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족 너머의 아이들…아서 밀러가 80년을 건너 던진 질문

[리뷰] 극단 백수광부 <다 내 아이들>

 극단 백수광부 〈다 내 아이들〉 공연 장면
극단 백수광부 〈다 내 아이들〉 공연 장면극단백수광부제공ⓒ윤헌태

"가족을 위해서였다."

아서 밀러의 동명 원작에서 가장 무서운 말을 꼽으라면 이것이다. 악의를 품고 저지른 범죄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은 훨씬 단단하다. 극단 백수광부의 <다 내 아이들>(지난 8월 21일~30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은 바로 그 익숙한 명분을 두 시간여 동안 집요하게 흔든다. 가족은 어디까지 사랑의 이름이 될 수 있고, 어디서부터 책임을 회피하는 울타리가 되는가.

2025년 선돌극장 초연으로 서울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제4회 서울예술상 연극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이 작품은 백수광부 창단 30주년을 맞아 다시 무대에 올랐다. 이번 공연 역시 전 회차가 매진될 정도로 대학로의 반응은 뜨거웠다.

서울예술상 심사평은 "과감한 해체나 번안 대신 정통 사실주의 연극의 힘에 집중하고, 배우들의 앙상블을 통해 전쟁과 자본 축적, 개인의 윤리적 책임을 오늘의 문제로 끌어낸" 점을 높이 평가했다. 실제 공연 후기에서도 가장 자주 반복되는 단어는 화려한 장치보다는 '배우', '앙상블', '밀도'가 자주 등장한다.

이성열 연출의 무대는 친절하게 많은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어떤 이는 "빈 무대, 채우는 배우"라고 표현했고, 또 다른 관람기는 "길게 금이 간 집의 벽과 중앙 공간이 가족의 사적 공간인 동시에 이웃이 오가는 광장처럼 작동한다"고 짚었다. 볼거리가 적어질수록 관객의 시선은 배우의 얼굴과 목소리, 인물 사이에 흐르는 미세한 긴장으로 옮겨간다. 이 공연의 사실주의는 실제 집을 사실적으로 복원하지 않고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믿고, 의심하고, 무너지는 과정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극단 백수광부 〈다 내 아이들〉 공연 장면
극단 백수광부 〈다 내 아이들〉 공연 장면극단백수광부제공ⓒ윤헌태

그 중심에 조 켈러 역의 박완규가 눈에 띈다. 현장에서도 가장 강한 호평이 집중되는 배우 역시 박완규였다. 조를 탐욕스러운 악인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끝까지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한 가장'이라는 자기 확신을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실이 밝혀진 뒤의 낙차가 크다.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무너지는 사람이 보인다"는 후기도, 대다수의 관객이 마지막에 눈물을 흘리며 일그러지는 박완규의 얼굴을 공연의 명장면으로 꼽은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조의 섬뜩함은 자신을 악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데 있다. 전쟁 중 결함이 있는 전투기 부품을 출하해 21명의 젊은이가 죽었지만 그는 자신의 공장과 가족, 아들에게 물려줄 미래를 지켜야 했다고 항변한다. "전쟁도 돈, 평화도 돈"이며 자신만 감옥에 가야 한다면 나라의 절반이 감옥에 가야 한다는 논리까지 나아간다. 이 말은 궤변이지만 완전히 낯선 궤변은 아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라는 변명 속에서 개인의 책임은 언제든 구조와 관행 뒤로 숨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길해연의 케이트 켈러는 그 곁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가족을 지킨다. 실종된 아들 래리가 살아 있다고 믿는 그의 집착은 단순한 모성의 슬픔이 아니다. 래리가 죽었다고 인정하는 순간 남편 조의 범죄와 아들의 죽음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길해연은 사랑과 불안, 신경질적인 완강함을 한 몸에 품고 있다가 래리의 마지막 편지 앞에서 결국 무너진다. 실제 관람기에서도 편지를 마주한 케이트의 오열은 박완규의 마지막 장면과 함께 공연의 정서적 절정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이 작품의 윤리를 실질적으로 끌고 가는 사람은 큰아들 크리스 켈러다. 권다솔은 아버지를 심판하는 정의로운 청년으로 인물을 단순화하지 않는다. 크리스는 아버지를 누구보다 사랑하며 동시에 그 사랑 때문에 진실 앞에서 고통받는다. 권다솔이 격정을 처음부터 쏟아내기보다 극이 진행될수록 인물이 내부에서 잠식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관람평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유다. 부드러운 톤 속에서 사랑과 혐오가 동시에 자라나는 크리스의 변화가 조의 몰락과 맞물리면서 이 공연의 후반부를 밀어붙인다.

무엇보다 크리스에게는 전쟁의 기억이 있다. 전우들이 자신에게 마지막 남은 마른 양말까지 내어주고 서로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내놓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인간이 인간에게 가지는 책임'을 배웠다. 그런데 전쟁에서 돌아와 보니 사람들은 새 자동차와 냉장고를 사고 은행 계좌를 만들며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처럼 살아간다. 크리스가 견디지 못하는 것은 아버지 한 사람의 범죄만이 아니다. 누군가의 희생 위에서 얻은 평화와 부를 아무런 부채감 없이 향유 하는 세계 그 자체다.

 극단 백수광부 〈다 내 아이들〉 공연 장면
극단 백수광부 〈다 내 아이들〉 공연 장면극단백수광부제공ⓒ윤헌태

내 가족'에서 '다 내 아이들'로 넓어지는 책임

이 지점에서 <다 내 아이들>은 단순한 가족 비극을 넘어선다. 아버지가 믿는 것은 '내 가족을 위한 책임'이고 아들이 믿는 것은 '타인에게까지 확장되는 책임'이다. 가족을 지키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조의 신념과 "아버진 사람들하고 같이 안 살아요?"라는 크리스의 절규가 맞부딪칠 때, 무대 위 가족의 다툼은 곧 사회의 윤리에 대한 논쟁이 된다. 누가 더 가족을 사랑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책임져야 할 '우리'의 범위를 어디까지 그을 것인가가 문제다.

제목을 원작의 <All My Sons>에서 '모두가 나의 아들'이 아니라 <다 내 아이들>로 옮긴 선택도 흥미롭다. '아들들'을 '아이들'로 바꾸면서 전쟁에서 죽은 21명의 군인은 특정한 시대의 병사이기 전에 누군가의 아이로 다가온다. 래리의 마지막 편지를 읽고서야 조는 자신에게 크리스와 래리만이 아들이었던 반면, 래리에게는 죽어간 젊은이들 모두가 같은 공동체 안에 있었음을 깨닫는다. "다 내 아이들이 맞는 것 같다"는 뒤늦은 깨달음은 제목이 곧 작품의 윤리라는 사실을 확인시킨다.

이성열 연출이 핼러윈을 작품 속 시간으로 끌어들인 것도 이러한 '아이들의 죽음'을 오늘의 기억과 만나게 하기 위해서다. 실제 관람기에는 이태원과 맹골수도를 직접 환기하는 장치가 등장한다고 기록돼 있다. 죽은 자가 돌아오는 핼러윈, 실종된 래리를 기다리는 어머니, 책임이 완전히 규명되지 않은 채 남겨진 죽음이 한 무대 위에서 겹친다. 그렇기에 1947년의 미국 이야기가 2026년 서울의 객석에서 의외로 가까운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만 바로 이 현재화가 이 공연의 강점인 동시에 가장 논쟁적인 대목이다. 서울문화재단의 초연 비평은 사회적 참사를 강하게 환기할수록 원작을 떠받치는 핵심 조건인 '전쟁'이 약화될 위험을 지적했다. 조는 단순히 안전을 무시한 기업인이 아니라 전쟁을 통해 부를 축적한 수혜자다. 이 조건이 흐려지면 조는 우리가 너무 쉽게 심판할 수 있는 악인이 되고, 전쟁과 자본, 평범한 시민들의 안락함까지 함께 묻는 아서 밀러의 더 불편한 질문은 오히려 희석될 수 있다.

이 비판은 공연의 현재성을 부정한다기보다 오히려 한 단계 더 깊은 질문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전쟁'은 무엇인가. 기업을 살리기 위해 안전을 미루는 관행, 조직을 지키기 위해 진실을 덮는 선택, 내 편과 내 집단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위험을 외면하는 일은 조의 세계와 얼마나 다른가. 80년 된 고전이 지금 살아 있으려면 과거의 사건을 오늘의 참사와 일대일로 연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조 켈러를 만들어내는 오늘의 구조가 무엇인지까지 물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극단 백수광부의 <다 내 아이들>은 화려한 재해석보다 배우와 텍스트의 힘으로 승부한다. 사건의 진실을 양파 껍질처럼 벗겨가는 아서 밀러의 극작술, 그것을 서두르지 않고 밀어가는 이성열의 연출, 박완규와 길해연을 중심으로 권다솔·박희정 등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긴장이 130분을 채운다. 서울예술상 심사위원들이 '정통 사실주의 연극의 힘'이라고 표현한 것이 결국 이 공연의 가장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새롭다는 이유로 고전을 해체하는 대신, 잘 쓰인 희곡과 잘 훈련된 배우가 얼마나 강력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극단 백수광부 〈다 내 아이들〉 공연 장면
극단 백수광부 〈다 내 아이들〉 공연 장면극단백수광부제공ⓒ윤헌태
연극 백수광부 서울예술상 아르코예술극장소극장 이성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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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글을 써왔다. 월간지<문화+서울>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신문 필진(2016~2023)으로 취재와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전시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만나 이아기를 전하며, '서울문화투데이'와 '더프리뷰' 등 매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