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수 없는 집, 교차로에 선 가족

[넘버링 무비 553] EBS 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삼거리 교차로에서>

 EBS 국제다큐영화제 2026 상영작 <삼거리 교차로에서>
EBS 국제다큐영화제 2026 상영작 <삼거리 교차로에서>EBS 국제다큐영화제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15미터 높이에 달하는 쓰나미가 원전을 덮치며 훗날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라고 불리는 거대한 재앙이 시작된다. 변전 설비의 침수로 인한 정전으로 냉각 기능을 상실한 원자로는 결국 폭발하며 태평양 일대를 방사능으로 오염 시켰다. 이후 후쿠시마 일대를 다룬 수많은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졌다. 쓰나미가 지나간 자리를 조명한 이도 있었고, 원전 사고 당시 도쿄전력의 은폐와 사실을 파헤치기 위한 작품도 있었다. 사고가 남긴 방사능의 영향과 지역 폐쇄 및 강제 이주의 현실도 주요 소재였다.

야마다 토루 감독 역시 사고 직후부터 후쿠시마에서 다큐멘터리 작업을 이어온 인물이다. 하지만 이번 작업 <삼거리 교차로에서>는 이전에 다뤄졌던 맥락과는 조금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재난이 일어난 장소가 아닌, 그 여파로 거처를 옮겨야 했던 이들.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을 잊을 수 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고자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 사회적 관심이 줄어든 현재에도 여전히 이재민이자 피난민으로서 삶 전체가 달라져 버린 이들이다.

02.
"우리는 정말 목숨을 걸고 그 집을 지었어요."

후쿠시마 제1 원전 사고로 자신의 집을 떠나야 했던 이들은 약 47만 명 이상이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후쿠시마현에 위치한 오쿠마 지역은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 중 하나다. 작품의 중심에 서 있는 '데카마사'의 모친인 '데쓰'씨는 1964년까지 오쿠마에서 나미에로 이주해 인쇄업을 시작하며 가족을 건사했다. 오쿠마가 고향인 셈이다. 원전 사고 이후 가게는 문을 닫았고, 현재 살고 있는 이와키시의 공영주택으로 옮겨와 아내인 '시게코'와 세 사람이 함께 생활을 시작했다.

촬영 당시 99세였던 그는 인지기능이 약해지면서도 자신이 나고 자란 그 지역을 선명히 기억한다. 그리고 반복해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을 내비친다. 하지만 데쓰씨가 말하는 과거에는 실제 기억과 다른 기억이 섞여 있다. 원전과 원폭을 혼동하기도 하고, 자신이 읽었던 이야기와 실제 경험을 뒤섞어 말하기도 한다. 사고 이후 가족이 여러 장소를 전전하는 동안에 그 정도는 더욱 심해졌다. 아들인 타케마사가 나미에의 집으로부터 오래된 불단을 가져온 뒤에 잠시 현실 인식이 또렷해지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공간에 대한 그의 마음은 쉽게 포기되지 않는다.

 EBS 국제다큐영화제 2026 상영작 <삼거리 교차로에서>
EBS 국제다큐영화제 2026 상영작 <삼거리 교차로에서>EBS 국제다큐영화제

03.
노모인 데쓰씨의 모습이 사라져 버린 공간의 의미를 불러일으킨다면, 부부인 타케마사와 시게코의 관계는 성 역할 및 정체성의 변화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실제로 이들 가정에서 실질적인 행동을 도맡아 하는 것은 아내 시게코다. 집안일과 시어머니의 간병은 물론, 원전 사고 이후 요구되는 여러 행정 절차와 보상 관련 업무까지 모두 그의 몫이다. 나미에의 집을 철거하기 전 가족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아들은 그 사실을 직접 지적하며 아버지 타케마사를 탓하기도 한다.

늙어가는 어머니를 돌보는 일 또한 아들 타케마사가 아닌 며느리 시게코다. 어머니와 아들이라는 관계, 서로 다른 성별이라는 이유를 들며 아들은 목욕과 화장실 사용에 도움이 필요해진 어머니의 돌봄을 어려워한다. 이런 모든 상황에서 한 발 떨어져 있으면서도 집을 정리하거나 가족이 모인 공적인 자리에서는 여전히 집안의 대표처럼 나서는 남자의 모습. 사회가 오랜 시간 만들어왔던, 또 한 가정이 유지해 왔던 '가장'이라는 역할과 그에 대한 개인의 정체성이 변화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재난은 이 가족으로부터 삶의 기반을 빼앗은 거대한 사건이자 폭력이었지만, 한 편으로는 너무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져 왔던 역할을 강제로 중단시키는 일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04.
"나미에의 이 집은 오랫동안 우리 곁을 지켜 줬지만, 오늘 모두의 도움을 받아 정식으로 작별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보자면, 이 영화에서 '집'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실제로 사라져 버린 건물과 돌아갈 수 없는 공간이다. 엄마의 오래된 고향과 가족이 나고 자란 나미에의 집은 모두 원전 이후 정상적인 공간이 아닌 게 되어버렸고, 결국 출입할 수 없게 되거나 철거되고 만다.

또 다른 하나는 그 안에서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전통적인 의미의 질서다. 어머니와 아들, 남편과 아내,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관계는 생활이 기반이 사라지고 난 뒤에도 여전히 유지되지만, 재난은 그 안에서 각자가 어떤 모습으로 공동체를 유지해 왔는지 더 노골적이고 뚜렷하게 드러나도록 만들었다. 오랜 가업 속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듯했던 일종의 불균형이다.

실제로 남편과 시어머니, 그리고 며느리라는 명확한 관계 안에서 서열적으로 가족을 구분해 왔던 것에 익숙했던 아내 시게코는 사고와 피난 이후 달라진다. 시어머니를 '테츠짱', 남편을 '아버지'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상대를 가족 안에서 주어진 직위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성격이 다른 한 개인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EBS 국제다큐영화제 2026 상영작 <삼거리 교차로에서>
EBS 국제다큐영화제 2026 상영작 <삼거리 교차로에서>EBS 국제다큐영화제

05.
"어머님 고향이 이렇게 변했어요."

영화의 타이틀인 삼거리 교차로는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다. 엄마의 고향인 오쿠마에 위치한 곳으로 가족이 나미에 쪽으로 이동할 때 지나게 된다. 세 갈래 길 가운데 하나는 이들이 여러 차례 오갔던 나미에 방향으로 이어지고, 다른 방향은 재개발이 진행되는 지역으로 이어지며, 마지막 하나의 길은 원전이 있는 해안 쪽을 향해 있지만 여전히 통행할 수 없는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 세 갈래 길은 극 중에 놓인 세 인물 아들과 어머니, 그리고 며느리의 현재와도 닮아 있다. 기억이 흐려질수록 오히려 자신이 태어난 장소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할머니 데쓰와, 전통적인 의미의 집과 가장의 위치가 희미해져 버렸지만 본능적으로 가장의 자리를 움켜쥔 아들 타케마사. 그리고 동일한 상실 속에서도 이전과 다른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고 있는 며느리 시게코까지다. 이들은 같은 공간 속에서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뻗은 삼거리 교차로처럼 존재하는 듯 보인다. 같은 사건 아래에 놓여 있지만 그 사건이 각자의 삶에서 갖게 되는 의미는 다르다.

06.
어떤 방식으로든 이들 가족은, 아니 조금 더 넓게는 비슷한 사고로 터전을 떠나야 했던 모든 이들은 복구를 시도한다. 타케마사 가족에게는 사고 이후 겪었던 여러 번의 이동과 반복해서 이야기했던 가족 내의 역할 변화 같은 것이 해당될 것이다. 그렇게 보자면,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또 한 번의 이동과 새로운 집의 건축은 여전히 과정에 불과하다. 솔직히 말하면, 이들이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그 과정이 매듭지어질 것이라고도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이미 삶은 많은 변화를 경험하며 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자면, 재난 이후의 삶은 할머니가 그렇게 바라던 것과 달리 그렇지 않았던 때로 돌아가는 여정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여러 방향으로 갈라졌다가 다시 만나고, 또 어떤 길을 막혀 있고, 심지어는 어느 쪽이 집으로 이어지는 길인지 더 이상은 확실할 수 없는 교차로에 가깝다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다큐멘터리 EBS국제다큐영화제 삼거리교차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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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