 내게 찾아와서 사과문 이야기를 하더라. 그래서 '뭐지? 회장님이 없는 것도 아니고' 싶었다. 그래도 단장으로서 도의적인 책임감을 느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사과하는 자리에 나와 전무, 전력강화위원장 3명이 앉게 되어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안 나서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그냥 빠지라고 하고 혼자 나와서 사과문을 읽었다."

당시 박 감독은 월드컵이 끝나고 나면 이미 태국 칸나차부리 감독으로 부임하기로 미리 내정되어있던 상태였다. 그래서 박 감독은 협회직원들이 작성해온 사과문 중에서 '성찰을 하겠습니다"는 문구만 "축구협회는 앞으로 뼈를 깎는 성찰을 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직접 고쳤다고 한다.

또한 박 감독은 귀국 당시 공항에서 홍명보 감독이나 축구협회 임원들보다 앞장서서 등장하며 '보디가드'같은 역할을 하게 된 속사정도 밝혔다. 당시 공항에서는 북중미월드컵의 졸전, 홍명보 감독의 무성의한 사퇴발표와 태도 논란에 분개한 국민들이 찾아와 험악한 분위기가 형성된 바 있다.

박 감독은 "새벽 4시에 그렇게 많은 분들이 나올 줄은 몰랐다. 그래도 내가 (홍명보 감독보다) 선배고 내 도리는 해야 되겠다 싶어서 '내가 먼저 나갈께. 뒤에 따라와라'라고 했다"면서 끝까지 후배를 보호하는데 앞장섰다.

한편으로 박 감독은 축구협회 행정 문제를 비판하여 홍명보 감독과 정몽규 회장, 협회 실무진들의 행태에 대하여 모두 쓴소리를 남겼다.

"협회의 행정문제를 가장 잘아는 사람이 누굴까? 팀장들이다. 그들은 선수단 내에 모든 사정을 알고 있다. 하지만 손흥민과 이재성이 내게 찾아오기 전까지는 나한테 보고도 하지 않더라, 내가 단장이지만 그들은 나를 그다지 자기의 윗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홍명보 감독이 사퇴 기자회견를 할 때도 내가 기자들의 질의 응답을 받을 것을 제안했지만, 직원들은 '이미 안하기로 기자들에게 통보했다'고 했다.자기들이 그렇게 하리라 했으니 안 해도 된다고 하더라."

박 감독이 우려한 대로 홍명보 감독의 무성의한 사임 기자회견은 더 큰 논란을 자아내며 상황을 악화시켰다. 또한 귀국 당시에는 성난 팬들을 피하여 홍명보 감독과 정몽규 회장이 따로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시간차 귀국을 단행하며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에 대하여 박 감독은 "정면돌파할 것은, 깨끗이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인정해야지 피한다고 될일은 아니지 않냐"며 책임있는 축구계 인사들의 행태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편으로 박 감독은 축구협회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를 보면서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면서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축구계와 협회의 변화를 촉구했다.

"축구협회가 솔직히 너무 교만했다. 지금 카르텔을 이야기하는데 고려대 카르텔같은 학연이 아니라, '축구협회 카르텔'이 있다. 협회 내에 그들만의 세상과 리그가 있다. 저는 그걸 몸소 겪어본 사람이다. (이번 축협 파동은) 언젠가는 터질 시한폭탄과 같은 일이었다. 협회 기득권 세력들이 있고 그들을 타파해야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협회가 좀 더 자세를 낮추고, 박지성-이영표 같이 선진축구를 익힌 젊은 후배들이 잘 설계해서 일할 수 있게끔 지원해줘야한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박항서감독 손흥민 홍명보 북중미월드컵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