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래 울려 퍼지자, 모든 관객이 일어났다

[공연 리뷰] 데이비드 번의 첫 내한 공연

살면서 이런 공연을 또 볼 수 있을까. 지난 21일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펼쳐진 데이비드 번의 내한 공연을 보고 든 생각이다. 데이비드 번은 미국의 전설적인 뉴웨이브 밴드 토킹 헤즈(Talking Heads)의 리더이자 싱어송라이터다. 다양한 대륙의 장르적 문법을 섞은 음악, 영화 음악과 뮤지컬, 저술 활동 등으로 빛을 발해온 전천후 예술가가 데뷔 49년 만의 첫 내한 공연을 펼쳤다.

70대 중반의 노장 뮤지션이 펼치는 공연이었지만, 평화의전당을 찾은 관객들은 대부분 2030으로 보였다. 지난해 재개봉한 이후 4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공연 다큐 영화 <스탑 메이킹 센스>의 영향력이 크다. <스탑 메이킹 센스>는 1983년 토킹 헤즈의 공연 실황을 기록한 작품으로서, 토킹 헤즈 특유의 리듬과 현장의 역동성을 완벽하게 관객들에게 전달한 작품이다. 개봉 당시 관객들의 춤과 노래가 허용된 '싱어롱', '댄스어롱' 상영이 진행되기도 했다.

록 공연의 틀 부순, 가장 민주적인 공연

 지난 8월 21일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데이비드 번의 첫 내한 공연
지난 8월 21일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데이비드 번의 첫 내한 공연프라이빗커브

데이비드 번이 다양한 인종과 세대로 구성된 12명의 멤버와 함께 100분간 공연을 만들어 나갔다. 노장 록 뮤지션의 공연이라고 분류하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뮤지컬과 연극, 영화의 요소를 많이 발견할 수 있는 종합 예술에 가까웠다.

데이비드 번을 비롯한 공연 멤버들은 모두 같은 주황색 점프 트를 입고 무대에 등장했다. 마이크 스탠드와 앰프는 존재하지 않았다. 핸드 마이크 대신 헤드셋 마이크를 착용하면서 손을 자유롭게 했다.드럼 세트는 여러 파트로 해체되었다. 밴드 멤버들은 무선 악기를 메고 무대 위를 돌아다녔고, 치밀한 동선 속에서 춤추고 노래했다. 13명의 유기적인 호흡은 이 공연의 모든 가치였다. 펑크(Punk) 밴드가 되었다가, 때로는 멕시코의 마리아치 밴드, 챔버 팝 그룹, 가스펠 중창단으로 변신했다.

데이비드 번은 대중음악 역사에 남을 마에스트로지만, 여러 차례 무대 중앙을 멤버들에게 양보했다. 곡마다 주목받는 주인공이 바뀌었다. 번은 조명이 비치지 않는 어둠속에서 함께 율동을 소화했다. 밴드의 프런트맨이 아니라 앙상블의 일원이 되기를 택한 것. 데이비드 번이 자신의 공연을 두고 '민주적'이라 소개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스탑 메이킹 센스>로부터 43년이 지난 2026년, 74세가 된 데이비드 번은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춤을 추면서도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다

 지난 8월 21일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데이비드 번의 첫 내한 공연
지난 8월 21일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데이비드 번의 첫 내한 공연프라이빗커브

단 1초도 허투루 쓰이지 않는 100분이었다. 1인극 같은 멘트, 영상은 모두 음악의 서사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자신이 사는 맨해튼 아파트 모습을 전광판에 띄우더니, '마이 아파트먼트 이즈 마이 프렌드(My Apartment Is My Friend)'를 부르며 고립감을 고백했다. '인디펜던스 데이(Independence Day)'를 부를 때 멤버들의 무대 동선에 맞춰, 우주 공간에 그들의 이름이 움직이는 연출 역시 인상적이었다.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리듬이 이어지는 가운데에도, 데이비드 번은 무겁지 않은 방식으로 메시지를 던졌다. 'T Shirt'를 부를 때에는 '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를 ''MAKE AMERICA GAY AGAIN(미국을 다시 게이로!)'이라고 재치 있게 비틀었다. '라이크 휴먼스 두(Like Humans Do)'를 부르기 전엔 동물권을 논했다. "모든 차이와 광기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기를 좋아한다"라고도 말하며 인간에 대한 희망 역시 간직했다.

"This ain't no party, this ain't no disco! This ain't no fooling around!"
(이건 파티도, 디스코도 아니야. 장난 치자는 게 아니라고!)

- '라이프 듀링 워타임(Life During Wartime)' 중

한 시간 동안 위대한 공연 예술을 감상하기에 여념이 없었다면, 후반부는 춤을 춰야 할 시간이었다. 드럼 인트로와 함께 긴장감을 쌓아 나간 '싸이코 킬러(Psyhco Killer)'는 광란의 시간을 예고했다. '라이프 듀링 워타임(Life During Wartime)'이 울려 퍼지자, 좌석에 앉아 있던 모든 관객이 일어섰다.

 지난 8월 21일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데이비드 번의 첫 내한 공연
지난 8월 21일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데이비드 번의 첫 내한 공연본인 촬영

'원스 인 어 라이프타임(Once In a Lifetime)', '버닝 다운 더 하우스(Burning Down The House)'는 관객들을 광란의 상태로 몰아갔다. 고딕 양식의 평화의전당이 토킹헤즈가 활동하던 뉴욕의 클럽 CBGB, 혹은 <스탑 메이킹 센스> 콘서트 현장으로 바뀌었다. 데이비드 번의 목소리 역시 음역대만 낮아졌을 뿐 젊은 시절 못지 않은 에너지를 간직하고 있어 몰입을 도왔다.

데이비드 번의 음악적 파트너인 프로듀서 브라이언 이노는 자신의 책 <예술은 무엇을 하는가>에서 "예술란 감정이 생겨나도록 만드는 방식"이라고 정의했다. 그 기준대로라면 데이비드 번의 이번 공연은 최고의 예술이다. 이토록 흥겹게 춤을 추면서도, 많은 사유를 하도록 돕는 공연은 없으니까.

'라이프 듀링 워 타임(Life During Wartime)'의 후반부. 긴박한 리듬 뒤로 ICE(미국 이민세관단속국) 요원들에 의해 자행되는 국가 폭력의 모습이 송출되었다. 이 곡이 발표된 1979년과 2026년. 세계는 여전히 혼란의 한가운데에 있다.

이토록 혼란한 시대에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데이비드 번은 '왓 이즈 더 리즌 포 잇(What is the reason for it)'을 부르기 전, 존 카메론 미첼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사랑과 친절은 당신이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펑크스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젊은 시절 불안과 허무를 노래하던 그가 도달한 결론은 단순하고도 명쾌했다.
데이비드번 스탑메이킹센스 토킹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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