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부들 모임 해단식 날, 여인숙에서 터진 통곡

[김성호의 씨네만세 1422] 231회 독립영화 쇼케이스 <이슬이 온다>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988년의 어느 날이었나. 강원도 태백 시내 역사 앞에 20대 사내 몇이 모였다. 이들은 태백시 철암동 강원탄광의 광부들이다. 청춘의 한때를 지낸 광산을 떠나서 새 삶을 살려는 참이다. 이들에겐 나름대로 모임의 이름도 있다는데, 조금은 직설적인 '우정회'라고 전한다. 우정이 얼마나 고팠으면 뜨내기 막장 인생들이 잠시 잠깐 모여드는 탄광 광부들의 친목 모임을 우정회라 하였을까. 또 그토록 고팠던 우정을 내버려두고, 이들은 어째서 전국 각지로 흩어지려 하고 있는가.

말하자면 이날은 우정회 회원들의 해단식이다. 그냥 헤어질 수 없었던 이들이 주머니를 탈탈 털어 꺼낸 돈을 모아들고 이날 하루만큼은 배불리 먹기로 한다. 박하기 짝이 없던 당시 임금에서 반을 잘라 고향집에 보내고 남는 것으로 근근이 하루, 한 달을 나던 소박한 이들이다. 죄다 털어대야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배를 채운 이들이 여인숙 방 한 칸에 들어앉아 함께 소주를 들이부었다던가. 얼마나 서러운 나날을 함께 견뎠던지 그날 밤 이들이 든 방에서는 그저 통곡 가까운 울음소리들만 계속됐다고 전한다.

지난달 11일 있었던 231회 독립영화 쇼케이스에서 김태일, 주로미 감독의 다큐멘터리 <이슬이 온다>가 상영됐다. 118분짜리 장편 다큐는 지난해 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다큐가 받는 비프메세나상을 수상해 화제가 된 작품이다. 아시아 최고 영화제가 선정한 한국 최고 다큐를 만나볼 기회란 생각만큼 흔치 않으니 이날 상영회를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이슬이 온다 스틸컷
이슬이 온다스틸컷한국독립영화협회

평범한 노동자는 어떻게 열사가 되었나

<이슬이 온다>는 강원도 탄광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지난해 6월 도계광업소 폐광을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석탄 채광사업이 사실상 종료된 상황에서 올해 광산과 관련한 다큐가 연달아 화제가 되고 있단 건 주의해 볼 만한 일이다. 사북 항쟁에 대한 재조명을 촉구하는 이른바 '늦은 메아리 운동'을 이어가고 있는 박봉남 감독의 <사북 1980>이 그 한 축이라면(관련기사: 계엄 위해 필요했던 '빨갱이', 이렇게 만들어졌다 https://omn.kr/2i1ys), <이슬이 온다>는 또 다른 각도에서 한국사회가 충실히 조명하지 않았던 광부들의 이야기를 심층적으로 파고드는 작품이다.

중심이 되는 건 광부 성완희다. 서두에 적은 우정회의 우두머리격으로, 다른 광부들과 마찬가지로 타지에서 흘러들어 막장에서 석탄을 캐는 일로 살아가던 이다. 막장노동이란 상상하는 그만큼, 어쩌면 그보다도 더 고되기 짝이 없다. 덥고 습하며 수시로 위험을 감당해야 하는 이 노동이 괴로워서 도저히 사람이 할 것이 못 된다고 떠나가는 이들도 수두룩했다. 그러나 배움도 기술도 없는 이들에게 광산 일만큼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일도 드물었다.

"탄광에 들어가 일하다 죽으면 보상금이 많이 나온다"란 얘기를 듣고 온 이가 있고, 이 악물고 딱 삼 년만 일하면 빚도 갚고 밑천도 마련할 수 있다는 각오로 들어온 이들도 있었다.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노동환경에 하루, 한 달만 있다 떠나는 이들도 수두룩했으나 반대로 평생을 이곳에서 보내며 가족을 건사한 이들도 있다.

성완희는 오늘에 이르러 열사라고 불린다. 그 이름자를 아는 이는 얼마 없어도, 누구는 그가 나라를 위해 죽은 열사라 하여 기념하고 추모한다. 성완희는 그저 다른 광부들처럼 가난한 사내였다. 홀로 광산에 흘러든 그는 저와 같은 뜨내기 광부 몇과 친해졌다. 주변에 호감을 주는 풍모가 있었는지, 그를 중심으로 모여든 이들이 함께 우정회를 이루었다.

남과 다를 것 없었던 평범한 노동자다. 탄광에 들어온 다른 이들처럼 어서 돈을 모아 이곳을 나가는 것을 목표로 삼았을 이다. 그런 그의 운명을 뒤바꾼 건 어쩌면 시대였을까. 1987년 6월 항쟁에 뒤이어 전국을 휩쓴 노동자 대투쟁과 대파업이 광산에 불어닥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광산은 부조리했다. 탄광 운영 주체는 광부의 처우를 전혀 돌보지 않았다. 어용노조를 앞세워 처우개선에 거의 의지를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는 채탄량을 속여 광부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을 도둑질하기까지 했다.

이슬이 온다 스틸컷
이슬이 온다스틸컷한국독립영화협회

노조 향한 백색테러, 암담했던 그 시대

본래 못된 일일수록 빨리 퍼지는 법이다. 광부들이 결집하지 못하도록 광부 사이에 편을 갈라 서로 싸우도록 하는 일이 공공연했다. 강원도에 터 잡은 동네 사람들과 타지에서 흘러든 뜨내기들이 서로 불화하도록 편을 갈랐다. 지역민들은 뜨내기들이 동네 물을 흐리고 마땅히 지역의 것이어야 했던 이익을 가져간다고 불만을 가졌다. 지역 양아치들을 중심으로 한 구사대가 결성돼 회사의 비호 아래 타지에서 흘러든 성향이 좋지 않은 광부들을 대상으로 공공연한 백색테러를 저질렀다.

성향이 좋지 않다는 건 곧 회사에 거슬리는 일을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어용노조에 대항하는 조직을 결성하려 하고, 파업 같은 행위를 주도하며, 심지어는 근로기준법을 공부하는 일까지도 그 성향을 알 수 있는 징표처럼 여겨졌다. 회사로부터 부당해고를 당한 동료를 복직시켜달라고 싸웠다는 이유로 다시 테러 대상이 되는 경우도 공공연했다. 말하자면 회사는 광부들이 서로 뭉치지 않기를 바랐고, 백색테러를 저지르는 구사대를 키워 겁을 주고 폭력을 행사했다.

영화는 성완희와 우정회 친구들이 회사에 대항하여 노동운동의 중심에 서는 과정을 비춘다. 작업장의 부조리한 현실에 눈뜬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일어선 농성과 파업, 그 과정에서 이뤄진 부당한 탄압과 해고, 복직투쟁과 잇따르는 괴롭힘, 테러와 분신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당시 사정을 기억하는 이들의 입을 통해 풀어낸다.

성완희는 무릎 꿇거나 저항하거나 오로지 두 가지 선택지만을 강요받았고, 마침내는 8년 전 전태일이 그러했듯 제 몸에 불을 내며 새로운 변화를 이루기로 결심한다. 분신, 죽음, 그 죽음이 가져온 변화는 성완희의 이름 뒤에 열사라는 칭호를 붙도록 했다. 부조리한 현실과 맞서 싸우다 제 몸을 바쳐 이룬 변화는 과연 성완희라는 한 사람의 목숨, 그가 살아낼 수 있었을 생보다 가치 있는 것이었을까. 영화 내내 묻게 되는 질문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이슬이 온다 스틸컷
이슬이 온다스틸컷한국독립영화협회

투쟁과 분신을 넘어

<이슬이 온다>는 그저 성완희 열사의 투쟁과 죽음까지를 복기하는 다큐가 아니다. 인간 성완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그와 당시의 사정을 기억하는 이들을 통해 다가서 복원하는 작업에 가깝다. 그 과정에서 카메라 앞에 소환되는 인물 중에는 성완희와는 전혀 인연이 닿지 않았던 이들도 적지 않다. 그는 이 영화가 성완희라는 개인의 삶을 넘어 당시의 사회상을 재현하고, 그 죽음의 박제된 의미보다도 구현되지 못하고 스러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오늘처럼 눈이 많이 내린 날이었어. 저 아래 다리 옆에 허름한 대폿집이 하나 있었거든. 그런데 성완희가 거기 혼자 앉아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더라고. 그래서 다가가 같이 한 잔 받아 마셨지. 나하고는 질이 다른 사람이었어. 그날 이후부터 내가 그 양반 모르게 뒤에서 많이 막아줬어. (중략) 그 양반이 나한테 참 따듯하게 이야기를 건네는 거야. 우리 같이 가난한 사람을 좀 돌봐주면 안 되겠냐고... 내가 거기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일견 난잡하고 어지러운 인터뷰의 연속 속에서 이 영화를 남달리 보게 하는 건 분명히 김점삼, 구사대의 일원으로 성완희와 같은 이들을 구타하기도 했던 이의 존재다. 선배들이 시키는 대로 찍힌 노동자를 으슥한 골목으로 끌고 가 흠씬 패주기 일쑤였던 당시 구사대의 사정이 실감 나게 담기는 것은 그 내부자였던 김점삼의 솔직한 증언 덕분이다. 성완희와 다른 편에 섰던 그와 성완희가 대폿집 한 테이블에 마주 앉아 나누었던 대화는, 이후 이어진 우정에는 이르지 못한 어떤 이해는 우리 사회가 상실케 한 어느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는가. 마치 우리네 역사가 그러하듯이.

원치 않게, 택한 적도 택할 수도 없었던 삶의 인도로 서로 다른 자리에 선 이들의 싸움이 지속된다. 그 사이에서 이득을 취하는 책임 있는 이들과 방관하며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비겁한 이들이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세상이다. 다큐 <이슬이 온다> 가운데서 친구를, 우정을 지키지 못한 우정회 회원들은 남루한 여인숙에서 목 놓아 울고는 영영 다시 만나지 못한 채 전국 각지로 흩어진다. 그들의 미래가 기대만큼 밝지만은 않았으리란 걸 영화를 보는 이들 모두가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이슬이 온다 포스터
이슬이 온다포스터한국독립영화협회

영화를 달리 보게 하는 단 하나의 인터뷰

<이슬이 온다>는 광부 출신 시장으로 재선에 도전했다가 낙선하는 류태호 당시 태백시장, 대학생 신분으로 광부로 취업해 노동운동을 했던 안재성 소설가, 함께 현지서 노동운동을 했던 원기준 목사, 사북 탄광노동자였다가 이제는 정육점을 운영하는 천삼용, 대학생 활동가로 그와 결혼한 전미영, 심지어는 촬영 시점 광부로 일하는 노동자 등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켜 당시 상황을 복원하고 한국의 오늘과 이어내려 든다. 그러나 저마다 탄광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로만 엮일 뿐인 제각각의 이야기는 성완희 열사의 삶과 죽음, 우정회 회원들이 겪은 비극, 구성원에 대한 추적과 만남이라는 단일한 줄기와는 상당히 이질적인 감상을 자아낸다.

이 같은 문제를 극복하고 영화를 특별하게 하는 것은 김점삼의 존재다. 노사대립의 관점에서 유일하게 다른 자리에 섰던 김점삼의 진솔한 인터뷰를 통하여서 영화는 비로소 성완희 열사와 활동가들을 넘어 당대를 살아간 우리 모두, 그 시대를 지나온 한국사회에 대한 이야기로 화한다. 그로부터 당대를 지나온 사람과 사회는 저마다 시대가 낳은 부조리에 대해 각자의 자세를 가져왔음을 확인하게 한다. 누구는 적극 가담하고, 다른 누구는 맞서서 저항하며, 또 누구는 그사이 어딘가에서 못 본 척 외면하거나 어중간한 자세를 취할 밖에 없었던 시대가 있었음을 보인다.

구사대의 일원이었던 김점삼이 성완희를 남달리 바라보고 나름의 감정을 느끼면서도 제 선 자리를 바꿀 수는 없게 한 환경이 무엇이었나. 그리고 오늘에 이르러 이 같은 영화 앞에 제 얼굴을 내밀고 지난 과오를 이야기하게 되는 아이러니함은 또한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시대가 강요한 무자비한 삶과 우리 스스로 포기한 가능성이 수십 년을 건너 각자의 얼굴로 드러날 때 우리는 과연 얼마만큼 자신이 걸어온 길을 긍정할 수 있을까.

<이슬이 온다>가 그 시선과 자세, 구성에서 탁월한 작품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몇 차례 인터뷰는 한 편의 다큐가 특별함을 얻어내는 귀한 순간을 보여준다. 삶으로 써낸 특별한 이야기는 제 아무리 현명하고 솜씨 좋은 작가도 해낼 수 없는 귀한 가치를 다큐 가운데 새겨낸다. 다큐 작가가 진실로 좇아야 할 것이 또한 이것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이슬이온다 한국독립영화협회 독립영화쇼케이스 김태일 김성호의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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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