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만에 이루어진 꿈, '조수미 공연' 봤더니

조수미 '세계무대 데뷔 40주년 기념 공연'에 다녀와서

한 달 전 어느 날이었다. 평소처럼 스마트폰을 뒤적거리다 성악가 조수미 씨가 세계 무대 데뷔 40주년 기념 공연을 내가 사는 인천에서 한다는 소식을 보고 "꺅!" 소리를 질렀다. 그 자리에서 바로 좌석을 예매하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함께해야 한다고 선포했다. 다행스럽게도 인천 시민에게는 30% 할인이라는 큰 혜택이 있었다. 그저 표를 예매했을 뿐인데도 가슴이 떨려왔다.

10여 년 전 우리 가족은 호주 여행을 다녀왔다. 아이들이 어릴 때 세계 문물과 문화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그저 떠났다. 코알라도 캥거루도 신기했지만, 오페라하우스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시간이 맞지 않아 공연을 볼 순 없었지만, 빈 좌석에 앉아 분주히 움직이는 스태프들을 보니 왠지 설렜다. 공연장 전체가 나무로 만들어져 거대한 울림통이라는 것도 신기했다. 객석에 앉아 직원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남편에게 말했다.

"여기서 조수미 공연을 보고 싶어. 진짜야."

꿈은 어떻게든 이루어진다

공연이 끝난 뒤 무대 인사 지휘자 최영선을 소개하는 모습
공연이 끝난 뒤 무대 인사지휘자 최영선을 소개하는 모습김효숙

라디오나 텔레비전 영상으로만 보고 듣던 그녀의 모습과 소리를 그 멋진 공연장에서 직접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내 꿈은 아이들 진로에 가려져 점점 깊숙이 숨어버렸다. 오페라하우스에서는커녕 어디에서도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꿈은 그저 꿈으로 사라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뒤 지난 21일, 드디어 조수미를 만났다. 관현악단 단원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자, 무대가 어두워졌다. 비제의 <아를의 연인> 모음곡이 경쾌하게 흘러나왔다. 잠시 뒤 프릴이 잔뜩 달린 아이보리색 드레스를 입은 그녀가 십 대 소녀처럼 말총머리를 하고 나타났다. 어느덧 60대 중반을 넘긴 세계 최고 프리마돈나. 그러나 그녀는 갓 스물을 넘긴 소녀처럼 보였다.

박수 소리와 함성이 떠나갈 듯 공연장을 울려댔다. 그녀가 입을 열어 노래를 부르는 순간 객석엔 정적이 찾아왔다. 그녀는 오페라 메들리 세 곡을 부르고는 잠시 회한에 젖은 듯 멈췄다가 입을 열었다. 40년 전 어린 그녀가 가족과 친구, 연인을 떠나 낯선 이탈리아에서 공부를 시작하던 시절부터 세계적 명성을 얻기까지 여정에 관객을 초대했다. 아침이면 사람들이 건넨 인사 '부온조르노(Buongiorno)'에 함께 웃고, 화려한 조명과 박수 뒤로 가면을 벗은 외로운 모습엔 같이 울컥했다. 노래마다 그녀의 삶이 온전히 담겨 있었다.

1부가 끝나고 다시 조명이 환하게 켜졌다. 그제야 공연장이 눈에 들어왔다. 수년 전 뮤지컬 <캣츠>를 보러 왔던 낡은 공연장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대리석 계단은 물론 무대 곳곳이 모두 나무로 바뀌었다. 10여 년 전 호주 오페라하우스 공연장을 빼닮았다. 낡고 거친 모습만 기억하고 서울과 비교만 했던 그동안의 내가 부끄러웠다.

외로움 삭이던 조수미

조수미 공연 안내장 세계부대 데뷔 40주면 기념 공연 안내 포스터
조수미 공연 안내장세계부대 데뷔 40주면 기념 공연 안내 포스터김효숙

2부 무대에는 그녀가 명성을 얻으며 세계적 프리마돈나로 거듭나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밝고 해사한 얼굴로 "난 어디서나 쉽게 적응한다네"(번스타인 오페라 <캔디다>)를 부를 땐 관객들도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힘들고 지칠 땐 '내일의 그대를 오늘의 그대가 안아줄 테니'(고영환 작고 "시간의 선물") 걱정 말라며 노랫말을 읊조릴 땐 외로움을 삭이며 애썼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리베란테' 진원의 묵직한 목소리가 그녀의 높은 음정을 잘 받쳐주어 편안했고, 악단을 쥐락펴락하며 깔끔한 연주를 선보인 지휘자 최영선도 관객이 공연을 맘껏 즐길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했다. 게다가 트럼펫 연주자 알렉스 볼코프의 '가브리엘의 오보에'는 영화 <미션>을 완벽하게 떠올리게 해서 또 다른 기쁨을 주었다. 보면서도 오보에 소리인 줄 착각할 정도였다

두 시간 가까운 시간이 너무도 빨리 흘러갔다. 그녀는 공연 내내 뛰어난 가창력뿐 아니라 재치 있는 무대 매너에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녀의 노랫소리는 교향악단이 연주를 멈출 때까지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자체로 하나의 악기 같았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 일정하게 유지하는 호흡과 성량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한목소리로 앙코르를 외친 관객들에게 보답하려는 듯 순백색 드레스에 왕관을 쓴 그녀가 들어오며, "다들 계시네요!"라고 속삭이듯 말하자, 객석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자신은 인천국제공항 홍보대사라며 함께 해서 기쁘고 인천이 더욱더 발전하기를 바란다는 말에 우레같은 박수와 함성이 일었다.

우리를 울고 웃긴 그녀의 모습은 오래오래 남을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녀의 40년 여정에 잠시라도 함께했음에 감사하며 그녀의 손길이 담긴 음반을 기다리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와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조수미 40주년기념공연 인천예술회관 공연준비아쉬움 셰게최고라는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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