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을 건너온 질문... 한국 독립영화는 안녕한가요?

[김성호의 씨네만세 1416] '영화와 책' <독립영화> 8호

바야흐로 영화제의 계절이다. 한 때는 한국에 채 몇 되지 않았던 영화제가 일각에선 '난립'한다는 말을 들을 만큼 대홍수를 이룬다. 정부며 지자체가 공인하고 지원하는 규모 있는 영화제만 해도 40여 곳을 족히 헤아리는데, 정부 지원 없이 특정 단체 주도로 이뤄지는 소규모 영화제까지 더하면 못해도 수백 곳을 헤아린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지난 몇 년 간 십 수 곳 영화제에 발품 팔아 돌아다니며 글을 써온 나조차도 그 규모가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를 짐작하기 어렵다.

가만히 보고 있자면 영화제는 그 내실 또한 제각각이다. 개최하는 지역부터 규모, 색깔과 지향이 다를뿐더러, '주체가 영화인이냐 그 바깥이냐'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인다. 찾아보면 사계절 내내 영화제가 열리지만, 그중에서도 정점을 이루는 시기가 바로 이맘때다. 무더위가 조금 가시는 늦여름부터 초가을, 바로 이 시기에 영화팬들이 주목하는 영화제가 연달아 열리는 것이다. 8월 말부터 10월 초, 그러니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부터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에 이르는 라인업은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해외 작가 및 작품의 경향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새로운, 또 탁월한 작품에 목마른 영화팬들이 영화제를 목빠져라 기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20일 저녁 한국독립영화협회 회원들과 '독립영화 다시읽기' 모임을 가졌다. 이번에 다룬 건 2001년 봄 출간된 <독립영화> 8호다. 본격적으로 계간지로 단장해 한 해 네 권을 발간키로 한 변곡점으로, 잡지를 새로 단장하며 들인 공과 야심이 얼마간 느껴지는 책이라 하겠다. 사반세기, 그러니까 25년의 시차를 건너 이 잡지를 읽는 일의 유효함을 지난 몇 편의 글에서도 논한 바 있다. 여러 영화제로 바쁜 비평가와 감독들이 한 자리에 모여 지나간 잡지에 실린 글을 두고 발제와 토론을 벌인 데는 바로 그 유효함을 오늘 길어내는 일이 긴요하다 여기는 까닭이겠다. 8호 발제자는 서울국제노인영화제, 울주산악영화제 등에서 활동해온 장다나 프로그래머가 맡아주었다.

독립영화 8호 책 표지
독립영화 8호책 표지한국독립영화협회

2026년 한국 독립영화는 안녕한가

잡지는 21세기 벽두에서 20년 뒤 한국 독립영화의 안녕을 묻는다. 흑백 내지 속 홀로 총천연색으로 무장한 특집 꼭지는 독립영화계 일곱 인사를 불러다가 20년 뒤 독립영화판의 풍경을 그리도록 한다. 극과 다큐, 애니 제작자인 독립영화인들이 저마다의 미래관을 담뿍 담아내 20년의 시간을 질러 쓰는 글이 신선하다. 내게는 진즉에 지나쳐 온 2020년 4월이다. 먼저 답지를 훔쳐본 학생의 마음으로 읽어 내린 글 가운데 오늘에 근접한 이가 없다는 건 민망한 일이다. 그러나 그는 한편으로 미래를 짚어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를 짐작케 하기도 한다.

20년 전을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 있다. 당시의 디지털 붐과 연결되는 것이다. 이 아가들 같은 창작자들이 활개쳤던 때가 잠깐 있었지. 무엇을 만들 것인가 라는 중심이 없이 급속도로 쏟아지는 기술만을 습득한 이들의 배설창작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한때 우린 그게 디지털 혁명이려니 했었는데.. 결국 그들이 문화의 정신적 공황기를 낳았다. 또 다른 획일을 낳았고 추종자를 만들고 각종 영화제와 대학들도 이를 따랐다. (중략) 창작을 위한 지능형 프로그램이 개발되자 그들이 누렸던 모든 것이 일순간에 날아갔다. 누구나 기술적으로 같은 퀄리티를 내자 더 이상 재미가 없어진 것이다. -76p, 최소원 십만원영화제 프로그래머

개중엔 오늘 AI기술을 통해 실사에 근접한 영상제작과 편집, 시나리오 작성이 가능해짐에 따라 새롭게 읽히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1991년에 2020년을 내다보며 누구나 기술적으로 같은 질의 창작물을 내놓을 수 있으리란 전망은 단순히 기술을 넘어 창작 전 부문에 있어 보다 전방위적인 변화가 일고 있는 오늘에 남다르게 다가온다.

애니메이션의 영역에서 작화는 더는 인간의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글쓰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문체와 어휘, 호흡이 맞물려 이뤄지는 문장이란 게 더는 인간 작가가 신경 쓸 부문이 아니라는 시각이 대두되고 있다. 오로지 단문만이 나은 문장이라 받아들여지며 글쓰기의 양태가 획일화되어가던 근 십 수 년의 흐름을 건너, 이제는 아예 문장이 인간이 공을 들인 분야가 아니라는 이야기까지 들려온다. 오늘날 기술의 혁신이 가져온 예술의 변화는 작가와 수용자를 어디로 데려갈까. 그와 같은 고민이 그저 애니메이터와 글쓰는 이들에게 한정된 것은 아닐 테다.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미래를 희망적으로 전망한 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저 독립영화의 미래만이 아니라 영화, 대중, 나아가 사회 전체의 미래를 다분히 디스토피아적으로 바라본다. 이들이 진단한 문제가 실제 발현되지 않는다고 무시할 수는 없겠으나 전혀 기대치 못한 해법이며 혁신적 전환이 이뤄진 부문이 적지 않단 건 그렇게 쉽게 무시돼선 안 되는 일이 아니었는가.

오판을 낳은 요소가 현실에 대한 이해와 감각의 부족, 또 미래에 대한 기대와 상상력의 결핍에서 기인한단 사실은 독립영화인이 더욱 철저히 갖춰야 했을 자질을 비판적으로 돌아보게 한다. 무엇보다 오늘을 이들이 그린 절망보다는 낫게 한 것이 독립과 저항을 표방한 각 부문의 세력이 아니란 점도 주의해 봄직한 대목이겠다.

독립영화 책 내지
독립영화책 내지한국독립영화협회

지역 영화제가 견지하는 지역성을 묻는다

이날 발제에선 이송희일 감독이 쓴 'IQ 검사와 영화제 색깔론'이란 글에서 몇 가지 질문을 뽑아 올려 함께 나누는 대목이 있었다. 이 시기 전국 각지에서 생겨나던 여러 영화제들의 정체성에 대한 글로, 오늘에 이르러 돌아볼 지점이 있다고 여긴다. 이를테면 지역 영화제에 대하여 글쓴이는 ''지역적 특색'이란 게 그 지역 영화인들의 작품을 많이 튼다고 해서 생기는 건 결코 아닐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지역 영화제들이 규모로서만 자기 영화제들의 특색을 윤곽지을 뿐 여태껏 '어떤 영화, 어떤 특징을 선호함'과 같은 질문들을 끌어안고 있지 않다는 점'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비판으로부터 오늘의 지역 영화제는 자유로운가. 못해도 수십 곳 지역영화제를 다녀본 영화팬이자 평론가로서 나는 도저히 그렇다고 답할 자신이 없다.

이와 관련해 발제자 장다나 프로그래머는 "지역 영화제의 '지역성'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며 "그 지역이 등장하는 영화, 출신 감독의 작품이라고 활용되는 '지역성'이 과연 그 특징을 포괄하고 있는 걸까"하는 질문을 던졌다. 실제 지역 영화제를 다니다보면 이와 같은 질문을 되묻게 되고 만다. 진정으로 지역성을 가진, 지역의 갈급한 질문을 던지거나 지역적 고민을 감당하는 작품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가 많다. 사실상 예산을 타내기 위해 해당 지역에서 촬영했을 뿐인 작품들에 대하여 마땅한 지역영화라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 그에 대한 고민을 오늘의 영화제, 또 독립영화계가 나누고 있는 걸까.

한편 이번 호에서 눈에 띄는 것은 계간지로의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는 사실이다. 한국독립영화협회 창립 이후 1년이 조금 넘는 동안 무려 7권의 잡지를 발간한 건, 물론 활자매체가 지금과 다른 위상을 가진 당시 사정이 있겠으나, 역량에 비하여 지나친 일이었다. 그리하여 담고자 하는 다양한 논의와 꺼내고자 하였던 다채로운 담론을 기대만큼 소화하진 못한 수준이 아쉬운 책이 여럿이 되었다. 어찌할 수 없는 조잡한 만듦새와 고인 필진, 민망한 담론의 수준에서 맴도는 장이 결코 적지 않았던 것이다. 8권부터 계간지로 성격을 분명히 한 것이 반가운 건 그 다음을 기대하게 하는 때문이다.

<독립영화> 잡지 전권은 지자체 도서관이 무료 지원하는 디비피아를 통해 온라인으로, 국회도서관과 한국영상자료원 등 기관에서 실물로 확인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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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