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보다 뜨거웠던 청춘들의 연극 무대

제14회 대전청년유니브연극제

연재 "극장가는 길"은 어둠이 번지는 저녁, 극장을 향해 걷는 발걸음에서 시작된다. 객석과 무대에서 벌어지는 밀고 당기며 교차하는 숨소리, 조명기 점멸, 사라졌으나 사라지지 않는 세계 변화의 순간을 길어내고 이를 기록한다. 나는 지역의 연극과 축제의 현장을 묵묵히 걷고 보면서 그 무대의 잔상과 스쳐간 감정과에 대해 적으며 동시대적 의미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기자말]
여름보다 더 뜨겁게, 청춘보다 더 강렬하게

사)대전민예총이 주관하는 제14회 대전청년유니브연극제(DYUTF)가 2026년 8월 17일 마당극패 우금치 별별마당 관용극장에서 개막식을 열고, 8월 22일까지 드림아트홀과 별별마당 우금치에서 진행됐다. 대전청년유니브연극제(*이하 '유니브연극제')는 청년 및 연극 관련 대학 전공자들이 작품을 발표하고 경연하며 서로의 작업을 교류하는 청년 연극축제다.

올해 연극제에는 대학 부문 세 팀과 청년 부문 세 팀, 모두 여섯 팀이 선정돼 작품을 통해 각자가 바라보는 시대적 시선과 다양한 무대 형식의 공연을 선보였다. 대학 부문에서는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의 <불연성 쓰레기장>, 대전대학교 공연예술영상콘텐츠학과의 <우리 사는 세상>, 정화예술대학교의 <King Lear: 3Things>가 무대에 올랐다. 또, 청년 부문에서는 극단 초인의 <거북이 위에서, 고래 아래에서>, 극단 사색의 <절레절레 동화>, 극단 피안의 <멍킷리스트>가 관객과 만났다. 또한 이번에 새롭게 기획된 프로젝트 '삼일연극-극적으로 놀자'의 쇼케이스는 역동적인 청년연극의 현재와 내일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경연에 오른 작품 가운데 대학 부문에서는 정화예술대학교의 <King Lear: 3Things>과 청년 부문에서는 극단 사색의 <절레절레 동화>, 극단 피안의 <멍킷리스트>, 그리고 '삼일연극-극적으로 놀자'의 짧은 쇼케이스 공연이 이름을 올렸다

물론 대학 팀과 청년 팀 사이에는 제작 경험과 환경의 차이에서 오는 무대 완성도의 편차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무대 연출과 창작 역량의 우열로 나누기보다, 각 참여 학교와 단체가 추구하는 창작 방향과 조건의 차이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정화예술대학교의 <King Lear: 3Things>과 같은 대학 팀의 무대는 일정한 전공 교과 과정 안에서 작품을 구축해 가는 과정의 흔적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실제 무대 경험이나 훈련이 아직은 미흡하고 미숙해 전체적으로 무대 앙상블의 개선도 필요하다고 봤다. 이와는 다르게 극단 사색의 <절레절레 동화>, 극단 피안의 <멍킷리스트> 등과 같은 청년 극단의 작품은 확실히 단체 운영에 있어서 공연 제작과 관객 확보라는 두 가지 과업을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현실적 조건이 작품 창작에 반영되어 나타나 보인다.

상실을 견디는 방식, <멍킷리스트>

그 가운데 극단 피안의 <멍킷리스트>는 가장 자연스럽게 관객의 정서적 공감을 이끌어 낸 작품이었다. 극단 피안은 단체 소개에서도 "어린 시절의 감각과 상상력, 상처와 성장, 관계와 회복의 문제를 따뜻한 시선으로 다루며 '힐링 연극'을 지향하는 청년 창작단체"를 지칭하고 있다. 특히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관객 경험을 지향하며 관객의 접근성을 넓히려 한다는 점에서도 동시대 공연예술의 중요한 과제를 잘 풀어내고 있다.

<멍킷리스트> 는 반려견을 잃은 뒤 멈춰 버린 사람의 시간을 다룬다. 강아지를 의인화시켜 '보리', '하루', '아지'가 며칠의 시간을 얻어 '그 세계'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각자 버킷리스트를 이루기 위해 길을 떠난다는 설정부터가 연극은 판타지적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정서적 공감은 이들이 무지개다리를 건넌 사후세계가 아닌, 남겨진 이의 상실된 세계, 그 현실에서의 끝나지 않은 애도와 사랑의 감정을 아주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는 데 있다.

연극은 '애도'란 잊는 일이 아니라, 떠난 존재와의 관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지속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프로이트의 표현을 빌리면, <멍킷리스트>에서 지훈이 겪는 시간은 사랑하는 대상을 잊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상실의 현실을 조금씩 감당하기 위한 '애도 작업'의 시간이다. 보리와의 재회는 죽음을 무효화하고자 하는 판타지가 아니라, 멈춰 선 지훈이 다시 현실로 돌아오기 위해 필요한 정서적 통로가 된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온 관객이라면 물론이고, 어떤 방식으로든 사랑하는 존재를 잃어본 사람이라면 지훈의 멈춰진 시간과 보리의 재등장이 만들어내는 감정의 결을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겠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장점은 설정의 감상보다 극 전개에서 감정의 단계를 밝아가는 설득력에 있다. 강아지 보리와 지훈이 다시 만나는 비현실적 상황은 관객에게 납득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인물의 감정과 관계의 변화가 차근차근 축적되며, 환상적 공간을 구축하고 애도의 감정을 우회하지 않고 감각화한다. <멍킷리스트>는 반려동물 돌봄과 상실이라는 오늘의 생활 감각을 어떻게 보편적 위로의 서사로 확장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

 제14회 대전청년유니브연극제, 극단 피안의 <멍킷리스트> 커튼콜
제14회 대전청년유니브연극제, 극단 피안의 <멍킷리스트> 커튼콜조훈성

뒤틀린 동화와 현실의 풍자, <절레절레 동화>(고해성, 작·연출)

극단 사색의 <절레절레 동화>는 공연 내내 연기자들의 활력 있는 에너지로 객석을 사로잡았다. 이미 이 작품은 서울 공연을 거쳤고, 젊은연극제에서 대상과 연출상, 최우수연기상 등을 받은 바 있다고 들어서 이번 무대에 대한 기대가 컸다. <절레절레 동화>의 출발점은 현실 속 티격태격 싸우는 개성 강한 자매 민지와 지현이 어느 날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전래동화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는 데 있다.

이들을 맞이하고 끌어가는 유쾌하고 정체불명의 진행자는 뒤틀린 동화들을 제자리로 되돌리거나, 완벽한 해피엔딩으로 완성해야만 현실로 돌아갈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건다. 그러나 그들이 마주한 세계의 동화는 이미 우리가 아는 이야기가 아니다. 서로를 아끼기는커녕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남매, 호랑이를 맨손으로 잡는 어머니와 풀만 뜯는 채식주의자 호랑이, 구박과 갈등이 사라지고 지나치게 화목해진 '콩쥐·팥쥐'의 가족 등이 등장한다. 다시 말해 그동안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던 동화의 익숙한 도덕과 플롯이 완전히 어긋나 있다는 것을 연극은 의도적으로 장면을 연출한다.

그 뒤틀림은 일반적인 패러디와 다르게, 그동안 믿어왔던 '정상적인 이야기'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을 유발한다. 작품은 전래동화의 익숙한 플롯을 웃음의 대상으로만 소비하지 않고 오히려 권선징악, 가족애, 희생과 보상이라는 기존 사회 질서 속에 은폐돼 있던 위계와 억압, 그리고 '정상성'의 기준을 낯설게 만든다. 관객은 뒤집힌 동화를 보며 이 비정상적 세계에 과장과 억제에 웃게 되지만, 끝내는 우리가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온 원래의 동화 세계를 낯설게 하고 곱씹으며 질문할 만한 것이 있다는 걸 새삼 알게 된다.

판타지와 메타극적 구성을 바탕으로, 신체극과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에너지를 결합한 연출은 작품의 강점이다. 배우들은 빠른 리듬과 과장된 몸짓, 직접적인 관객 소통을 통해 전래동화의 인물들을 해체하고 다시 조립한다. 극중 웃음의 유발은 이 작품에서 긴장을 푸는 휴식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 모순을 더 날카롭게 보게 만드는 풍자의 장치다.

특히 계엄과 지난 지방선거에서 촉발된 투표소 논란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부조리에 대한 세대 인식을 대사에 삽입하는 등 동시대의 이슈들이 동화 세계 속에 불쑥 끼어들기도 하는데, 이는 이 작품은 단순한 가족 코미디나 동화 패러디에 머물지 않다는 걸 확인시킨다. 다만 이러한 시사적 언급이 강한 만큼, 각각의 소재가 서사 전체와 어떤 필연성으로 연결되는지 더 촘촘하게 밀도 있는 설계로 다듬어졌다면 풍문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풍자의 힘이 한층 커졌을 것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전통 설화의 규범적 구조를 해체하고, 오늘의 청년 세대가 익숙한 규칙과 권위에 질문을 던지고 재조립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제14회 대전청년유니브연극제, 극단 사색의 <절레절레 동화> 커튼콜
제14회 대전청년유니브연극제, 극단 사색의 <절레절레 동화> 커튼콜조훈성

'삼일연극'이 보여준 가능성

올해 연극제의 가장 의미 있는 확장은 첫 부대행사인 '삼일연극-극적으로 놀자'였다. '삼일연극-극적으로 놀자!'는 제14회 대전청년유니브연극제의 경연과 별도로 신설된 2박 3일 집중 창작 워크숍이다. 전국의 만 19~39세 청년 예술인을 대상으로 모집했으며, 참가자들은 세 팀으로 나뉘어 젊은 연출가와 공동창작·리허설을 진행한 뒤 마지막 날 관객 앞에서 결과물을 발표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첫 번째 팀 '삐크크'는 'B급 크리에이티브 크루'의 줄임말로, <한 번만 좀 때려볼 수 있다면>을 선보였고, 두 번째 팀 '개코클(개복치 코미디 클럽)'은 <지상 최후의 농담>을 공연했는데, 기존 기성작가의 작품을 짧게 압축하고 재해석한 작품이었다.

세 번째 팀 '예쁘다는'의 <희로애락도 락이다>는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한 자신들의 경험에서 출발해 예술지원사업 선정과 청년 연극인의 현실을 예리하게 풍자했다. 짧은 시간 안에 만들어진 작품들이기에 완결된 정교함보다는 즉흥성, 참여자 각각의 역할과 호흡, 공동창작의 가능성이 더 또렷하게 보였다. 그래서 짧은 쇼케이스 형식의 세 작품은 오히려 이러한 미완의 생생한 연극적 에너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게 이 프로그램의 성과이기도 했다.

 제14회 대전청년유니브연극제 기획프로그램 <삼일연극, 극적으로 놀자>
제14회 대전청년유니브연극제 기획프로그램 <삼일연극, 극적으로 놀자>대전청년유니브연극제 집행위

다음 무대를 만들기 위해

청년연극을 '미래의 연극'이라 부르면서 많은 뒷받침을 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청년 창작자들이 만드는 작품은 자신들의 먼 미래를 위한 연극이 아니라, 이미 오늘의 관객과 호흡하고 이 사회를 향해 용감하게 발화하는 동시대 연극이다. <멍킷리스트>가 상실과 돌봄의 감정을 다루고, <절레절레 동화>가 익숙한 이야기의 규칙과 현실의 모순을 비트는 순간, 이들의 연극은 청년 세대가 살아가는 현재를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14년 동안 대전청년유니브연극제가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연극제는 젊은 창작자에게 상을 주는 행사만이 아니라, 작품을 발표할 기회와 동료를 만날 장소, 관객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 왔다.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연극제는 연극예술의 저변 확대와 신진예술가 발굴, 연극인 상호 교류 및 공연 활성화를 목적엔 둔다. 그래서 이러한 연극제가 더 많이 늘어나고 또 오래 유지되어야 하는 이유는 '연극'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질문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연극제에서 우리 바라봐야 하는 것은 연습실에서 흘린 땀과 더위를 무색하게 한 열정이 무대 위에서 곧바로 완성돼 이를 확인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 때로는 미숙함으로 남고, 때로는 과잉으로 드러나며, 때로는 다음 작품을 위한 질문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 그 '여지'를 포용력 있게 봐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 연극인에게 필요한 것은 처음부터 흠결 없는 무대가 아니라, 실패와 실험, 관객과의 조우를 반복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무대다. '유니브연극제'의 역할이 바로 그렇다.

더 많은 지역의 관객과 창작자가 이 무대에서 만나고, '삼일연극'과 같은 협업 프로그램이 일회적 부대행사를 넘어 청년연극의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기반으로 자라나기를 기대한다. 대전청년유니브연극제의 14년은 이미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이 다음 청년 창작자들에게도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지역의 관심과 지원이 더욱 단단해지는 일일 것이다.

 제14회 대전청년유니브연극제 기획프로그램 <삼일연극, 극적으로 놀자>
제14회 대전청년유니브연극제 기획프로그램 <삼일연극, 극적으로 놀자>대전청년유니브연극제 집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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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나고 자랐으며, 전통연희, 굿, 마당극 등을 연구하고, 또 그 마당을 보러 다녔다. 공연장 안팎을 분주히 걷다 보니,연극, 공연 축제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이 생업이 되었다. 지역 문화예술정책에 관심이 많아 이와 관련한 심의, 자문 등의 일도 겸하고 있다. 2024년, 『묵음_ 다음에 걸음, 그리고 스페이스바』 (그래도, 2024) 등을 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