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제임스 완과 리 워넬이 시작한 <인시디어스> 프랜차이즈는 전 세계적으로 7억 40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둔 현대 하우스 호러의 흥행작 중 하나이다. 시리즈 1편부터 5편까지 핵심 세계관은 이승과 저승 사이의 영적 림보인 '더 먼 곳(The Further)'에서 찾을 수 있다. 기존 시리즈가 산 자의 유체이탈과 빙의라는 방식으로 현실과 '더 먼 곳'의 경계를 오갔다면, 이번 영화는 그 경계를 한 단계 더 허문다. 주인공은 그곳으로 들어갈 뿐 아니라 그곳의 존재를 현실 세계로 데리고 나올 수 있다.
제이콥 체이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여섯 번째 신작 <인시디어스: 그들이 넘어왔다(Insidious: Out of the Further)>의 변화다. 이제 공포의 주체들은 '더 먼 곳'에 머물지 않고 현실 세계로 역류한다. 영화는 인간이 어디로 넘어가는가가 아니라 사악한 존재들이 어떻게 우리 일상으로 넘어오는가를 묻는다.
체이스 감독은 해외 언론과 인터뷰에서 첫 아이를 기다리며 아버지가 되는 데 깊은 두려움을 느꼈고, 자신이 아이를 잘못 키우거나 자신이 성장하면서 경험한 문제를 아이가 반복할 가능성을 고민했던 경험에서 이야기를 출발시켰다고 밝혔다. 이러한 연출 의도는 <인시디어스: 그들이 넘어왔다>를 점프 스케어(Jump Scare) 중심의 호러에 머물게 하지 않고, 세대 간 트라우마와 모성애, 그리고 신학적·철학적 질문이 얽힌 호러를 표방하게 한다.
반복과 차이가 만드는 스토리텔링
이 영화의 서사를 받치는 가장 강력한 기둥은 3대에 걸쳐 이어지는 두 번의 모녀 관계다.
1999년의 프롤로그는 젬마(어밀리아 이브)가 유년 시절 어머니 잉그리드(로라 고든)의 비극적인 죽음을 목격하는 순간으로 시작한다. 악령의 침습으로 정신이 피폐해진 잉그리드는 어린 딸이 보는 앞에서 참혹하게 목숨을 끊어 고통의 기억을 남긴다.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된 젬마는 치위생사란 직업으로 비극의 장소에서 계속 거주하고 있다. 자신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홀로 딸 마야(아일랜드 오스틴)를 양육하며 살아간다.
잉그리드와 젬마 사이에 형성된 첫 번째 모녀 관계는, 악령의 침범에 굴복하고 트라우마를 끊어내지 못한 채 파멸로 치달은 비극적 유산이 된다. 젬마에서 마야로 이어지는 두 번째 모녀 관계는 유전되는 저주와 유년의 상처가 되풀이될 위기에 처한 현재의 사투다. 영화는 3대에 걸친 혈연의 사슬을 통해 저주의 반복을 제시한다. 외할머니 잉그리드가 겪은 환영과 정신적 잠식은 그대로 엄마 젬마에게 되풀이되며, 그 여파는 어린 딸 마야에게까지 미친다. 동일한 공간에서 동일한 혈통의 여성이 동일한 악령의 표적이 된다는 구조는 고전적 운명론을 상기시킨다.
▲'인시디어스 그들이 넘어왔다' 스틸사진
소니픽처스코리아
이 영화의 진정한 서사적 동력은 반복이 아닌 차이에서 발생한다. 질 들뢰즈를 인용하면, 반복은 동일한 것의 되풀이가 아니라, 언제나 새로운 차이를 생산하는 역동적 과정이다. 영원히 되풀이되는 것처럼 보이는 저주의 순환에 모종의 차이가 개입할 때 운명의 궤적이 틀어진다. 반복 속에 출현하는 차이가 동일성의 순환을 교란한다는 명제가 영화에도 관철된다.
젬마는 어머니의 비극을 수동적으로 되풀이하는 희생자에 머물지 않는다. 영매 엘리스(린 샤예)와 클레어(메이지 리차드슨 셀러스)의 조력을 얻어 자신이 '더 먼 곳'의 존재를 이승으로 불러들이는 '운반자'이자 통로임을 깨달은 젬마는, 딸 마야를 지켜내겠다는 결연한 모성애를 바탕으로 운명적 저주에 맞선다. 첫 번째 모녀 관계가 굴복과 상실이었다면, 두 번째 모녀 관계는 수용과 저항이다. 호러의 상업적 소구점 역시 모성애가 발휘되는 절박한 사투의 순간에 집약된다.
문손잡이: 기억과 사건의 재귀성
<인시디어스: 그들이 넘어왔다>에서 건축적·물리적 상징으로 가장 돋보이는 도구는 문손잡이다. 닉 바셋 프로덕션 디자이너가 설계한 젬마의 집은 과거와 현재, 현실과 '더 먼 곳'이 뒤엉켜 있는 일종의 기억의 요새다. 이 집에서 문과 문손잡이는 차원과 시공간을 가르는 경계선이 된다. 문을 굳게 잠근 손잡이가 차단된 과거의 기억과 억압된 트라우마, 그리고 그 그늘 속에 잠복한 악령의 존재를 시각화한다면, 천천히 돌아가는 문손잡이는 현실과 영적 세계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통로의 열림을 상징한다. 젬마가 어린 시절 열지 못한, 혹은 억지로 잠가 두어야 했던 그 방의 손잡이는 봉인된 무의식의 은유이다.
영화가 전개되며 나오는, 250개 쿠션으로 만들어진 미로 같은 '베개 요새' 시퀀스나 타투 숍의 대칭 거울 연출은 젬마의 내부 심리와 외부 현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극화한 장면이다. 젬마가 차원의 경계에서 문손잡이를 잡고 돌리는 행위는 사건과 기억의 원환(루프)을 완성하는 열쇠다.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과거의 시작점과, 현재 딸을 구하기 위해 어둠의 통로를 닫아야 하는 종착점이 문손잡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하나의 루프로 맞물린다. 문손잡이를 잡으며 젬마는 자신이 도망친 과거의 기억과 직접 대면한다. 루프는 기억의 진실을 파악하며 완성된다. 진실의 이해는 저주의 순환을 끊어낼 강력한 무기가 된다.
육체적 현현과 부활
영화의 흥미로운 사유거리는 악령 사이러스(샘 스프루엘)를 비롯한 죽은 자들이 현세로 돌아오려는 방식, 즉 부활의 본질에 있다.
고대 기독교 사상 중 하나인 영지주의는 정신과 육체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었다. 영지주의 관점에서 육체는 영혼을 가두는 추악한 감옥에 불과하며, 구원이란 물질 세계를 벗어나 영적인 신성으로 귀환하는 탈육체화를 의미했다. 따라서 영지주의자에게 육체의 부활이란 수치스러운 퇴영에 불과했다. <인시디어스: 그들이 넘어왔다>가 그리는 사자들의 부활은 영지주의의 자유와 완벽히 반대편에 선다.
'더 먼 곳'이라는 비물질적·영적 림보에 갇혀 있던 죽은 자들은 영혼의 구원이 아니라 물리적 육체를 끊임없이 갈망하며, 젬마라는 운반자의 몸을 매개로 차안에서 육체적 현현, 즉 몸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을 도모한다. 육체를 영혼의 감옥으로 보던 영지주의를 배격하고, 지상에서 다시 실체를 얻고자 하는 기독교식으론 신성모독적 육화를 지향한다.
▲' 인시디어스 그들이 넘어왔다' 포스소니픽처스코리아
몸이 다시 사는 것에 대한 갈망은 영화 속에서 기괴한 유머를 가미한 바디 호러로 나타난다. 영에 불과했던 망자들이 실체적인 물질을 입고 현실을 침범한다는 "현실 침투형 호러"가 연출 방향이 된다. 육체가 지닌 원초적 질감과 공포를 극대화함으로써 영화는 부활이라는 종교적 개념을 장르적으로 비틀어낸다.
전체적으로 <인시디어스: 그들이 넘어왔다>가 인시디어스 프랜차이즈의 올드팬과 입문자 모두를 만족시킬지는 물음표일 수 있다. 시리즈를 쭉 관람한 관객에게도 이번 작품이 참신하고 흥미로울지는 논의하지 않기로 한다. 다만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이 시리즈를 접하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 자체로 감상할 만한 하우스 호러의 하나는 되지 싶다.
저주와 트라우마의 원환을 부수는 힘이 영적 퇴마술이 아닌, 딸의 손을 놓지 않으려는 모성애와 현실적 유대감에서 나온다는 데서 이 영화의 특징을 찾을 수 있다. 문손잡이를 사이에 두고 과거와 현재, 이승과 저승이 격돌하는 순간이 모녀가 손을 맞잡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하우스 호러는 가족영화가 된다. 해피엔딩의 가족영화와 호러 장르가 섞이지 말란 법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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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영화 등 예술을 평론하고, 다음 세상을 사유한다.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과 세계문학과 인문학 고전을 함께 읽고 대화한다. 나이 들어 신학을 공부했다. 사회적으로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 의제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ESG연구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영화평론가협회/국제영화비평가연맹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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