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의 문화재는 어떻게 약탈당했나

[넘버링 무비 552] EBS 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약탈 : 크메르 예술의 수난>

 EBS 국제다큐영화제 2026 상영작 <약탈 : 크메르 예술의 수난>
EBS 국제다큐영화제 2026 상영작 <약탈 : 크메르 예술의 수난>EBS국제다큐영화제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이런 유물들은 한번 사라지면 영영 돌아오지 않죠."

돈 밀러 감독의 다큐멘터리 <약탈 : 크메르 예술의 수난>은 석재 미술품 보존 전문가인 '사이먼 워렉'이 돌 받침에 발만 붙어 있고 몸은 사라지고 없는 캄보디아 문화재를 발견했던 때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후 그는 한 책자에서 해당 돌 받침에 딱 들어맞을 것 같은 상체 부분을 발견하게 된다. 몇 년 후에 벨기에 미망인에 의해 '건장한 남성상'이라는 명칭으로 소더비 경매로 제출되어 2-3백만 달러에 거래될 위기에 놓이지만, 캄보디아 정부의 요청으로 취소된다. 과거 크메르 제국의 수도였던 코케르의 한 사원에서 시작된 사건은 이 작품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를 대표하는 사례다. 세계 미술시장이 한 작품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자 하는 과정에 과거의 역사와 진짜 의미를 지우는 일이 병치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02.
약탈은 흔히 한 장소에 있던 물건을 다른 장소로 옮기는 행위를 부정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조각상이 받침대로부터 분리되고, 신이 사원에서 이탈 당하고, 유물을 실제로 만들어 낸 국가와 민족으로부터 떨어뜨리는 일. 실제로 돈 밀러 감독은 여러 전문가의 말을 빌려 원래의 자리를 이탈한 문화재가 태국의 중개상을 거쳐 서구의 딜러와 수집가들에게 도착, 끝내 화려한 미술관의 조명 아래에 놓이는 과정을 가감 없이 꺼내 보여준다. 크메르 문명의 자리에 위치한 캄보디아가 그 중심에 있다.

앞서 이야기했던 돌 받침과 분리된 문화재를 비롯한 많은 크메르 유물의 약탈 과정에는 여러 과정이 복합적으로 개입된다. 도굴꾼들의 탐욕과 캄보디아 내전, 크메르 루주의 집권과 학살, 사회 질서의 붕괴 등이다. 가족과 공동체가 파괴되고 생존이 급박했던 이들은 문화재를 찾아 밀림으로 향했다. 지뢰가 해체되지 않은 지역까지 들어간 이들은 목숨도 빈번하게 잃었지만, 일주일에 20달러 남짓 돌아오는 수익은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과도 같았다. 물론 그렇게 국경을 넘은 유물은 수십만, 수백만 달러에 거래되었다. 이 장면을 두고 영화가 '피의 문화재'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다.

 EBS 국제다큐영화제 2026 상영작 <약탈 : 크메르 예술의 수난>
EBS 국제다큐영화제 2026 상영작 <약탈 : 크메르 예술의 수난>EBS국제다큐영화제

03.
"문화재를 훔치는 것은 이 나라를 파괴하는 것과 같죠"

작품이 제시하는 일련의 범죄 중심에는 영국 출신의 미술상 '더글라스 래치포드'가 있다. 크메르 미술 전문가이자 수집가의 이미지를 구축한 그는 세계적인 박물관과 부유한 수집가들의 신뢰를 얻으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이후 미국 검찰에 의해 캄보디아 문화재 밀수와 판매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그는 출처를 허위로 기재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여러 작품을 거래할 수 있게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를 위해 래치포드는 저명한 전문가의 감정, 권위 있는 박물관에서 전시되었다는 증명 등을 이용했다. 허위 출처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런 것들이 활용되었다는 사실이 문제다.

그는 스스로를 역사와 문화를 파괴한 인물이 아니라 일종의 구원자로 생각했다. 캄보디아에 그대로 있었다면 내전과 크메르 루주의 폭력으로 훼손됐을 유물을 자신을 비롯한 서구의 수집가들이 대신 보존해 왔다는 논리다. 이 주장은 우리가 아니었다면 사라져 버리고 말았을 것이라던 식민주의 사상과 거의 유사하다. 여기까지 이르고 나면, 이 작품 <약탈 : 크메르 예술의 수난>이 약탈 그 너머의 문제를 모두 함께 일으키고자 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권위가 의심을 어떻게 희석할 수 있는지, 그렇게 빛이 바래고 만 의심이 또 어떻게 다시 보존의 의미를 사적인 소유로 옮겨낼 수 있는지 말이다. 유리 진열장과 화려한 조명이 정말 이들 유적의 안전장치였을까.

04.
캄보디아에서 공산주의 운동을 펼친 크메르 루주의 소년병이었으며, 훗날 약탈 조직에 참여하며 '프라삿 크라찹' 유적 반출 현장에도 개입된 바 있는 '블루 타이거'는 이 작품에서 중요한 인물로 다뤄진다. 자신이 기억하는 장소와 유물을 증언하며 문화재를 되찾는 조사에 협력하기로 하면서다. 그의 증언을 바탕으로 '공작을 탄 스칸다'와 같은 작품의 이동 경로가 확인되고 실제 반환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그 외에도 전 소년병이었던 '살 로응'과 사원 경비였던 '오이 촘' 등의 인물의 인터뷰를 보고 있으면 감독이 이들을 그저 범죄자로만 치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들을 전쟁과 가난이 만들어낸 시대적 구조 속에서 선택지를 잃어버린 이들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 작품의 원제인 'A story of crime and redemption'에서 구원, 면죄의 의미를 담은 'redemption'의 무게는 그래서 가볍지 않다. 블루 타이거를 비롯한 이들은 지금 과거의 행동을 후회하며 지금 조금이나마 사죄할 방법을 찾고자 하지만, 그것이 과거의 행동을 모두 지워낼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분명히 의미는 존재한다. 과거를 침묵하고 지우려는 것이 아니라 다소 늦게나마 과거와 새로운 관계를 맺고자 하는 행위일 것이니 말이다.

 EBS 국제다큐영화제 2026 상영작 <약탈 : 크메르 예술의 수난>
EBS 국제다큐영화제 2026 상영작 <약탈 : 크메르 예술의 수난>EBS국제다큐영화제

05.
중후반부를 넘어서며 영화는 조금 더 명확한 문제를 제기한다. 유물을 보존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다. 이전에 래치포드가 했던 말과도 연결된다. 역사와 문화의 산물을 지키는 일에는 단순히 물리적 보존의 의미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떤 지역에서 어떤 의미로 만들어졌는지, 무엇을 위해 존재했는지 등의 맥락적, 비물리적 보존이 모두 함께 행해져야 한다. 밀반출을 위해 움직였던 이들에게 주어진 값어치에 비하면 발과 받침대를 잃어버린 조각상의 가치는 어마어마하지만, 그건 이미 원래의 존재와 다른 대상이 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둘러싼 이야기 역시 이 문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조사자들은 약탈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증언과 흙이 묻은 흔적, 훼손 상태 등을 모두 하나씩 대조한다. 당연하게도 이들 유물은 유출 과정에서 훼손되었고, 서류로 가려진 내용들까지 흔적으로 남겨져 있음이 발견된다. 사실 이런 사실적 증거들을 차치하더라도, 세계 최고 미술관 가운데 하나에서 이 유물들이 오랫동안 아무런 의심도 없이 예술품으로 전시됐다는 사실은 결코 편하지 않다.

이후 영화는 앙코르 시대의 몇몇 작품이 캄보디아로 반환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조사자 가운데 한 명인 '브래드 고든'은 반환 자체에 대해서는 환영하면서도 박물관이 왜 자신들의 잘못을 충분히 인정하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남긴다. 반성이 결여된 반환에는 여전히 역사를 왜곡하고 호도할 가능성이 남겨질 수 있어서다.

06.
"이미 지나간 시절이지만 그때의 유산은 남아 있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하나로 이어질 수 있어요."

이 작품은 전형적인 탐사 다큐멘터리의 문법을 따른다. 사건의 단서를 제시하고 관련 인물들의 인터뷰를 쌓고, 자료와 증언을 축적하면서 이야기의 윤곽을 만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문화재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 아닌 현재의 사람들이 과거와 관계를 맺게 만드는 매개라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현재와 미래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보자면, 약탈은 과거를 기억하고 자신의 뿌리가 어디로부터 시작되었는지 설명할 수 있는 방법과 권리마저 모두 빼앗는 행위가 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반환되는 '두르요다나', '가네샤', '누워 있는 비누슈'와 같은 유물이 다시 크메르의 역사적, 문화적 맥락 안에 놓이게 되는 일의 의미를 이제 모두가 알 것이다.

캄보디아는 아직도 세계 각지에서 문화재 수백 점을 돌려받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 반환되지 않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문화재 역시 함께다.
다큐멘터리 EIDF 약탈크메르예술의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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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