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주 베이시스트 존 패티투치의 새로운 발견

[공연 리뷰] 존 패티투치 트리오 내한 공연

 존 패티투치 트리오 내한 공연
존 패티투치 트리오 내한 공연염동교

최근 대중음악 평론가 박준흠이 지은 <김광석, 나의 노래>를 읽다가 "김광석이 GRP(지알피)를 즐겨 들었다"라는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했다. 취향이라 마음가는 대로라지만 비교적 한국적인 포크 록을 들려줬던 김광석을 떠올리니 사뭇 이질감이 들었던 것. 상대적으로 재즈를 덜 다루는 대중음악 웹진 IZM의 정우식 필자도 "GRP를 추억하며"란 특집을 온라인 지면에 실은 바 있다.

"레이블 이름을 거론하면서까지 즐겨 듣는다라, 얼마나 대단하길래" 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2024년 브라질 대중음악의 거장 이반 린스, 굴지의 재즈 퓨전 기타리스트 리 릿나워와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협연한 피아니스트 데이브 그루신. 편안한 분위기의 컨템포러리 재즈와 영화음악을 경유하며 60년 경력을 쌓은 그와 사운드 엔지니어 래리 로전이 의기투합해 1976년 설립한 뮤직 레이블이 바로 GRP다.

어쿠스틱 악기 위주의 기존 재즈에 전기기타와 신시사이저 등 록과 펑크의 색채를 주입한 재즈 퓨전. 마일스 데이비스와 같은 거장들도 거스르기 어려웠던 이 물결에 발맞추어 유수의 재즈 퓨전 앨범을 제작했던 GRP는 접근성 높고 팝적인 "스무드 재즈"에도 일가견 있었다. 많은 이들에게 비교적 부담 없이 듣는 입문용 재즈로 기능했지만 작품성 자체로 뛰어난 발매작도 존재했다.

드러머 브라이언 블레이드, 색소포니스트 크리스 포터와 함께 트리오 구성으로 2026년 8월 27일 연세대학교 백주념기념관에서 내한 공연을 펼친 베이시스트 존 패티투치는 "GRP 대표 아티스트"라고 할 만큼 여러 작품에 인장을 새겼다. < 온 더 코너(On the Corner) >, 페루계 미국인 드러머 알렉스 아쿠냐가 참여한 1993년 음반 < 어나더 월드(Another World) > 등 GRP에서 경력의 교두보를 세웠다. 2023년 작고한 거장 피아니스트 칙 코리아의 "칙 코리아 일렉트릭 밴드"에도 참여, 1980년대 재즈 퓨전의 매력을 전파했다.

패티투치의 스펙트럼이 재즈 퓨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통 재즈를 뜻하는 스트레이트 어헤드와 1950년대 밥이 시간을 거쳐 다양한 색채로 분화한 포스트 밥 등 여러 조류를 체득, 현시대 베이스 거장의 지위를 굳혔다. 브라이언 블레이드와 크리스 포터의 존 패티투치 트리오는 2025년에만 < 라이브 인 이탈리(Live in Italy >와 < 스피릿 폴(Spirit Fall) > 두 장의 음반을 내놓았으며 이 중 후자가 이번 27일 연대 공연의 골자가 됐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이라 했던가. 추모와 헌정의 무대가 꾸려졌다. 올해 3월 작고한 "색소폰 거인(Saxophone Collosus)" 소니 롤린스의 '윗아웃 어 송(Without A Song)'.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한 작곡가 빈센트 유만스가 1929년 지은 이 곡은 소니의 1962년 작 < 더 브릿지(The Bridge) >에 실렸다. 침체기를 겪던 롤린스가 뉴욕 윌리엄스브릿지에서 절치부심 수련한 후 내놓은 이 음반은 커리어의 변곡점이자 구심점으로 꼽힌다. 베테랑 색소폰 연주자 크리스 포터는 소니와는 호방한 음색에 비해 섬세한 가락으로 '윗아웃 어 송(Without A Song)'을 오마주했다.

 베이스 연주자 존 패티투치
베이스 연주자 존 패티투치염동교

소니를 향한 존경심은 정규 공연 목록 끝자락에 다시금 이어졌다. 소니의 1958년 작 < 프리덤 스위트(Freedom Suite) >의 표제곡 '더 프리덤 스위트(The Freedom Suite)'를 커버한 것. 요절한 천재 트럼페터 클리퍼드 브라운과 파트너십을 이뤄 수작을 배출했던 불세출의 드러머 맥스 로치, 후배 연주자 크리스 맥브라이드가 "비밥 시대의 가장 중요한 베이시스트"로 언급한 오스카 페티포드가 트리오 멤버였다.

이 작품은 < 스피릿 폴(Spirit Fall) >과 마찬가지로 코드리스 트리오(Chordless Trio)로 녹음되었는데, 기타와 피아노처럼 코드를 누를 수 있는 악기의 부재를 뜻한다. 특정 코드에 구애받지 않은 채 자유로운 솔로가 가능하며, 종종 베이스가 화성의 골격을 잡아주는 이 코드리스 구성은 보편적이라고 말하긴 어려우나 소니 롤린스나 존 패티투치의 탁월한 역량이 도전과 실험을 성공으로 이끈 것. 블레이드의 리듬 순풍을 탄 포터는 유려한 솔로를 펼쳐나갔으며 리더 패티투치는 악곡 설계자의 역할을 자임했다.

음반의 표제곡인 '스피릿 폴(Spirit Fall)'에서 패티투치는 6현 일렉트릭 베이스를 쥐었다. 기타를 연주하듯 세밀한 멜로디를 뽑아낸 그는 다음 곡인 '씽크 패스트(Think Fast)'에서 역동적이고 신속한 연주를 들려줬는데, 브루클린의 거리에서 캐치볼 하던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곡이라고. 블레이드의 타악에서 왠지 모르게 아프리칸 리듬이 들리는 듯했다.

 존 패티투치 트리오 내한 공연
존 패티투치 트리오 내한 공연염동교

모던 재즈 역사에 남을 작곡가이자 팔색조 같은 음악색을 지닌 색소포니스트 웨인 쇼터는 패티투치, 블레이드와 각별하다. 두 사람이 2000년대 초반부터 약 20년간 활동한 웨인 쇼터 쿼텟의 멤버였던 것. 쿼텟은 네 사람으로 이뤄진 재즈 집단을 의미하는데, 단어 앞에 붙은 이름이 그 집단의 리더를 의미한다.

1967년 발매된 포스트밥 명반 < 아담즈 애플(Adam's Apple >에 실린 '풋프린츠(Footprints)'를 제목으로 차용한 2002년도 라이브 앨범 < 풋프린츠 라이브!(Footprints Live!) >와 2006년 그래미 "베스트 재즈 인스트루멘틀 앨범"을 차지한 2005년 작 < 비욘드 더 사운드 배리어(Beyond the Sound Barrier) >등 웨인 쇼터 쿼텟의 결실은 풍요로웠다. 블레이드가 열여섯 나이에 레코드 스토어에서 직접 구매했다는 쇼터의 1965년 작 < 주주(Juju) > 수록곡 '하우스 오브 제이드(House Of Jade)'로 2023년 별세한 재즈사 거목을 기렸다.

십수년 전 접했던 GRP 시절의 퓨전 계열과 < 스피릿 폴(Spirit Fall) >은 작풍에 있어서 무척 달랐다. 귀에 착착 달라붙는 그루브는 성찰적이며 무릇 숭고하기까지 한 연주로 변모했다. 여전히 패티투치는 일렉트릭 베이스와 더블 베이스를 혼용하며 퍼포먼스에 다채로운 스타일을 녹여내지만 이번 공연은 개인적으로 패티투치의 새로운 발견이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과거와 다른 의미로 와닿았다. 오랜 시간 실력을 유지하며 켜켜이 세계관까지 쌓아온 예술가의 미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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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 염동교라고 합니다. 대중음악을 비롯해 영화와 연극, 미술 등 다양한 문화 예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