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레노 임시감독(대한축구협회 제공)
연합뉴스
위기의 한국축구를 구원할 임시 사령탑에 로베르트 모레노(스페인) 감독이 선임됐다.
대한축구협회(KFA)는 1일 천안에 위치한 코리아풋볼파크에서 2026년도 제7차 이사회를 개최하고 "모레노 감독을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9월~11월 A매치 6경기를 지휘할 임시 감독으로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모레노 감독을 보좌할 5명의 스페인 코칭스태프 선임도 승인했다. 계약 기간은 올해 11월 27일까지이며, 성과에 따라 내년 1월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까지 연장하는 조건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축구대표팀은 지난 북중미월드컵에서 32강 진출에 실패하며 홍명보 감독이 성적부진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정몽규 회장 역시 사임하면서 한국축구는 협회 수장과 대표팀 감독이 동시에 공석이 되는 초유의 상황을 맞이했다. 축구협회는 집행부가 공석인 상황에서 정식 감독 선임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11월까지 한시적으로 대표팀을 이끌 '임시 감독' 체제를 선택하며 사상 최초로 '공개 채용' 방식을 도입했다.
당초 임시 감독이라는 불안정한 위치와 까다로운 지원 조건을 감수하며 과연 수준급 감독들이 한국대표팀에 지원하겠냐는 우려의 시선이 많았다. 그런데 막상 공모에 돌입하면서 다수의 유명한 해외 지도자들이 한국 대표팀 감독직에 적극 관심을 보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포옛 제치고 뽑힌 모레노, 그의 남다른 이력
지난해 전북 현대를 이끌며 K리그1와 코리아컵 2관왕을 이끈 거스 포옛(우루과이) 감독조차 서류전형도 통과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레노를 비롯하여 도메네크 토렌트, 헤수스 카사스(이상 스페인), 에르빈 쿠만(네덜란드) 등이 유력한 한국 대표팀 사령탑 후보로 물망에 올랐다. 물론 하나하나 따져보면 '일류 감독'이라기에는 조금씩 아쉬움과 흠결이 있는 후보들이지만, 임시 감독이라는 불리한 조건을 감안하면 오히려 기대 이상의 흥행이었다.
그리고 모레노 감독은 축구협회의 서류전형을 통과하여 최종후보 5인에 이름을 올렸다. 이어 2차 온라인 면접에 이은 대면 미팅과 계약 조건 조율 과정을 통해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쳤고, 지난 주말 최종 협의를 마치면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임시 감독으로 선임됐다.
1977년생인 모레노 감독은 특이하게도 프로 선수 경력이 없는 인물이다. 고향의 라 플로리다 CF에서 중앙수비수로 뛰었지만 프로 선수가 되지는 못했고, 대신 체육 교사의 권유로 14세 때부터 지도자 수업을 시작했고 불과 16세에는 라 플로리다 유소년팀을 맡으면서 남들보다 일찍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특히 모레노 감독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명장' 루이스 엔리케(현 파리 생제르맹) 감독을 보좌하는 참모로 활동하면서부터였다. 모레노는 AS로마(이탈리아), 셀타비고, FC바르셀로나(이상 스페인), 스페인 국가대표팀에 이르기까지 엔리케 사단의 일원으로 끈끈한 인연을 이어갔다.
당시 모레노 감독은 상대팀 비디오 분석과 경기 계획 수립, 세트피스 전술 등을 담당하는 '데이터 분석 전문가'로서 엔리케 감독의 축구철학을 뒷받침하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바르셀로나 시절의 모레노는 코치로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와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우승 및 트레블(3관왕, 2014-15시즌)을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모레노와 엔리케, 두 사람의 인연은 엇갈리게 된다. 모레노는 2018년 엔리케 감독이 스페인 국가대표팀에 부임하게 되자 또다시 수석코치로 발탁되어 엔리케를 보좌하게 됐다. 하지만 엔리케가 2019년 3월 자녀의 건강 문제로 잠시 감독 퇴임 의사를 밝히면서, 모레노가 감독대행으로 대신 스페인 대표팀을 이끌게 됐다. 모레노 감독은 스페인 대표팀을 8개월간 이끌며 7승 2무라는 예상을 뛰어넘는 호성적을 기록하고 유럽선수권 본선(유로2020) 진출을 이끌고 잠시 정식 감독까지 선임됐다.
그런데 2019년 11월 엔리케 감독이 사임을 철회하고 스페인 대표팀에 복귀하게 되면서 상황이 미묘해졌다. 모레노는 당초 엔리케 감독이 복귀하면 수석코치로 돌아가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엔리케 감독이 자리를 비운동안 모레노 감독이 기대이상의 성과를 내면서 위상이 높아지자 엔리케 감독에게는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다. 결국 갈등이 깊어진 두 사람은 엔리케 감독이 다시 지휘봉을 잡게되자 모레노 감독이 수석코치로 다시 복귀하지 않고 스페인 대표팀을 떠나는 것으로 완전히 결별하게 된다.
이후 모레노는 '엔리케의 코치' 이미지를 벗고 2019년 AS모나코(프랑스)를 시작으로 그라나다CF(스페인), PFC 소치(러시아) 등 여러 유럽 1부 클럽의 감독을 역임하면서 홀로서기에 나섰다. 하지만 감독으로서는 한번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경질을 거듭하며 코치 시절 만큼의 명성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모레노는 지난 2023년에도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감독의 후임으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사령탑 물망에 오른 바 있으나, 당시 대한축구협회는 위르겐 클린스만(독일)을 선택하는 최악의 실책을 저지르며 모레노와의 인연은 불발되는 듯 했다.
하지만 모레노 감독은 재도전 끝에 비록 임시 감독이지만 결국 3년만에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지휘봉을 잡는데 성공했다. 한국에 그동안 여러 외국인 감독들이 거쳐갔지만, 스페인 국적 지도자가 임명된 것은 모레노가 처음이다.
스페인은 지난 북중미월드컵 챔피언이자, 빌드업과 점유율 등 현대축구의 전술과 기술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축구강국이다. 모레노 감독은 FC바르셀로나와 스페인 국가대표팀이라는 당대 최고수준의 클럽과 대표팀에서 지도자로 능력을 인정받은 매력적인 커리어를 보유하고 있으며, 나이도 48세로 매우 젊은 편이다.
모레노 감독은 스타플레이어 출신과 거리가 먼 비프로 선수 출신임에도, 실무적인 전문성을 인정받아 지금의 위치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의 장점으로는 세밀한 데이터 분석 능력과, 스페인 출신다운 전술운영 능력이 꼽힌다.
바르셀로나 코치와 스페인 감독대행 시절, 모레노 감독은 정밀한 분석을 기반으로 상대와 선수구성에 따라 다양한 전술을 운용하는 성향을 보여줬다. 코치진 전원을 자신과 호흡을 맞춘 스페인 출신으로 꾸린 것도 전술적 완성도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전임 클린스만과 홍명보 체제에서 4년 가까이 선수들의 개인능력에만 의존하는 무전술과 '해줘축구'에 지친 팬들은 모레노 감독에게 '유연한 지략가'로서의 면모를 기대하는 이들이 많다.
'정식 감독'으로서의 실적은 애매... AI 활용 루머까지
다만 한편으로는 불안요소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월드클래스급 선수들과 함께했던 바르셀로나 수석코치나 스페인 감독대행 시절과는 달리, 본인이 정식 감독으로 지휘봉을 잡은 팀에서 남긴 성과는 사실상 전무하다.
오히려 그가 거쳐간 모나코나 그라나다, 소치 등에서는 선수구성과 스타일이 전혀 다른데도 '바르셀로나식' 공격축구와 패싱게임에 지나치게 집착한 것이 패착이 되었다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점유율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수비 불안은 그가 거쳐간 팀들의 공통점인 약점으로 꼽혔다. 선수 시절의 명성이 약하다 보니 개성 강한 스타 선수들을 제어하고 라커룸 분위기를 장악하는 카리스마와 리더십은 부족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어찌 보면 코치로서의 능력과 감독으로서의 능력은 엄연히 별개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심지어 모레노 감독에게는 다소 황당한 'AI 괴담'도 따라다닌다. 2025년 러시아 소치 감독 시절, 구단 관계자의 폭로로 인하여 모레노 감독이 인공지능인 '챗GPT'에 의존하여 선수단 훈련일정이나 영입 계획 등을 결정했다는 유명한 루머다.
폭로자는 '모레노 감독이 챗GPT로 선수단 일정표를 계획했고, 훈련 명목으로 선수들을 28시간이나 잠을 재우지 않겠다는 내용이 있었다'거나 '챗GPT의 추천으로 영입한 선수를 주전으로 활용했으나 0골에 그쳤다'는 등의 주장을 펼쳤다. 당시 모레노 감독이 시즌 개막 후 7경기에서 승점 1점에 그치는 부진으로 소치에서 경질된 직후에 나온 이야기들이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한 수준의 황당무계한 내용들이 많기는 하지만, 하필 클린스만이나 홍명보같은 전임 감독들의 역대급 기행으로 악몽을 겪은 바 있는 한국축구로서는 설마하고 넘길 수만은 없는 루머들이다. 이에 대하여 모레노 감독은 "인공지능은 러시아어 번역용으로 썼을 뿐, 선수단 운영에 대한 최종 결정은 자신과 코치진이 내렸다"고 일축한 바 있다.
현영민 전력강화위원장은 "임시 감독 선임은 절차적 정당성과 공정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컸던 만큼 체육회 기준에 맞춰 이를 준수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면서 모레노 감독은 한국 축구에 대해 이미 높은 이해도를 갖추고 다양한 전술적 대안을 제시하는 등 열의가 인상깊었다"고 선임 이유를 밝혔다. 이어 "모레노 사단이 대표팀의 분위기 전환과 경기력 향상에 역할을 다해주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모레노 감독은 24일 에콰도르와 평가전을 시작으로 한국대표팀 임시 감독으로서의 여정에 돌입한다. 모레노 감독이 6번의 모의고사를 거쳐 아시안컵까지 한국축구를 이끌 대안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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