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발견 섹션에 홍지연 감독이 만든 <용주골>이 진출했다. 박영숙살림이상도 받았다기에 기쁘면서 슬프기도 한 게 솔직한 심정이다.
이 영화를 만든 홍지연 감독과 용주골 투쟁 현장에서 만났었다. 용주골 투쟁은 파주시의 성매매 집결지 폭력적 폐쇄에 맞서 성노동자해방행동 차차와 집결지 종사자모임 자작나무회의 주도로 2023년부터 시작되었다. "삶은 폐쇄될 수 없다"고 목이 터져라 외치는 이들의 투쟁에 함께 싸우는 이들이 한 두사람 모여들어 연대하기 시작했고, 연대 시민 중 한 사람이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다.
홍지연 감독은 싸우며 카메라를 들었다. 여느 다큐멘터리처럼 거리를 둔 관찰자의 입장을 벗어던지고 투쟁 당사자들의 입장에 서기를 꺼리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이들이 이 영화를 편향적이라고 한다면 그렇다. 대신 나는 영화를 논하는 고상한 논쟁 대신 '달리는 기차에 중립은 없다'는 말을 돌려주고 싶다.
성매매 종사자들의 용기를 담다
▲영화 <용주골> 포스터. 핵존슨
영화는 용주골 투쟁을 함께 한 용주골 성매매 당사자들, 차차의 활동가들과 연대자들 그리고 집결지 내부와 외부의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를 곡진하게 담았다. 성매매를 다룬 다큐멘터리도 적지만 이중 어떤 영화가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냈던가. 성매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쏟아지는 담론 중 가장 중요한 당사자 담론이 누락되었듯, 이들을 다룬 영화도 이들의 목소리를 담은 경우는 없었다.
이는 우선 이들의 목소리를 담는 일이 매우 어렵기도 하지만, 이들이 용기를 내 목소리를 낸다고 한들 그 소리가 제대로 전달될지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는 성매매 종사자 당사자들이 얼마나 큰 용기를 냈는지와 이들이 이 영화를 통해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에 집중해 주기를 요청하고 있다.
영화 속 성매매 종사자들에게 파주시의 '닥치고 폐쇄'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한번 생각해보자. 집이자 일터였던 내 삶의 터전에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면 어떤 심정이겠는가. 실제로 한 종사자는 사정상 집을 비운 하룻밤 사이 그녀가 살던 살림살이 일체를 몰수당했다. 파주시가 공권력과 공적 자금으로 합법적으로 사들였으면, 그 집에 살던 사람을 맨몸으로 내쫓아도 된다는 말인가.
이런 몰염치와 몰상식이 '닥치고 폐쇄' 이후 용주골에서 줄곧 벌어졌다. 합법을 가장한 공적 폭력에 화가 난 청년들이 "이건 아니지!"하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성소수자였고 아픈 이들이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용주골에서 목격한 기적
요즘 영화 <남태령>에 대한 칭찬이 조용히 입소문을 타고 있단다. 그런데 이미 남태령에서의 기적을 용주골에서 목격했다. 취약한 사람들은 취약한 타인에게 어떻게 공명해야 하는지를 안다. 공명의 힘은 강력한 무력에서만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붙드는 마음에서 나온다. 기골이 장대한 일군의 검은 옷 철거용역 앞에서, 쫄지말자고 흩어지지 말자고 격려하며 맞잡는 손으로도 가능했다. 비록 인간사슬이 뜯어져 나갈지라도, 취약한 자들과의 연대와 투쟁이 남태령에서 한 번 있었다면, 용주골에서는 3년 내내 이어져 왔다. 영화는 이를 증명한다.
나는 이 영화가 반성매매 운동 진영이나 성매매를 맹렬히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간곡히 전달되기를 바란다. 영화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성매매의 옳고 그름이 아니다. 성매매를 반대한다고 해서 성매매로 생계를 꾸리는 사람 자체를 반대할 수도 없거니와, 모든 성매매 종사자가 시대에 맞지도 않는 탈성매매 지원금에 기대 성매매를 벗어날 수 있다고 믿어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영화는 용주골에 켜켜이 쌓인 오래된 오해들을 마주한다. 집결지는 무서운 곳이다, 이곳의 여자들은 포주의 노예다, 업주들은 범죄의 원흉이다 등등... 하지만 정작 카메라가 비추는 이곳의 사람들은 사는 일에 피곤하고 밥벌이에 지치고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철거용역이 두려운 취약한 사람들이다.
이는 소심한 연대 시민들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용주골에 첫발을 내디딘 후 와장창 깨진 편견과 다름없다. 그들이 만난 이는 괴물도 노예도 범죄자도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이곳의 사람들이 모두 선량하다고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런 우는 파주시 여성단체도 저질렀다. 파주의 성매매여성 지원 단체인 쉬고는 이곳 여성들을 단 한 사람도 만나보지 않고 파주시의 폐쇄 정책에 동조했다. 이름과 형태를 달리한 가능한 어떤 곳에서 성매매가 다시 이어진다면, 아니 이어지고 있는데, 자신들이 부순 폐허 위에 거만한 용주골 전시관을 지어놓고 성매매를 근절했다고 하는 건 위선이다.
홍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든 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상영되고 있는 지금, 용주골은 어떻게 되었을까. 당시 용주골 폐쇄를 밀어 부친 전 김경일 시장이 재선에 실패한 후 이곳의 사람들은 약간의 숨구멍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시장이 된 손배찬 시장은 후보 시절 용주골을 방문해 이곳 사람들의 소리를 듣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이 어떻게 실행될지는 미지수다. 용주골을 둘러싼 여러 문제들을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공론장을 연다고 예고하고 있지만, 정작 종사자 당사자들은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한다.
얼마 전 용주골 당사자(이 여성은 용주골 투쟁으로 벌금형을 맞았다-기자주)인 한 여성은 그냥 여기서 살고 싶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잘못이냐고 토로했다. 이 영화 속에도 등장하는, 누군가의 삶을 함부로 처분하려 드는 이들에게는 도달하지 않는, 호소이자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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