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번 내한 공연
염동교
연극과 뮤지컬 사이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가 바로 천국이에요"라고 읊는 '헤븐(Heaven)' 속 지구가 서서히 떠오르는 장면에서 가슴엔 뭉근한 감동이 피어났다. LSD 복용을 통해 유체이탈을 경험했다는 중학교 친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토킹 헤즈의 '앤 쉬 워즈(And She Was)'에선 여인의 시점에 맞춰 카메라가 하늘을 부유하며 마을 정경을 담는 연출을 했다.
연극 속 방백처럼 핀 조명이 번을 비추고, 그가 곡의 비화를 들려준 후 곧바로 연주가 시작되었는데 경지에 오른 달인이 들려주는 한 편의 우화 같았다. 토킹 헤즈 1집 <토킹 헤즈: 77(Talking Heads: 77)>의 대표곡 '싸이코 킬러(Psycho Killer)에선 앨프리드 히치콕의 명작 <싸이코>(1960)를 오마주한 듯한 조명 연출이 일품이었다.
지구촌 사회와 정치에 관한 시사점으로 화두에 올랐던 지난 2026년 8월 1일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의 매시브 어택의 완곡 버전처럼 여길 정도로 메시지가 도처에 퍼져있었다. 화면 속 고양이와 개의 사진이 동물 탈을 쓴 인간으로 연결된 '라이크 휴먼즈 두(Like Humas Do)'에선 "동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감정이 있음을" 표현했다.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단속 장면이 나왔던 '라이프 듀링 워타임(Life During Wartime)'에선 "이렇게 즐겁게 춤추는게 맞나" 복잡한 심정이 들었다. 후반부 번이 기립을 유도한 덕에 '버닝 다운 더 하우스(Burning Down The House)를 비롯해 모든 관객이 몸을 흔들며 그루브를 만끽했기 때문이다.
실험적 록의 금자탑을 건설한 1981년 작 <마이 라이프 인 더 부시 옵 고스츠(My Life In The Bush Of Ghosts)>를 합작했던 브라이언 이노와의 2025년 근작 '티셔츠(T-Shirt)' 속 풍자성이 도드라졌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을 비튼 "메이크 아메리카 게이 어게인(Make America Gay Again)" 백드롭에선 청중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번의 세계관 그 근원엔 인류애와 희망이 있었다. 팬데믹이 사그라들던 시절 대화 소리를 듣고 "인간은 결국 서로 함께하길 원한다"를 깨달았다는 회고와 연결된 '에브리바디즈 커밍 투 마이 하우스(Everybody's Coming to My House)'. 본디 너무 많은 손님으로부터 느끼는 불안감에 대한 노래였으나, 뉴욕 아비시니안 침례교회 합창 지휘자 라프레딕 콕스너(LaFrederick Coaxner)의 가스펠 풍 편곡에서 이 곡의 진정한 소리 방향성을 발견했다고 한다.
토킹 헤즈의 소리 중추였던 티나 웨이머스처럼 도입부 베이스로 흥분감을 고조한 켈리 핀헤이로(Kely Pinheiro/브라질), 옹골진 퍼커션으로 리듬의 탑을 쌓은 유리 야마시타(Yuri Yamashita)같은 다인종 밴드 구성도 화합과 융합의 메시지로 와 닿았다.
▲데이비드 번 내한 공연염동교
록의 예술, 예술적 록
대중적으로도 성공을 거둔 토킹 헤즈지만 제3세계 음악과 전위적 펑크(Funk) 등 리드미컬하고 역동적 악곡 아래 무수한 실험 요소가 조립되어 있으며, 평론가들은 이들에게 아트 록의 칭호를 붙이는 데 주저치 않았다.
번의 사운드스케이프의 방점은 역시나 월드 비트. 아프리카와 남미 등 구미권에서 벗어난 소리를 채집, 장기인 록에 녹여낸 이 작법은 전형적 록에 지친 이들로부터 환영받았다. 그래미 '올해의 음반'을 거머쥔 1986년도 <그레이스랜드(Graceland)>의 폴 사이먼, 1982년 셀프타이틀 <피터 가브리엘(Peter Gabriel)> 등 여러 작품에서 라틴 비트의 흔적을 남긴 피터 가브리엘처럼 제3세계 음악에 진심이었던 번이다.
1988년엔 뮤직 레이블 루아카 밥을 설립했다. 1989년 솔로 데뷔작 <레이 모모(Rei Momo)>같은 본인 음반 발매와 더불어 나이지리아의 신스팝 레전드 윌리엄 오니예보와 브라질 소울 거두 팀 마이아의 작품을 재발행했다. 한국적 미학을 전파하는 밴드 이날치도 최근 루아카 밥과 계약했다.
공연 이후로 계속 입가에 맴도는 <레이 모모(Rei Momo) 수록곡 '인디펜던스 데이(Independence Day)>'는 독특한 라틴 리듬이 인상적이다. 근작 <후 이즈 더 스카이?(Who Is The Sky?)>에서 미국 얼터너티브 록밴드 파라모어 헤일리 윌리엄스와 입을 맞춘 '왓 이즈 더 리즌 포 잇?(What Is The Reason For It?)엔 플라멩코 향취가 어려있었다.
개성 넘치는 2001년도 뮤지컬 영화 <헤드윅>의 연출자 존 카메론 미첼이 한 "사랑과 친절은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펑크적인 일이에요(Love And Kindness Are The Most Punk Things You Can Do Right Now)"란 말에서 모티브를 얻은 트랙이라고 알려졌다. 대륙을 경유한 다채로운 리듬과 영미권 펑크(Punk)와 펑크(Funk)의 공존은 시각 장치와 맞물려 그 예술성을 고취했다.
토킹 헤즈라는 당대의 작가주의 록을 추구했던 혈기 왕성 청년은 일흔넷 나이가 무색한 정정함과 창의성을 구현 중이다. 이날 공연에서 유독 많은 선배 작가를 마주쳤는데, 하나같이 엄지척! 하며 토킹 헤즈의 명곡처럼 생애 단 한 번뿐인(Once In A Lifetime)" 실황을 봤다는 고양감과 희열감을 표했다. 가수 장기하도 "그는 내게 최고의 음악적 자양분"이라며 언급했다.
1952년생의 그를 보며, 같은 이름을 지닌 영국의 위대한 음악가 데이비드 보위가 없는 이 지상에서 번이 앞으로도 계속 공연과 음악 작업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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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 염동교라고 합니다. 대중음악을 비롯해 영화와 연극, 미술 등 다양한 문화 예술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