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진정한 비극은 진실로 중한 것을 그에 전혀 근접하지 못한 이에게 도저히 쉽게 표현해 전할 수가 없다는 것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글 쓰는 이로 산다는 건 이처럼 실패할 밖에 없는 과제에 거듭 도전하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인식과 그를 변화하게 하는 중한 요소인 감각, 그리고 경험에 대해 말하려 한다.
세상 어떤 변화는 오로지 경험을 통해서만 얻어진다고. 그래서 그 경험을, 최소한 간접이라도 해보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단 하루 사지를 쓰지 못하고 휠체어에 올라 서울을 나다녀본 이가 일생을 휠체어와는 관련 없는 삶을 살아본 이와 전혀 다른 인식을 갖게 되듯이 말이다.
▲퍼펙트슛스틸컷
필름다빈
발달장애인 핸드볼 선수들의 이야기
이달 개봉하는 <퍼펙트슛>은 오규익 감독의 88분짜리 장편 다큐멘터리다. 다큐는 2023년 출범한 발달장애인 핸드볼 리그에 참가한 전국 10개 팀 중 몇 개 팀과 그 선수의 이야기다. 충북 청주 행복모아챌린저스와 주장 김생수가 중심으로, 경북 안동 슈팅스타와 경기 안양 SNP 드래곤즈 선수들의 모습도 함께 꾸려졌다.
올해로 4회를 맞은 발달장애인 핸드볼 리그는 발달장애인이 스포츠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삶 가운데 꿈을 키울 수 있는 한국서는 보기 드문 장이다. 스페셜올림픽 등 국제대회 정식종목이기도 해서 역량에 따라 국가대표가 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열려 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꿈조차 품기 어려운 척박한 현실 속에서 이와 같은 리그가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를 다큐가 얼마쯤 내보인다.
리그에 참가한 팀 소속 선수들이 처음부터 핸드볼을 했던 것은 아니다. 장애인이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이 워낙 없다 보니, 각 지자체에서 팀 창단과 함께 모집을 했을 당시 많은 지원자가 몰렸던 것이다. 그로부터 일상에서 별다른 낙이 없고 친구들과 교류하기도 쉽지 않았던 이들이 핸드볼이란 종목에 열의를 드러낸다. 누구는 남보다 재능이 있고, 또 누구는 그렇지 못한 것이 비장애인 스포츠와 마찬가지의 현실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각자가 저마다의 어려움과 대면하고 도전하며 극복하고 때로 실패하는 과정만큼은 평등하다 해도 좋겠다. 평등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장애인들에게 이와 같이 부딪치고 넘어지며 실패하고 이따금 성취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 발달장애인 핸드볼 리그와 창단된 팀의 존재가 얼마나 귀한지를 살펴볼 수 있다.
▲퍼펙트슛스틸컷
필름다빈
뛰어나지 않아도 좋은 영화일 수 있다
<퍼펙트슛>은 뛰어난 영화인가. 도저히 그렇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영화가 담고 있는 인물들이 어떤 기준으로 선별된 것인지, 또 이들을 비추는 방식엔 어떠한 의도와 계획이 있는지를 납득하기 어렵다. 영화 속 생수와 수일, 범준 등의 비중과 카메라가 이들을 비추는 태도며 방향성, 또 각 팀을 담는 정도 등이 제각각이어서 차라리 한 팀이나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게 나았겠다는 판단이다.
핸드볼이라는 스포츠 종목을 다루고 있음에도 경기를 어떻게 다큐 안에 담을지에 대한 기준 또한 서지 않았던 듯 보인다. 그렇다고 스포츠나 경기가 아닌 각 인물의 삶에 충실하게 돌입하느냐 하면 그 또한 아니다. 비장애인인 감독과 코치 등 지도자, 또 부모의 모습 또한 어디까지 비추고 어떻게 드러낼지 더 분명한 원칙과 지향이 있었어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퍼펙트슛>은 충분히 좋은 영화다. 이와 관련하여 대체 좋은 영화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시종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영화가 좋은 영화인가? 더 크고, 빠르고, 많은 자극을 주는 영화가 좋은 영화일까? 보기 전에 관객이 기대한 것을 충족하게 하는 영화가 좋은 영화인가? 전혀 기대하지 않은 경험을 제공하는 작품이 좋은 영화일까? 보기 전과 본 후의 관객이 달라지게 하는 영화가 좋은 영화인가? 여러모로 난잡하고 허술한 <퍼펙트슛>이 좋은 영화라면, 그것은 어째서인가?
▲퍼펙트슛스틸컷
필름다빈
영화가 지닌 힘에 대하여
어떤 영화는 힘을 지니고 있다. 힘이란 잘 쓰이기만 한다면 좋은 것이다. 현실을 바꿔낼 수 있는 것이 그렇지 못한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때로 그 힘은 영화 스스로 갖고 있기도 하고, 영화를 둘러싼 환경 덕택에 생겨나기도 한다. 한 영화가 지닌 힘, 곧 유효함이 어느 시대엔 있었다가 또 어느 시대엔 사라지는 것도 그래서겠다. <퍼펙트슛>이 지닌 유효함이 꼭 그러하다.
영화는 작품을 보는 관객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그를 달라지게 한다. 달라지게 한다는 건 영화를 보기 전과는 다른 무엇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때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걸 이해하게 해서일 수 있겠다. 또 때로는 감각하게 해서일 수도 있다. 일상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것들, 사람과 사건과 감정 따위를 간접적으로나마 마주하는 과정에서 전에 느낀 적 없는 감각이 깨어나기도 하는 것이다. 그로부터 관객은 전과는 다른 감상을 얻는다. 인식의 지평이 열리고 방구석에서는 닿은 적 없는 세계로 비로소 나아가게 된다. 전에는 나의 것이 아니었던 영토가 내 세계 안으로 들어오면 전에는 옳지 않았던 것이 옳은 것이 되고 그 반대 또한 가능해진다. 그리하여 세상은 완성된 것일 수 없다. 닫힌 세계일 수 없다.
장애는 많은 이에게 감각되지 않는다. 한국사회에선 더욱 그러하다. 일상 가운데 장애인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통상의 한국인에겐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장애인의 현실이, 그 감각이 비장애인에겐 현실 아닌 것이고 감각되지 않는 것이다. 서로 같은 세상에 살면서도 서로 다른 세계를 산다.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판단을 하면서도 제 판단의 근거가 되는 인식 안에 결함과 결핍이 있단 걸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장애는 누구에게 귀속되는 것인가.
▲퍼펙트슛포스터필름다빈
더 많이, 더 자주 장애를 말해야 한다
한국사회의 장애인은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다. 각종 통계에서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가까운 친구나 이웃이 없고, 대화상대 또한 없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부모의 돌봄이 사라진 장애인이 그대로 사회에서 조력을 받을 수 있는 통로를 상실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비장애인의 시선에서 사라지고, 사회로부터 멀어진 장애인의 존재는 그대로 비장애인의 장애에 대한 인식이 결핍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장애인이 영향을 받을 밖에 없는 사회의 정책과 제도에 있어서도 그에 대한 사려 깊은 시선이 배제되기 십상이다. 이는 그대로 사회가 다양성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잃는 이유로 이어진다. 요컨대 공동체의 약화다.
'씨네만세'는 지난 해 스무 편 가량의 장애 관련 기사를 다루었다. 장애단체와 협력해 낸 기사를 포함해 최대한 다양한 각도에서 매체가 장애를 다루는 방식이며 장애인이 영화판에서 겪는 어려움 등을 조명하고자 했다. 영화산업 안에서, 심지어는 독립영화계 안에서도 장애인은 여러 층위의 어려움을 마주한다. 그를 극복하지 못하여 우리는 수많은 장애인이 영화감독으로, 스태프로, 배우로, 심지어는 관객으로서도 존재하지 못하는 상황을 겪고 있다.
장애와 관련한 담론을 꺼내는 것, 장애와 관련한 이야기를 드러내어 나누는 것은 현재 장애와 관한 이야기가 얼마 되지 않는 한국 상황에서 그 자체로 이롭다. 최소한의 간접경험이 이전엔 감각하지 못한, 그래서 인식하지 못하게 했던 어떤 삶의 모양을 관객인 우리 안에 들여다 놓을 것이다. 그로부터 한국사회 공동체는 장애를 보다 폭넓게 이해할 수 있을 테다. 나는 그것이 마땅한 나아감이라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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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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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핸드볼 다룬 다큐, 낯선 감각을 깨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