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아버지를 신격화하게 되니까."
넷플릭스 영화 〈위스퍼맨〉에서 수감 중인 연쇄살인범 프랭크 카터(마이클 키튼)가 자신을 체포했던 전직 형사 피트 윌리스(로버트 드 니로)에게 던지는 말이다. 프랭크는 피트의 아들 톰 케네디(애덤 스콧)가 쓴 소설 속 형사가 아버지를 닮았다는 사실을 들춰낸다. 현실에서는 멀어진 아버지를 소설 속에서는 영웅처럼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오랫동안 삐걱거린 피트와 톰의 관계를 향한 조롱처럼 들린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 말은 뜻밖의 방향으로 되돌아온다. 피트에게 톰이 있듯, 프랭크에게도 아들 프랜시스가 있기 때문이다.
〈위스퍼맨〉은 아이를 납치한 범인을 추적하는 범죄 스릴러로 시작한다. 아이가 사라지고, 과거의 범행과 닮은 흔적이 발견되고, 감옥에 갇힌 원조 살인범은 사건의 비밀을 알고 있는 듯 행동한다. 관객이 해야 할 일도 분명해 보인다. 단서를 따라 범인을 찾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범인의 윤곽이 드러날수록 영화의 시선이 조금씩 다른 곳으로 향한다는 점이다. 범인을 찾던 이야기는 어느새 두 아들이 각자의 아버지를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아왔는지를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한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가고, 다른 아들은 자신이 알고 있던 아버지를 다시 바라본다.
깎인 손톱
▲위스퍼맨공식예고편
넷플릭스
새로운 피해자의 시신을 살피던 피트는 아이의 손톱이 유난히 짧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오래전 프랭크는 아이들이 자신을 할퀴지 못하도록 범행 전에 손톱을 깎았다.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은 범행 방식까지 그대로 되풀이됐다는 사실은, 범인이 단순한 모방범이 아니라 프랭크의 범죄를 아주 가까이에서 알고 있는 인물임을 가리킨다.
그 단서는 결국 프랭크의 아들 프랜시스 카터 주니어(오언 티그)에게 이어진다. 아버지를 거의 알지 못한 채 자란 프랜시스는 그의 범죄 방식을 그대로 되풀이한다. 영화는 두 사람의 닮은 모습을 직접 설명하는 대신, 피해자의 몸에 남은 작은 흔적을 통해 아들이 아버지의 세계를 얼마나 깊이 따라가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프랜시스가 좇은 것은 범행 방식만이 아니다. 자신을 제대로 알지도 못했던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그를 점점 프랭크의 세계 안으로 끌어당긴다. 그에게 아버지와 가까워진다는 것은 결국 그를 닮아가는 일이었다.
그러고 나면 감옥 면회실에서 프랭크가 던졌던 말도 다르게 들린다. 사랑받지 못한 아들은 아버지를 신격화한다며 피트와 톰을 조롱했지만, 정작 그 말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사람은 자신의 아들 프랜시스였다.
영화는 여기서 한 세대를 더 거슬러 올라간다. 위스퍼맨이라는 이름은 프랭크가 아이들에게 저지른 범행에서 생겨났다. 그런데 피트가 프랭크의 어린 시절을 꺼내면서 이 이름에 또 다른 의미가 겹쳐진다. 프랭크 역시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했고, 그 일을 되짚는 피트의 말속에서 '속삭였다'는 단어가 다시 등장한다. 프랭크의 아버지도 어린 아들에게 속삭였던 것이다. 그 순간 '위스퍼맨'이라는 이름도 다르게 들리기 시작한다. 아이들에게 속삭이던 프랭크 역시 한때 아버지의 속삭임을 듣던 아이였다.
그 흔적은 프랭크에서 끝나지 않는다. 프랭크는 자신의 아들 프랜시스를 아직 자신에게서 '배우는 단계'에 있다고 말한다. 가까워지고 싶었던 아버지를 닮아가면서 프랜시스는 점점 프랭크가 만든 세계 안으로 들어간다. 여기까지만 보면 〈위스퍼맨〉은 한 세대의 폭력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익숙한 이야기에 가깝다.
그런데 영화는 아버지의 흔적이 모든 아들을 같은 곳으로 데려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프랭크와 프랜시스 옆에 또 다른 아버지와 아들, 피트와 톰을 세우기 때문이다.
미스터 나이트
톰은 오랫동안 피트를 자신의 삶에서 밀어냈다. 그럼에도 자신이 쓴 소설에는 아버지를 닮은 형사가 계속 등장한다. 현실에서는 밀어냈지만 이야기 안에서는 끝내 놓지 못한 것이다.
그런 톰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온 기억이 하나 있다. 밤이면 찾아와 함께 모험을 떠나고, 헤어지기 전에는 이마에 입을 맞춰주던 친구였다. 아침이면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에 톰은 그를 상상 속 친구로 기억해왔다. '미스터 나이트'였다.
▲위스퍼맨공식예고편
넷플릭스
아들을 잃어버린 톰과 마주 앉은 피트는 오래전 이야기를 꺼낸다.
가족을 떠난 뒤에도 어린 톰을 찾아갔고, 잠들기 전 책을 읽어주며 사랑한다고 말한 뒤 이마에 입을 맞췄다는 것이다. 그제야 톰은 자신이 상상 속 친구로 기억해온 미스터 나이트가 아버지였음을 알아차린다.
영화는 이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을 크게 강조하지 않는다. 피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카메라는 톰의 얼굴에 머문다. 그 짧은 순간, 새로운 사실이 과거에 하나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톰이 기억해온 과거의 의미가 달라진다. 평생 자신을 버린 사람으로만 바라봤던 아버지에게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이 지점에서 프랜시스와 톰의 길은 갈라진다. 프랜시스는 부재한 아버지를 닮아가는 방식으로 그 빈자리를 채웠다. 톰 역시 오랫동안 아버지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미스터 나이트의 정체를 알게 되면서 자신이 기억해온 아버지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이 차이가 생기는 순간, 〈위스퍼맨〉의 두 부자 관계는 단순한 '상처의 대물림'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아버지가 남긴 흔적이 그대로 아들의 운명이 되는 과정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미스터 나이트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이 곧 두 사람의 화해를 뜻하지는 않는다. 피트의 집 천장에는 균열이 있다. 몇 번을 덧발라도 다시 벌어지는 자리다. 톰이 피트의 집에 머무는 동안 영화는 이 균열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사건이 끝난 뒤에는 다시 덧발라진 천장을 잠시 비춘다.
아버지에게 자신이 몰랐던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해서, 피트가 가족을 떠났던 과거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영화가 마지막에 보여주는 것도 처음부터 깨끗했던 천장이 아니라, 균열 위를 다시 덧바른 자리다. 톰이 아버지를 다시 바라보기 시작한다는 것은 지나간 시간을 지우는 대신, 자신이 알고 있던 과거에 미처 보지 못했던 기억 하나를 더하는 일에 가깝다.
파란 스웨터
▲위스퍼맨공식예고편
넷플릭스
이제 톰은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의 자리에서, 자신에게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말하는 제이크 케네디(액스턴 루카 포르토)와 마주한다. 제이크에게는 자신에게만 보이는 친구가 있다. 파란 스웨터를 입은 여자아이다. 학교에서 손도장을 찍을 때 도움을 받았다고 말하고, 새집에서는 바닥 아래에 아이가 있다며 위험을 알려주기도 한다.
하지만 톰의 눈에는 그 여자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아들이 말하는 존재를 '가짜 친구'라고 잘라내고, 제이크는 왜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처음에는 현실과 상상을 구별하지 못하는 아이와 이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갈등처럼 보이는 장면이다.
하지만 미스터 나이트의 정체가 드러난 뒤에는 이 장면도 달라 보인다. 톰 역시 어린 시절 자신에게만 찾아오는 친구가 있다고 믿었고, 오랫동안 상상 속 존재로 기억해왔다. 그러나 미스터 나이트는 실제 아버지 피트였다. 한때 자신의 기억을 '상상'이라고 믿었던 톰이 이제 아들이 말하는 '가짜 친구' 앞에 서 있다.
▲위스퍼맨공식예고편넷플릭스
사건이 마무리된 뒤 톰은 오래된 가족사진을 넘기다 손을 멈춘다. 사진 속에는 세상을 떠난 아내가 어린 시절 파란 스웨터를 입고 있다. 제이크가 만났던 '친구'가 정말 엄마였는지는 영화가 끝내 답하지 않는다.
톰은 사진 속 파란 스웨터를 바라보다 안경을 벗는다. 한때 아들의 말을 '가짜 친구'라며 잘라냈던 그는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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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