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큘라: 러브 테일> 스틸컷
와이드 릴리즈㈜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5세기 종교 전쟁에 나간 왈라키아의 영주 블라드(케일럽 랜드리 존스)는 신이 아내를 지켜준다는 약속을 철석같이 믿었지만 엘리자베타(조이 블루)가 죽자 흑화한다. 하지만 아내를 되살릴 방법이 없어 신을 버린 채 끝없는 기다림을 시작한다. 그렇게 400년 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아내와 재회한 블라드는 운명의 끝에서 다시 한번 불꽃처럼 타오른다.
흡혈귀가 아닌 한 인간
영화 <드라큘라 : 러브 테일>은 영국 출신 작가 브램 스토커의 고딕 호러 소설 <드라큘라>(1897)를 뤽 베송이 각색한 이야기다. 드라큘라는 영화, 드라마, 뮤지컬, 게임 등 다양한 장르로 탈바꿈된 아이콘으로, 뤽 베송 감독은 사랑하는 아내를 신에게 빼앗겨 절망한 남자의 시선으로 한정했다.
뤽 베송의 뱀파이어는 피와 성애 탐닉의 크리처나 박쥐나 늑대로 변하는 괴물이 아니다. 한 여자만 기다리는 절절한 사랑이자 순애보를 간직한 사랑꾼으로 아름답게 포장했다. 절망과 분노에 신과 싸워야만 했던 이유까지 갖춘 인간적인 존재로 그렸다. 천국과 지옥, 내세를 위해 살아가기 보다 환생을 믿고 400년을 찾아 헤맨 미래지향적 인물이다. 영화 속에서 블라드의 행동은 신성 모독으로 그려지고 불멸을 얻는다.
블라드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400년 동안 아내를 직접 찾아온 세상을 뒤지는 여행자다.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향수를 만드는 사업가이기도 했다. 강력한 페로몬 향수를 뿌려 아내가 자신을 찾아오도록 만든 능동적인 남자다.
최종 무대가 1989년 파리 만국 박람회인 이유도 납득된다. 이성과 감성, 과학과 인문학이 충돌하던 시대, 재회와 비극을 향한 화려한 피날레의 '빌드업'인 셈이다. 당시 파리는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맞은 박람회로 전 세계인이 모였다. 블라드의 심복인 마리아(마틸다 데 안젤리스)와 미나(조이 블루, 1인 2역)는 도시를 누비며 볼거리와 즐길 거리로 현혹된다.
▲영화 <드라큘라: 러브 테일>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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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인 이야기는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원작 속 드라큘라의 세 신부와 심복 렌필드를 마리아에 녹여 냈다. 집안일에 충실한 신하로 가고일이 등장하는데 당황스러운 반전으로 또다시 웃음을 준다. 뼈대는 살리면서 B급 호러 액션 로맨스로 비튼 위트가 의외의 웃음을 준다.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에 뜬금없는 유머가 무방비로 치고 들어올 때면 허탈한 웃음이 터진다. 톤만 잘 맞는다면 언제 들어올지 모를 개그 타이밍을 기다리는 재미로 이어질 수 있다.
뤽 베송 특유의 감각적인 비주얼을 잘 살렸다. 의상, 헤어, 스타일 등이 화려하고 고전적이다. 드라큘라의 성을 금빛과 구릿빛이 교차된 바로크 양식으로 설계해 눈이 바쁘다. 프랑스의 유서 깊은 건물에서 촬영해 현장감을 살렸다. 콩코르드 광장의 오텔 드 라 마린은 베르사유 장면과 결혼식장, 드라큘라의 파리 호텔 객실로 활용되었다. 인터컨티넨탈 파리 르 그랑의 오페라 볼룸은 화려한 무도회장, 파리 팔레 루아얄 정원에서 촬영된 장면만 안타깝게 야외 로케이션이 불발되어 스튜디오 촬영으로 갈음했다.
400년의 시간을 위한 분장
▲영화 <드라큘라: 러브 테일> 스틸컷 와이드 릴리즈㈜
캐릭터 특유의 색감을 살려 의상에 각자의 서사를 부여해 생동감이 크다. 엘리자베타와 드라큘라는 보라색, 정숙한 미나는 옅은 블루, 미나의 친구이자 '퇴폐미' 가득한 뱀파이어 마리아는 피를 상징하는 버건디를 중심으로 디자인되었다. 사제 역의 크리스토프 왈츠는 바이에른 출신 설정답게 19세기 말 전통 바이에른 양식 의상을 착용했다. 그가 지니고 다니는 뱀파이어 사냥 도구도 장인들의 수작업으로 제작되었다.
블라드 영주 역의 케일럽 랜드리 존스는 뤽 베송 감독과 <도그맨>에서 한번 호흡을 맞춘 바 있다. 뤽 베송 감독은 그에게 영감받아 드라큘라를 제안했으며, 특유의 낮은 목소리를 위해 케일럽 랜드리 존스가 특훈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400년의 시간의 더께를 외모로 표현하기 위해 28명의 분장팀과 200개의 특수 보철로 완성된 비주얼도 볼만하다. 젊어진 블라드의 오른쪽 뺨은 마치 아내를 그리워하다가 문신처럼 굳어진 눈물자국이 새겨져 있다.
블라드의 아내 엘리자베타와 미나 1인 2역을 연기한 조이 블루는 <그랑블루>로 뤽 베송과 호흡 맞춘 로잔나 아퀘트의 딸이다. <블링 링>, <곤조 걸> 이후 세 번째 영화로 퇴폐미와 정숙미를 한 번에 소화했다. 또한 뱀파이어를 쫓는 사제(반헬싱) 역에는 크리스토프 왈츠가 열연했다. 두 번의 아카데미 남우조연상답게 자신의 연기로 뚝심 있게 끌고 간다. 신의 대리자와 신의 배신자의 대립을 위한 선명한 구도로 일관한다.
원작을 파괴한 새로운 형식의 드라큘라가 탄생했지만 아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드라큘라>의 아성을 넘기기는 어렵겠다. 게리 올드만의 드라큘라와 위노나 라이더의 미나, 키아누 리브스의 조나단이 '레전드'다. 1990년대 감성과 에로틱함이 가미된 <드라큘라>의 아성을 뛰어넘을 영화는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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