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 공연을 한 번도 안 본 사람에게 건네는 초대장

[인터뷰] 대한무용협회 조남규 이사장

전국무용제의 첫 서울 개최와 서울무용제를 앞두고 8월 21일, 조남규 대한무용협회 이사장을 대학로에서 만나 한국 무용계의 오늘과 새로운 관객 창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기자말]
조남규 대한무용협회 이사장과 무용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대화는 결국 '관객'으로 모인다. 좋은 작품과 뛰어난 무용수도 중요하지만 그 춤을 바라보는 사람이 없다면 무용 생태계는 완성될 수 없다는 이유다. 특히 그가 말하는 관객은 이미 무용을 아는 사람만이 아니다. 한 번도 무용을 접하지 않은 이들, 공연장 앞에서 망설이는 평범한 시민들이 대상이다.

올가을 서울은 그가 말하는 무용 생태계를 시험하는 무대가 된다. 전국무용제가 처음으로 서울에서 열리고, 서울무용제가 이어진다. 최근에는 장르와 세대를 넘어 무용계가 '생존'을 위한 공동행동에도 나섰다.

 대한무용협회 조남규 이사장 프로필
대한무용협회 조남규 이사장 프로필서울문화재단



지역의 춤이 서울에 모인다

제35회 전국무용제는 역사상 처음 서울에서 열린다. 각 지역 예선을 통과한 무용단체들이 지역의 이름을 달고 서울에 모인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무용가들에게 서울에서 공연한다는 것은 여전히 하나의 꿈입니다."

조 이사장은 전국무용제를 전국체전에 비유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느 지역이 상을 받느냐보다 무용제를 계기로 지역의 창작 생태계가 움직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역에서 만들어진 작품이 서울의 관객과 기획자를 만나고, 공연 이후 또 다른 무대로 이동할 가능성이 생겨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 개최가 갖는 상징성도 크다. 전국무용제가 지역 순회형 축제로 자리 잡아온 만큼 서울 개최는 단순한 장소 이동이 아니다. 지역에서 검증된 작품이 수도권의 관객과 기획자, 다른 지역의 예술가를 한자리에서 만나며 새로운 유통 가능성을 시험하는 자리다. 서울이 지역 문화를 흡수하는 중심지가 아니라 지역의 작품을 더 넓은 무대로 내보내는 플랫폼이 될 수 있는지가 이번 무용제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그는 취임 이후 전국무용제 규정도 손봤다. 과거에는 출연 무용수 상당수가 해당 지역에 주소지를 둬야 했지만 무용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일수록 좋은 무용수를 확보하기 어려워 경연에서 불리했다.

"안무 경연인데 안무가가 작품에 맞는 무용수를 선택하지 못한다면 처음부터 경쟁 조건이 다르지 않습니까."

지역 대표 안무가라는 정체성은 유지하되 출연 무용수의 지역 제한을 완화했고, 심사 방식도 공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바꿨다. 지역 무용 활성화가 선언에 그치지 않고 좋은 작품과 다음 창작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올해 전국무용제는 9월 23일부터 10월 23일까지 이어진다. 본선 경연뿐 아니라 시민이 여러 장르의 춤을 직접 경험하는 '댄스 플레이그라운드', '찾아가는 춤서비스', 해외무용단 쇼케이스 등을 통해 경연장을 넘어 시민의 생활공간과 국제교류의 장으로 반경을 넓힌다.

 전국무용제 참여 작품
전국무용제 참여 작품캄바타댄스컴퍼니



"서울무용제의 역사는 창작무용의 역사"

전국무용제가 지역 대표작들의 경연이라면 서울무용제를 설명하는 핵심어는 '창작'이다.

"서울무용제의 역사는 곧 우리나라 창작무용의 역사라고 봐야 합니다."

서울무용제의 시작은 1979년 대한민국무용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작지원 사업이 많지 않던 시절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세상에 내놓게 하는 귀한 무대였다. 이후 한국무용·현대무용·발레를 대표하는 안무가들이 이 무대를 거쳤다. 조 이사장이 서울무용제를 '안무가 탄생의 산실'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올해 제47회 서울무용제는 11월 4일부터 29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과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서울무용창작센터' 등에서 열린다. 그러나 오랜 역사만으로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조 이사장은 지금까지 서울무용제가 '좋은 작품을 만드는 축제'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새로운 관객을 발굴하는 축제'라는 과제도 함께 풀어야 한다고 했다.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늘리고 공연장을 넘어 생활공간으로 무대를 넓히는 것도 그 방법이다. 작품의 수준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시민이 무용을 대할 때 느끼는 부담을 줄이자는 것이다.

 서울무용제 참여 작품
서울무용제 참여 작품SDL

'생존'을 말하기 시작한 무용계

최근 무용계는 '생존'이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걸었다. 대한무용협회를 비롯한 20여 개 단체와 전국 독립무용단, 관련 학회 등이 '범무용계 생존연대'를 꾸리고 무용 생태계의 위기를 공론화했다.
최근 대학 무용 관련 학과 감소와 전문무용수의 불안정한 일자리 문제도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 세계 무대에서 한국 무용수들의 활약은 이어지지만 국내 창작현장에서는 다음 세대가 직업인으로 버틸 기반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 무용계의 문제의식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예산 확대가 아니다. 무용진흥법을 제정해 중장기 국가정책의 기반을 만들고, 전국 단위 사업과 기관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며, 국·공립 및 지역 기반 전문무용단을 늘려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자는 것이다. 제작비 현실화와 공공 공연시설 대관료 부담 완화 등 창작환경 개선도 포함된다.

조 이사장이 인터뷰 내내 강조한 '생태계'와 겹쳐 보면 의미가 선명해진다. 좋은 무용수를 길러내는 교육, 직업인으로 살아갈 일자리, 작품을 만들 제작환경과 공연장, 만들어진 작품이 서울과 지역, 해외로 이동할 유통구조가 모두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생태계는 완성되지 않는다. 마지막에는 결국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무용인이 계속 춤출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과 새로운 관객을 만드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무용인끼리 보고 끝나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올해 서울어텀페스타에서 무용이 중요한 축을 담당한다는 이야기에 조 이사장은 1992년 '춤의 해'를 떠올렸다. 당시 정부가 예술 장르를 집중 조명하면서 첫 번째로 선택한 분야가 춤이었고, 이를 계기로 여러 사업이 만들어지며 무용계가 성장하는 발판이 마련됐다는 것이다.

30여 년이 지나 서울은 다시 춤으로 가을을 채운다. 전국무용제와 서울무용제가 이어지고, 야외 공간과 시민 참여 프로그램을 통해 무용이 일상 가까이 들어온다.

조 이사장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공연장 밖이다.

"무용은 대중성이 약하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보면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오히려 어려운 것은 작품 자체보다 사람들이 극장까지 오게 만드는 일이죠."

공원이나 광장을 지나던 시민이 우연히 춤을 만나고 잠시라도 발걸음을 멈춘다면,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생애 첫 무용이 될 수 있다. 그 경험이 '무용도 재미있다'는 감각으로 남으면 다음에는 공연장을 찾는 관객이 될 가능성이 생긴다.

그는 무용계 내부의 현실도 숨기지 않았다. 일부 공연을 제외하면 객석의 상당수가 동료 무용인이나 관계자로 채워지고 서로 공연을 봐주는 '품앗이' 문화도 여전하다고 했다.

"우리끼리 객석을 꽉 채울 수는 있어요. 그런데 무용인끼리 보고 끝나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인터뷰 말미, 무용 공연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옆집 사람'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춤은 원래 일상"이라고 답했다.

"춤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알아내려고 하지 말고 무용수의 움직임과 땀, 호흡을 그냥 느끼세요. 정답이 없는 예술이잖아요. 그 순간 내가 느낀 것이 바로 정답입니다."

조 이사장은 올가을 서울에서 펼쳐질 무용 행사를 '선물 세트'에 비유했다. 전국에서 올라온 춤, 서울에서 새로 만들어지는 춤, 극장 안팎의 춤, 시민이 직접 몸을 움직이며 경험하는 춤이 한꺼번에 펼쳐진다.

그 사이 무용계는 '생존'을 이야기한다. 무용진흥법과 일자리, 창작환경을 요구하는 것은 무용가가 계속 춤출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이다. 그러나 그 생존의 다른 한쪽에는 그 춤을 계속 바라봐줄 사람이 있다.

좋은 작품이 만들어지고 무대에 오르고, 지역과 서울을 오가며 더 넓은 세계로 이동하고, 새로운 관객을 만나 다시 다음 작품으로 이어지는 것. 그것이 조 이사장이 말하는 무용 생태계다.

어쩌면 무용의 대중화는 거창한 데서 시작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한 번도 춤을 보지 않았던 사람에게 단 한 번이라도 춤과 마주칠 기회를 만드는 것. 그 한 사람이 다음 공연의 관객이 되는 순간, 무용 생태계의 새로운 순환도 시작된다.

 서울어텀페스타 공식 포스터
서울어텀페스타 공식 포스터서울문화재단



대한무용협회 무용 조남규 전국무용제 서울무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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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글을 써왔다. 월간지<문화+서울>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신문 필진(2016~2023)으로 취재와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전시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만나 이아기를 전하며, '서울문화투데이'와 '더프리뷰' 등 매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