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웬 아이 겟 제일드> 스틸컷
EBS 국제다큐영화제
03.
"엄마는 계속 관여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래도 여긴 우리가 살아갈 나라잖아요."
영화가 알료나의 어머니에게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고,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이 작품은 모녀 사이의 대화와 공권력과 알료나 사이의 시간이 교차하며 진행된다. 그는 딸의 행동을 정치적으로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위험한 일을 하지 말라고 호소한다. 알료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달라지는 것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어머니는 그 행동으로 인해 사랑하는 자식을 잃게 될 수도 있다며 두려워한다. 공포는 대중의 지지와 호의를 얻지 않고서도, 이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는 이들의 마음을 이용해 힘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물론 다른 방식으로 알료나를 지키고자 하는 이들의 모습도 그려진다. 그의 곁을 지키는 이들의 존재다.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연대하고, 터무니없는 죄목으로 법정에 선 알료나를 변호하기 위한 이들이 있다. 여기에는 영화 바깥에 서 있는 아나스타시야 베덴스카야 감독 또한 포함된다. 이들의 행동은 체제를 전복시킬 수 있을 정도의 힘이 되지는 못한다. 하지만, 딸을 잃지 않으려는 어머니의 마음만큼이나 뜨겁다. 어떤 정치적 해석과 물리적 압박 가운데서도 서로를 놓지 않고자 하는 것만큼은 양쪽 모두에서 느낄 수 있다. 서로 다른 방법일 뿐이다.
04.
이 작품에는 나발니의 죽음을 단순한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알료나라는 명확한 인물의 시간을 통해 시민들의 선택에 큰 변화를 일으킨 계기로 설명하고 있다는 명확한 장점이 있다. 그만큼 한계도 존재한다. 현재 러시아 정치체제의 구조와는 연결되지 못하며, 중심에 두고 있는 인물이 갖는 정치적 의미를 이끌어내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만 그런 좁은 영역을 다뤄내는 동안 우리는 어떤 정치적 현실이 한 개인의 삶 속에서 얼마나 빠르고 구체적으로 적용되고 사건으로 발화되는지 알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베덴스카야 감독이 연대와 연결의 모습을 화면으로부터 놓지 않으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저항의 승리가 아니다. 국가의 위력에도 헌화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 이해할 수 없는 구금 앞에서도 정당한 자리에 시민은 결집한다는 것,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 기억을 기억하는 카메라가 증인처럼 남게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자유가 사라지지 않도록 행동을 이어가는 이들로 인해 사회는 나아갈 수 있다.
▲EBS 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웬 아이 겟 제일드> 스틸컷EBS 국제다큐영화제
05.
"악이 승리하는 이유는 선한 사람들이 침묵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행동하라"
영화의 마지막에서 법원은 결국 알료나에게 구금 명령을 내린다. 그에게 주어진 모든 위반행위에 대한 유죄를 인정한 것이다. 피고인 측의 모든 주장은 무시되었고, 변호인의 요청에 대한 답변도 주어지지 않았다. 이 모든 현실은 그저 헌화를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주어진 결과다. 국가가 한 개인의 행동을 어디까지 정치적인 것으로 물들일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이 다큐멘터리가 남기는 마지막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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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