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31일, KBS 열린 음악회에서 가수 최백호를 만났다. 그는 이미 누구나 아는 유명가수로서 특히 노래 '낭만에 대하여'로 우리 세대에게 폭풍 같은 '도라지 위스키의 낭만'을 선사하는 마법을 부리는 이 아닌가. 그러나 그의 데뷔 50주년을 기념하는 특집 공연은 그의 진가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감동의 무대였다.
TV로 마주한 거실에서도 이리 감동을 받았는데, 공연장에서의 울림은 어떠했을까. 수많은 히트곡이 펼쳐지는 내내, 반세기 동안 그의 노래와 함께 한 나의 시절을 떠올렸다. 대학 선배들의 '입영전야'(1977)를 들으며 어른이 된 듯 아쉬움을 달래던 20대,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그냥 읊조릴 수 있는 '내 마음 갈 곳을 잃어'(1977), 포항 앞바다를 바라보며 외쳤던 '영일만 친구'(1979), 그리고 오늘의 노래 '박수'(2026)를 들으며 결국 눈물을 흘렸다.
때마다 다르게 들리는 노래
같은 노래가 때마다 다르게 들리게 되는 게 인생이 아닐까? 60을 바라보는 나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예전 같지 않음을 느끼며 불안감과 조급함으로 나의 노년을 그리는 때에 '박수'는 나를 위로하고 나를 안아주며 보듬어 주었다.
데뷔 50주년을 기념하며 한 달 전에 발표한 노래 '박수'의 가사 하나하나가 내 마음을 적셨기 때문이다. 별다른 꾸밈이나 화려한 장치가 없어도 오로지 목소리 하나로 우리를 감동하게 하는 가수! 늙음을 솔직하게 자연스럽게 보여 주며 용기를 주는 가수! 인생을 산뜻하게 마무리하고 가볍게 떠날 준비를 하는 대단한 가수!
내 죽거든 박수를 쳐주오. 내 삶의 시간들 칭찬해 주오. 내 죽거든 춤도 춰주오. 모두들 일어나 춤을 춰주오. 행복했으므로 매우 행복했으므로 그 가슴으로 노래를 불렀소.
창공의 높은 새들처럼 저 푸른 파도의 돌고래처럼 <박수>
TV에 비친 관객들도 나처럼 눈물을 닦고 있었다. 열정적으로 성실하게 산 인생만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인사였다. 행복했다, 사랑했다 이보다 더 큰 울림을 주는 인생의 마지막 인사가 또 있겠는가! 내 인생의 마지막 인사도 이처럼 사랑하는 나의 사람들에게 고마웠다, 덕분에 행복했다,라는 고마움을 남기고 싶다.
누구나 처음일 50대를 마무리하는 요즘, 또 다른 심란함으로 괴로웠다. 이미 노화의 길에 들어선 지 오래이나, 60대는 또 다른 경험이었다. 몸도 마음도 뇌 기능도 현저히 달라지는 것을 느껴 우울한데, 게다가 세상은 젊고 강한 이들을 내세워 주름을 부끄러움으로, 심지어 노화를 부족함으로까지 여기는 자료를 볼 때마다 불안감이 커져갔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흔들리고 또 흔들리는 요즘이었다.
그러나 70대 가수 최백호는 그 자체로 빛나고 있었다. 백발의 머리카락과 얼굴의 주름, 어깨와 체구의 가벼움까지.... 이렇게 늙어가는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보여주는 듯했다. 흰머리는 인생의 세월을 은은하게 담아내고, 얼굴의 주름은 미소 따라 흐르고, 욕심을 덜어내듯 한껏 가볍고 정갈한 몸짓은 소탈함을 보여주었다.
늙음을 거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 않아도 된다. 세상 잣대에 맞춰 그들의 동안과 젊음을 보고 비관하지 않아도 된다. 더디고 무뎌지고 느리고 빛을 잃어가는 것도 인생의 소중한 장면이다. 그러니 피하지 말고 의기소침해지지 말고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늙어가자.
최백호의 꾸밈없는 소탈한 목소리가 인생의 진솔한 의미를 실어 나의 마음을 타고 들어왔다. '박수'는 어느새 내 손을 따스하게 잡아 눈물을 닦아 주고 있었다.
내 죽거든 박수를 쳐주오. 이별의 눈물 흘리지 마오. 사랑했으므로 모두 사랑했으므로 그 마음으로 이겨내었소.
차가운 숲의 풀벌레처럼 먹구름 속의 둥근달처럼 내 죽거든 박수를 쳐주오. 내 슬픈 노래들 그리워해주오. <박수>
그날 '박수' 노래로 위안받은 나는 곧 내 인생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보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위기와 절망에 굴하지 않고 삶을 잘 이어온, 꿋꿋하게 오늘을 살아내는 나의 인생에 용기와 응원을 보냈다. 나이와 늙음을 사심 없이 덤덤하게 대하는 그의 태도가 불안한 나를 안정시킨 것이다.
가수 최백호는 어린 후배 가수와 호흡을 맞춰 가며 감동의 무대를 이어갔다. 작은 체구에서 품어져 나오는 깊은 울림소리, 후배의 목소리와 어울려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그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후배 가수 정승환, 린과 눈을 맞추며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때, 푸르른 청춘의 그를 다시 본 듯했다.
나는 지금 딸을 결혼시키며 만들었다는 최백호의 노래 '애비'를 듣고 있다. '잘살아야 한다. 행복해야 한다. 애비 소원은 그것뿐이다.' 지난 4월 딸의 결혼식 축사에서 내가 했던 말이다. 아니 자식을 출가시키는 모든 부모들의 마음일 것이다. '가뭄으로 말라터진 논바닥 같은 가슴'이라니, 우리 부모의 마음을 어느 자식이 이리 짐작할 수 있으랴!
동시대를 함께 걷고, 같이 나이 들고, 과거를 한 마음으로 회상할 수 있는 친구 같은 가수와 노래가 있어 참 행복하다. 언제나 '낭만가객' 최백호의 노래를 들을 수 있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메마른 우리의 영원한 '낭만'이 되어주길 간절히 바란다.
덩달아 나도 다시 외쳐본다. 힘내서 잘 늙어보자. 다가와라 나의 60대 여! 감사한 마음으로 웃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