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마음 뒤흔든 들국화 기타리스트, 최구희 별세

16일 위암 투병 중 하늘로... '괴짜들' '들국화'에서 새로운 음악 세계 선물

우리나라 음악 역사상 가장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기타리스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기타리스트 최구희(본명 최동희)가 지난 16일 위암 투병 중 별세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향년 67세. 백세시대라고 말하는 지금,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천재 뮤지션을 떠나보내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다.

필자가 그의 음악을 처음 들은 것은 1986년, 들국화 2집을 통해서였다. 당시 그가 작사,작곡한 '조용한 마음'을 듣고 그의 음악적 매력에 깊이 빠져들었다. 벌써 40여 년 전의 일이지만 소년 시절 나는 유독 이 노래를 좋아했다.

'저녁에 노을빛이 창가에 물들고 책상 위의 라디오에서는…'

고집있는 밴드

 기타리스트 최구희의 밴드 '괴짜들' 멤버들 모습
기타리스트 최구희의 밴드 '괴짜들' 멤버들 모습멜론(Melon)

정말 그 노래 가사처럼 어린 시절 라디오와 카세트를 통해 들국화의 노래를 듣고 자랐다. 그러면서도 TV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그들을 라디오에서 음악으로만 접하며 문득 궁금해지는 게 있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길래, 처음 들어보는 스타일의 음악을 이렇게 대중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있었다. 이선희나 최성수 같은 가수들은 TV에 자주 나오는데, 왜 들국화는 볼 수 없을까. 소년 시절 품었던 그 의문의 답은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조금씩 알게 됐다. 1980년대 5공화국 정권 시절은 방송과 대중문화에 대한 통제가 상당했던 때다. 방송사의 자체 심의는 물론 사전·사후 검열이 엄격했고, 대중문화 역시 정권의 통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반항적인 외모의 들국화처럼 기존 대중음악과 결이 다른 록 밴드가 TV 무대에서 자유롭게 활동하기란 쉽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는 그저 'TV에 나오지 않는 밴드'라고만 생각했던 들국화가, 훗날 알고 보니 그 시절의 강압적인 틀을 벗어나 자신들만의 음악을 고집했던 밴드였다.

그래서였을까. TV에서 자주 만날 수 없었던 그들의 음악은 오히려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아마 동시대를 살아온 친구들과 형, 누나들도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라디오에서 들국화의 노래가 흘러나오면 귀를 기울였고,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 반복해서 들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기타리스트 최구희가 있었다.

괴짜들의 음악 세계

학창 시절을 회상해 보면, 지금의 순대타운 건물이 들어서기 전 신림사거리 노포를 친구들과 찾아다니며 순대볶음을 먹곤 했다. 어느 날엔 길보드 리어카에서 500원짜리 불법 복제 카세트테이프를 하나 샀다. 바로 '괴짜들'이라는 앨범이었다. 괴짜들은 기타리스트 최구희가 소속된 밴드였고, 그들의 음악은 내게 또 한 번 새로운 음악 세계를 선사했다.

특히 들국화 2집에 그가 작사·작곡해 실은 '너랑 나랑'은 '괴짜들' 앨범에도 실렸다. 애절한 기타 연주에 한국적인 선율과 국악적 요소를 절묘하게 녹여낸 그의 음악은 '한국형 록 음악이란 이런 것이구나'라는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들국화 2집에서 전인권이 부른 버전과 '괴짜들'이 들려주는 연주를 비교해 들어보면 더욱 재미있다. 같은 창작자의 작품임에도 '괴짜들'이 직접 부르고 연주한 '너랑 나랑'은 전인권의 곡과 전혀 다른 결을 보여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에는 왜 그리도 천재적인 뮤지션들이 많았을까 싶다.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소년 시절을 보낼 수 있게 해준 이들에게 중년이 된 지금도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래서인지 그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타임머신을 탄 듯 다시 그 시절 소년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아마 그 시대를 직접 살아보지 못한 이들은 이런 내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그 시절의 음악을 다시 듣고 있으면 알 수 없는 향수가 마음에 서린다. '조용한 마음'에는 이런 노랫말이 나온다.

'좋아하는 노래 흘러나오니 마음엔 사랑이 가득.'

돌이켜보면 그는 80년대라는 강압적이고 답답한 시절을 살아가던 우리에게 음악을 통해 문화적 해방구를 만들어준 사람이었다. 그 시절을 살아간 이들에게 음악은 단순히 듣는 즐거움을 넘어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게 해주는 탈출구와 같았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들국화의 전성기를 함께 이끌었던 최성원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그를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인" 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힘든 세월 수고 많았다", "구희가 소풍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네. 그래, 푹 쉬고 거기서도 멋진 생톤으로 기타 연주하려마" 라는 글을 남겨 깊은 그리움을 전했다.

실제로도 그의 연주는 이펙터(Effector)를 거치지 않거나 최소한만 사용해 악기와 앰프 본연의 순수하고 생생한 소리를 냈다. 그래서인지 그의 연주를 듣다 보면 가야금이나 거문고 같은 한국 전통 악기의 소리마저 마치 성대모사하듯 기타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표현하던 아티스트다. 이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기술 속에서도 인간 본연의 감성과 천재적인 재능으로 자신만의 독보적인 음악 세계를 지켜냈던 거장의 모습이었다.

이제 더 이상 그의 연주를 라이브 무대에서 들을 수 없다는 사실에 아쉬움이 크다. 그러나 그가 남긴 '한라에서 백두까지'의 노랫말처럼, 이제는 하늘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품고 자신만의 실험적인 음악 세계를 펼쳐가고 있으리라 믿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들국화 최구희 괴짜들 조용한마음 너랑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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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 Life is News | 전) TBN 교통방송 & KTV 한국정책방송원 | 사상계(思想界)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