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왜소한 노인이 도쿄의 작은 맨션에서 눈을 뜬다. 침실은 사방이 온갖 자료로 가득해 고시원을 연상케 한다. 폐소공포증을 유발할 만큼 좁은 실내지만, 모든 게 꼼꼼하게 정리된 상태. 함께 사는 아내는 아침을 준비하는 중이다. 그의 이름은 '구와바라 시세이', 1936년생으로 90살이 된 '현역' 사진작가다. 다큐멘터리 보도 사진 계열에선 모를 수 없는 이름이다.
카메라는 전설적인 사진가의 기원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한다. 1960년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은 기차여행 중 펼친 주간지 기사에서 충격을 받는다. 그는 카메라를 들고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어촌마을로 향한다. 그 동네의 이름은 '미나마타'였다. 주류 미디어가 외면하던 공해병 피해자를 조명한 신예의 사진은 세상을 뒤흔들었다.
이후 60년,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 구소련 등 세계의 분쟁지역을 누비며 종군사진가로 명성을 얻었다. 여기까지라면 사진의 전설을 향한 맞춤형 일대기다. 하지만 바로 옆 나라이자 근현대사에서 뗄 수 없는 악연을 맺은 한국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의외로 간과된 측면이 있다. <사진의 얼굴>은 구와바라 시세이가 포착한 우리 현대사의 기록을 조명한다.
격동의 근현대사 현장엔 항상 그의 카메라가 있었다
▲<사진의 얼굴> 스틸
트리플픽쳐스
포토 저널리즘에 관심 가진 사람이라면 구와바라 시세이의 작업을 우회할 수 있을까? 한국어 판본도 제법 출판된 터라 필자 서재에도 여러 권 꽂혀 있을 정도다. 그의 대표작 「미나마타 사건」부터 미나마타와 한국 현대사, 베트남 전쟁 취재를 다룬 「다큐멘터리 사진가」, 이 다큐멘터리와 밀접하게 연결된 「격동한국 50년 - 역사의 기억 시대의 추억, 1965-2015」 등이다.
제작진은 아는 사람만 아는 거장의 '저점매수'를 시도한다. 한국 현대사를 담은 그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묘한 기시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 사진도, 저 사진도 구와바라 시세이 거였어?', 그야말로 경외감을 불러오는 순간이 끊이지 않는다. 이 무명의 사진가는 21세기 한국인도 어느새 잊어먹은 격동의 역사 현장에 늘 함께 있었던 것.
보도 사진가로 한국에 발을 들였지만, 그는 앵무새처럼 제공된 배경을 촬영하는 데 급급하지 않았다. 모두가 1964년 도쿄 올림픽 축제에 들뜰 때 혈혈단신으로 사람들이 쉬쉬하며 꺼리던 미나마타의 희생자들을 찾고, 이들의 응어리를 풀기 위해 함께 고기잡이에 나서며 신뢰를 얻었던 그의 태도라면 당연한 일이다. 한국에 관심을 기울일수록 작업은 점점 정부가 환영할 수 없는 방향으로 기운다.
구와바라 시세이의 사진이 주목을 받을수록 한국정부의 신경질적 반응 역시 거세졌다. 그의 카메라에 담긴 사진을 보면 나름대로 이해는 간다. 한일협정 반대 시위부터 청계천 빈민가와 베트남전 참전의 뒤안길까지 고도성장의 이면에 소외되고 고통당하는 민중의 얼굴이 생생하게 각인된 사진들은 한국의 사진가들도 꺼리던 진실들로 가득했던 때문이다.
한 인간의 궤적이 거대한 역사와 일체화하다
▲<사진의 얼굴> 스틸
트리플픽쳐스
감독은 그런 대가의 작업을 충실히 화면에 옮긴다. 이건 구와바라 시세이의 장대한 사진 경력에 의지하는 선택이다. 90살 사진가는 100만 장이 넘는 스틸을 촬영했고, 그중 한국 배경 사진만 10만 단위를 가뿐히 넘긴다. 단일 사안으론 가장 많이 셔터를 눌렀다고 작가 본인이 인증할 정도다. 얼마나 많은 극적인 순간이 그의 사진에 기록된 상태인지 측량조차 힘들 지경이다. 이걸 활용하지 않을 감독이 누가 있을까?
영화에는 10만 장이 넘는 한국 관련 스틸 사진 중 천여장을 엄선해 소개한다. 한일회담 반대 시위부터 베트남 파병, 청계천 판잣집, 동두천 미군 기지촌, 군사정권 내내 계속된 민주화 운동과 다양한 시위의 현장, 눈부신 경제성장에서 소외된 농어촌 풍경, 경북 문경에서 발견한 조선 전통기법을 계승하는 도공들의 삶까지 21세기 한국인들도 잊어먹은 것들로 가득하다.
그런 광범위한 관심은 분단체제에 대한 조명으로 자연스럽게 향한다. 제국주의 일본이 원죄가 있는 한국의 왜곡된 현실에 관한 고찰로 작가는 귀국하지 못한 채 남은 사할린 한인 등의 재외동포 현실을 취재하고, 북쪽의 절반까지 카메라에 담으려 도전한다. 당국이 제공하는 공식 무대를 항상 넘어선 덕분에 제약을 빚으면서도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한 그의 사진은 남쪽에선 이룰 수 없는 한반도 전역을 포괄하기에 이른다.
4.19 5주년 추모 침묵시위를 담던 카메라는 2024년 탄핵정국 역시 기록하고 있었다. 미나마타의 희생자 가족과 현재까지 교류하는 것처럼, 과거 사진에 찍힌 이들을 수소문해 소감을 나눈다. 기지촌 여성들의 무연고 묘지에 들러 그들을 추모하는 자신만의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기록하는 행위를 향한 철학적 성찰
▲<사진의 얼굴> 스틸
트리플픽쳐스
물론 외국인 사진가가 모든 현장을 담을 순 없었다. 오랜 기간 촬영했으나 프리랜서 작가로서 제약 탓에 베트남 전쟁의 마지막 순간인 사이공 함락은 끝내 촬영하지 못했다. 1980년 5월 광주 상황을 뒤늦게 알게 된 구와바라 시세이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현장을 기록하려 했지만, <택시운전사>의 실제 모델인 위르겐 힌츠페터와 달리 이미 봉쇄된 곳으로 들어갈 순 없었다. 그런 결정적 누락은 두고두고 그에게 한으로 남았다.
그런 집착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구와바라 시세이의 아내가 한국인이란 것도 이유 중 하나가 될 법하다. 처음 한국 취재 당시 통역 겸 안내로 동석한 아내에게 반한 그가 평소의 소심한 성격과 달리 적극적으로 구애한 끝에 당시엔 드물던 국제결혼에 성공한 일화, 막상 결혼하고 나니 세계를 누비며 촬영하느라 두세 달씩 훌쩍 사라지는 바람에 아내와 자녀들에게 '나쁜 남편', '나쁜 아빠'였다며 반성하는 인간적인 면모도 깨알 같이 스며든다.
위대한 사진가로서의 업적 덕분에 그는 수많은 전시의 주역이 됨은 물론, 시골 고향에는 그를 기리는 사진 미술관도 들어설 정도다. 큰 부와 성공을 거두진 못했어도 작가로서의 성취와 영향력은 절대 가볍지 않다. 사진 역사에 이름 굵직하게 새겼으니 충분히 보람찬 생이라 회고할 만하다. 구와바라 시세이가 '거장'이라는 데 누가 토를 달 수 있으랴.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아직 이루지 못한 것, 미쳐 포착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한 회한이 가득하다.
그의 경력에서 가장 상징적인 수많은 전쟁터, 종군기자로서 그는 단지 근사한 장면을 담아내는 데 그치지 않았다. 종군기자는 구경꾼이나 관찰자가 아니라 본인 역시 전쟁에 참전한 것과 같다며, 한 번 카메라를 잡은 이상 포기하거나 감정에 치우칠 수 없음을 강조한다. 역사의 순간에 책임을 짊어지고 '기록자'로서 소임을 다해야 한다는 프로의식이다. 잔혹하고 비참한 세계를 묵묵히 담는 게 책무다. 기록자로서의 특권은 무거운 의무가 따른다.
거장의 고언은 자신에게만 향하지 않는다. 당시 빈곤의 상징이던 청계천을 국내 사진가들은 담지 않았다. '쪽바리'라 욕하던 일본인 작가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사람들은 한국을 비하할 의도라 여겼다. 하지만 그는 남루한 건물 풍경이 아니라 불굴의 생명력으로 견디는 민중의 '얼굴'이 눈부시게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거장의 소신 덕분에 그 역사의 풍경은 기록으로 남을 수 있었던 셈이다. 정작 한국인은 외면한 그 얼굴들. 역사는 취사 선택 대상이 아니란 웅변.
역사 속 수백 수천의 '얼굴(들)', 눈은 호강하고, 머리는 복잡해진다
▲<사진의 얼굴> 스틸트리플픽쳐스
21세기 이미지 홍수 시대에 더 이상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이 주변에서 종종 관측된다. 너무나 많은 이미지와 데이터 덕분에 대중은 실제 주변의 현실 대신, 이 이미지들로 세상을 인지하고 감각으로 수용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제법 일리가 있는 말이다. 버스를 타거나 거리를 걸으면서도 주변 풍경을 관찰하기보단, 휴대전화 액정화면에 시선이 고정된 이들을 보면 정말 그런 것 같다.
구와바라 시세이의 사진 철학은 어려운 이론을 설파하지 않는다. 노 작가는 간단하게 설명한다. 시간이 지나면 되돌려 셔터를 누를 순 없는 노릇이니 그 순간 그 현장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 20세기 포토 저널리즘의 상징, 로버트 카파의 지론은 당대 시대정신으로 사진가들이 공유하던 입장인 셈이다. 하지만 인공지능 AI 프로그램 구동으로 그럴싸하게 만든 가상 이미지들은 눈썰미가 웬만하지 않으면 실존 여부를 간파하기란 힘들다.
시대변화를 부정할 수 없지만, 장구한 사진 여정을 화면으로 목격한 다음엔 시간의 풍화에도 퇴색하지 않고 지켜야 할 가치가 존재함을 믿게 된다. 한 인간의 노력이 하나의 지층을 형성한다면 바로 저런 형태가 아닐까, 아직도 취재 활동 때문에 진 빚이 현재진행 상황이라며 멋쩍게 웃는 사진가와 그의 아내를 보고 있노라면 괜한 흐뭇함과 감동이 저절로 피어오른다. 사진에 얼굴을 부여한 이의 얼굴 역시 작품사진과 다를 게 없다.
영화는 마치 구와바라 시세이 대표작 한국 편 온라인 사진전을 연상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흥미로운 사진과 그에 얽힌 일화가 넘쳐날 지경이니 감독은 충실하게 그 연대기를 화면에 옮기면 되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물숨>, <불숨>, <물꽃의 전설> 등의 수작을 선보여 온 고희영 감독의 역량 발휘보단 소재가 된 사진과 그 작가가 단연 튀어나오는 셈이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호사스럽고 충만한 체험이긴 하다. 근사한 미술관 전시를 독차지한 기분.
<사진의 얼굴>은 거장의 장대한 사진 인생을 포괄한다는 욕심을 내려놓았다. 그러려면 몇부작으로도 모자랄 판이니 대신 작가와 한국의 상호 중력 조명에 집중한다. 사진가에 대한 정보가 부재해도 역사나 사진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이들에겐 후회할 리 없는 선택의 작업이다. 1964년부터 2026년까지 60년을 훌쩍 초과한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 순간들, 역경을 딛고 굳센 생명력을 유지한 민중의 '얼굴'로 가득한 시각적 황홀경을 체험할 기회다. 주저하지 말자.
<작품정보>
사진의 얼굴
A Portrait of Photography
2025 한국 다큐멘터리
2026.09.02. 개봉 98분 12세 관람가
감독 고희영
제작 영화사 숨비
배급 ㈜트리플픽쳐스
공동배급 스튜디오 초이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공유하기
"왜 일본놈이..." 욕먹어가며 한국 담은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