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스토리텔링을 업으로 하는 작가들에게 널리 읽히는 책 가운데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이 있다. 모험, 복수, 탈출, 귀향처럼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서사의 원형을 설명하는 책이다. 그중에서도 '모험의 여정'과 '귀환'이라는 플롯의 가장 오래된 원형을 꼽으라면 단연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일 것이다.
무려 3천 년 전의 작품이 여전히 소설과 영화, 연극 등 현대의 스토리텔링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그만큼 이 서사 구조가 견고하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크리스토퍼 놀런은 이 오래된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변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예 <오디세이아> 자체를 영화로 옮기는 대담한 선택을 했다. 이미 수없이 반복된 이야기를 다시 스크린에 올리는 순간, 창작자에게 남은 선택지는 결국 '무엇을 새롭게 말할 것인가'에 있다. 놀런이 선택한 것은 '영웅'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영웅의 귀환에서 인간의 귀환으로
▲영화 <오디세이>파괴와 살육의 한복판에서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죄를 인식한다.
유니버설 픽쳐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기본적으로 전쟁 영웅 오디세우스가 10년의 트로이 전쟁과 또 다른 10년의 귀향길에서 온갖 고난과 유혹을 이겨내고 마침내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이야기다. 원작에서 오디세우스의 귀향은 잃어버린 자신의 삶과 정체성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놀런이 그린 오디세우스는 다르다. 그는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위대한 영웅이라기보다, 자신이 저지른 파괴와 약탈, 살육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이다. 물론 원작에도 전쟁의 기억 때문에 오디세우스가 비통해하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아니다. 놀런은 원작에 흩어져 있던 오디세우스의 슬픔을 하나의 거대한 죄책감이란 주제로 확장한다.
여기서 영화의 오디세우스는 하나의 묵직한 질문과 마주한다.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사실이 그 승리를 위해 저지른 모든 일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놀런에게 오디세우스의 귀향은 자신이 어떤 인간이 되어버렸는지를 마주하는 과정이다.
죄책감에 얼굴을 부여하다
그런 점에서 원작에는 없는 인물인 시논이란 캐릭터는 매우 중요하다. 시논은 처음부터 안티노오스의 약속에 속아 전쟁에 나가게 되고, 이후 오디세우스의 작전에 이용돼서 죽는다. 이 설정의 의미는 분명하다. 놀란은 오디세우스의 죄책감을 추상적인 것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전쟁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혹은 죽였다'는 죄책감에 뚜렷한 얼굴을 부여한 것이다.
아테나의 변주는 더욱 흥미롭다. 호메로스의 아테나는 오디세우스의 가장 강력한 조력자다. 그의 귀향을 돕고, 위기의 순간마다 지혜와 힘을 보태는 존재다.
그러나 놀란은 이 관계를 거의 정반대로 뒤집는다. 트로이성이 함락되는 과정에서 끌려나와 참수당하는 여사제가 아테나 여신과 동일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렇다면 아테나는 실제 여신이라기보다 오디세우스의 양심과 죄책감이 만들어낸 환영으로 읽는 편이 자연스럽다.
▲영화 <오디세이>트로이 목마 작전을 실행했을 때만 해도 오디세우스는 '영웅'이었다.
유니버설 픽쳐스
영화에서 오디세우스의 죄책감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곳은 저승이다. 원작에서 저승은 오디세우스가 미래를 알기 위해 찾아가는 장소라는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영화에서 저승은 성격이 달라진다. 그곳은 미래를 알려주는 공간이라기 보다 죽은 자들이 살아남은 자를 심판하는 공간에 가깝다.
오디세우스는 그곳에서 자신이 죽게 만든 사람들과 마주한다. 그리고 결국 하나의 질문 앞에 선다. 나는 정말 전쟁 영웅인가. 아니면 수많은 무고한 사람을 죽게 하고 혼자 살아남은 사람에 불과한가. 이 질문이야말로 영화 <오디세이>가 원작으로부터 크게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오디세우스의 가장 큰 적은 더 이상 괴물도, 바다도, 적군도 아니다. 자신의 기억이다. 어쩌면 그는 그 질문과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 귀향을 미뤄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칼립소가 내민 망각의 식물을 순순히 받아먹었을 것이다.
▲영화 <오디세이>갖은 고난을 겪으며 고향으로 향하는 오디세우스와 그의 부하들유니버설 픽쳐스
귀향이 아닌 새로운 출발
그렇게 20년 만에 이타카로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마침내 가족을 만나고 자신을 대신해 왕의 자리를 차지하려 했던 자들을 처단한다.
그런데 영화는 여기서 원작과 다시 다른 길을 간다. 오디세우스는 왕권을 되찾는 대신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페넬로페와 함께 다시 떠난다. 이 결말 또한 원작에는 없는 영화적 설정이다.
이 장면은 영화 전체의 주제를 완성한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대신 과거의 자신과 결별하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인물. 결국 놀란의 <오디세이>는 영웅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져 있던 한 인간의 귀환에 관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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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방송작가. <SBS 스페셜>, <KBS 환경스페셜>, <EBS 다큐프라임> 등 다큐멘터리 작업을 했고,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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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 감독의 대담한 선택, 원작과 달랐던 장면 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